날아가는 한 마리 해오라기에게서도, 둔하게 울려오는 종소리와 바이올린의 G현에서도, 달리는 기차에서도, 알 수 없는 슬픔을 느꼈던 안톤 슈낙은 “우리를 슬프게 하는 것들”이라는 명품 에세이로 세계인의 심장을 흔들었지만, 나에게 늘 주제로 떠오르는 것은 “우리를 깨어 있게 하는 것들”이다. 어떻게 하면 더 많이, 더 깊이 깨어 있을 수 있을까?

무엇보다도 나를 가장 깨어 있게 하는 것은 예수의 수수께끼 같은 말들이다. “나는 아버지를 알고, 또 그분의 말씀을 지키고 있다”고 당당하게 선언하였던 그는 “너희의 조상 아브라함은 나의 날을 보게 될 것을 즐거워하였고, 마침내 보고서 기뻐하였다”고 하여 유대인 지도자들을 경악하게 한다. “당신은 아직 나이가 쉰도 안 되었는데, 아브라함을 보았단 말이오?” 바로 이때, 예수께서 남기신 말씀이 영원한 수수께끼이다. “아브라함이 있기 전부터 내가 있었다.”(요한복음 8:56~58) 킹 제임스 성경은 이를 “Before Abraham Was, I AM”이라고 옮기고 있으니, 예수께서는 하나님께서 자신을 가리켜 말씀하신 “I AM THAT I AM.”이라는 명칭을 그대로 사용하신 것이 아닌가? 여기에서 I AM은 과거와 현재와 미래의 어디에도 얽매이지 않는 ‘영원한 시제’가 아닐까? 그렇다면 예수께서 하나님의 이름을 그대로 사용하여 “I AM THAT I AM”이라고 하셨듯이, 우리 안에도 ‘스스로 있는’ 영원한 내가 존재하는 것은 아닐까?

이 사건을 계기로 유대인 지도자들은 자신을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선언하신 예수를 본격적으로 핍박하기 시작하고, 예수께서는 시 82편을 인용하시어,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말씀을 받은 사람은 다 신이라고 하셨다’면서,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말은 결코 하나님을 모독하는 일이 될 수 없다고 주장하신다.

아브라함이 있기 전부터 내가 있었고, 있으며, 있을 것이라는 이 영원한 시제의 존재론 앞에서 유대인 지도자처럼 돌멩이를 던지지는 않지만, 나 역시 그 한마디 말씀 앞에 서기만 하면 귀가 먹먹해질 정도로 아찔해지고 뒤이어 황홀해진다. 황홀해지는 것은 “아버지와 아들이 하나이듯이 너희도 하나가 되라”는 예수님의 말씀 덕분에, 나 또한 ‘영원한 시제’ 속에 포함될 자격이 필요충분하다는 것을 새삼 확인하곤 하기 때문이다. 최근에 읽은 켄 윌버의 "통합비전"이라는 책에는 그의 “I AM” 명상법이 소개되어 있어, 우리를 ‘영원한 나’에 깨어 있도록 촉구한다.

아브라함이 있기 전부터 내가 있었다. 우주가 탄생하기 전부터 내가 있었다. 이것이 나의 본래면목이다. 나는 부모가 태어나기 전에도 있었고, 우주가 태어나기 전에도 있었다. 이 ‘나’가 스스로 창조한 대상들 속에 자신을 숨기고 그것을 찾는 게임을 하기로 결정했던 것이다. …수많은 생각이 왔다가 갔다. 수많은 느낌이 왔다가 갔다. 그러나 오지도 않고 가지도 않는 것이 하나 있다. 태어나지도 않고 죽지도 않는 것, 시간의 흐름 속으로 결코 들어오지도 않고, 나가지도 않는 것, 시간을 넘어선 순수한 현존, 영원을 거니는 것이 곧 그것이다. 내가 이 위대하고, 명백하고, 스스로 자기를 알고, 스스로 자기임을 확인하며, 스스로 자기를 해방시키는 ‘나’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감히 선언할 수가 없다. I AM THAT I AM을 용기 있게 살지 못하고, 여기에도 벽, 저기에도 벽을 만들곤 한다. 시제에 매이지 않는 그리스도이시니 지금 이 순간에도 이곳에 살아 계실 것이 분명한데도 과거 2천 년 전의 이스라엘 어딘가에 그분을 붙들어 매어두려고 하는 나 자신을 발견하곤 한다. 아, 나도 I AM을 살고 싶다. 어디에도 매이지 않는 ‘영원한 나’로 살고 싶다.

그래도 위안의 근거가 있다면, ‘마음이 가난한 사람, 의에 주리고 목마른 사람은’ 복이 있다고 하신 그분의 말씀이다. 진리를 살지 못하는 나는 용서받을 수 있을지라도, 진리를 추구하지 않고 포만감에 사로잡힌 채 영적인 물음표를 잃어버리고 사는 나는 아마도 용서받을 수 없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