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섯 번째 이야기 : 오늘은 비


6

(지난호에 이어서)
“이것도 선생님만 보세요. 제 비밀이거든요.”
“알았어, 비밀 지킬게.”
채울이는 엄마에 대한 기억도 없는데 엄마가 늘 그립고 그러면서 돌아가신 엄마가 유령이 되어있을까 걱정이 되기도 하는가봅니다.
“엄마가 천사가 되셔서 너를 지켜보고 계실 걸.”
“정말요?”
“그럼.”
독서선생님 말에 채울이는 기쁨의 탄성을 질렀습니다.
“선생님 저 내일 텔레비전 찍어요.”
갑자기 생각난 듯 채울이는 자랑을 합니다.
“어머! 무슨 일로?”
“잘 몰라요.”
“채울이는 좋겠다. 텔레비전에도 나오고. 어느 방송 무슨 프론데?”
“아빠가 말하지 말랬어요.”
“왜?”
“그냥요.”
“그러니? 그럼 말하지 마라. 텔레비전에 나온 채울이 보고 싶어서 물어 본 건데.”
“선생님한테만 알려줄게요. 이것도 비밀이에요.”
채울이는 선생님 귀에 대고 속닥거립니다.
“기독교방송이요.”
선생님은 고개를 끄덕이며 미소를 지으십니다.
그 미소엔 안도의 한숨도 섞여있는 것 같았습니다.

7

8월의 날씨는 참으로 무덥습니다. 한밤중에도 열기가 가시질 않습니다.
텔레비전에 나온다는 채울이 생각이 난 선생님은 티브를 켰습니다.
수호천사가 나오고 있었습니다. 말기암 환자라는데 머리는 박박깍고 얼굴빛은 이미 이세상 사람이 아닌 듯 했습니다.
‘혹시 저 사람이 채울이 아버지?’
성도 강씨였습니다.
잠시후 침대에서 도울이 채울이가 아빠의 손을 잡고 있는 모습이 보였습니다.
이제 마흔이라는데 몹쓸병에 걸려 두 딸을 두고 떠나야한다는 아빠
마음이 얼마나 아플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아빠는 티브에 나온다는 말을 하지 말라고 하셨는가 봅니다.

독서선생님은 땀을 뻘뻘 흘리며 배움터에 왔습니다.
여름방학을 한 아이들은 에어콘이 나오는 도서방에 모여 놀고 있었습니다. 삼삼오오 짝을 지어 공기놀이도 하고 불럭쌓기에 여념이 없습니다.
책 벌레 찬미는 구석에 앉아 독서삼매경에 빠져있습니다.
잠시 땀을 식히고 있던 선생님이 당황한 목소리로 물었습니다.
“도울이 채울이는 왜 안왔지?”
“여기 끊었어요.”
“왜?”
“몰라요.”
놀이에 빠져있는 아이들 중 한명이 별일 아니라는 듯 대답했습니다.
‘혹시 아빠가 돌아가셨나?’
선생님 심장이 쿵 하고 내려앉는 것 같았습니다.
“도울이네 무슨일 있어요?”
선생님은 얼른 사무실로 가서 가만히 물어보았습니다.
“아빠가 이제 얼마남지 않으셨대요. 그래서 수녀님들이 하시는 홈시설로 갔어요.”
“어머나! 그럼 여기 안다녀요?”
“아마 가까운 곳에 다닐거에요. 거기도 집이나 마찬가지니까요.”
“아쉽네요.”
“도와주는 것도 한계가 있더라고요. 채울이는 상황을 잘 모르고 있다가 인사하고 가면서 울먹울먹 하는거 보니까 마음이 아프더러고요.”
“그래도 참 다행이네요. 수녀님들이 돌봐주시는 홈시설로 갔다니까요.”
“도울이가 고생 많이 했어요. 어린것이 아버지 병수발하느냐고요. 막판에는 기저귀도 다 갈고 그랬어요. 여자아이가 참 못할 노릇이지요.”
복지사선생님은 눈시울을 붉히며 도울이 이야기를 했습니다.
선생님은 프로그램실로 와서 아이들 종합장을 들여다보았습니다.
선생님은 좀 더 잘해 줄걸 하는 아쉬운 마음과 차라리 더 잘된일이라는 생각이 겹쳐들었습니다.
문득 오래전 아이들과 함께 읽은 톨스토이동화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생각났습니다.
“수녀님들이 사랑으로 잘 키울실거야.”
독서선생님은 서운한 마음을 애써 지우려 창밖을 내다봤습니다.
하늘엔 흰구름이 흘러갑니다. (공부방 이야기 중 다섯 번째 이야기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