젠장, 이렇게 뜨거운 날에도 전도를 나가야 하다니. 작열하는 햇살을 보니 속에서 욕지기가 절로 나온다. 에어컨 빵빵한 사무실에서 한시름 잊고 있었는데, 그 꼴이 보기 싫었는지 담임목사는 기어이 부교역자들을 내몰았다. 작열하는 태양 아래 시뻘겋게 달궈진 아스팔트위로! 가만히 있는 꼴을 못 본다. 이런 날은 사무실에서 가만히 가마니가 되고 싶다. 구두 아래 쩍쩍 달라붙는 아스팔트를 떼어내며 걸으니 불타오르는 태양 아래 죽기를 간구했던 요나의 심정이 십분 이해가 간다.

어디로 가야 하나. 그렇게 물으면서도 발은 이미 인천 중, 동구 시민의 허파인 자유공원으로 향하고 있었다. 두 손 가득 전도지를 쥐고 허정허정 숲길을 걸었다. 나무 그늘 아래 의자에 앉아 망중한을 즐기는 이들에게 다가가 가식적인 미소를 띠며 건네준다. 시원하고 상쾌한 나무 그늘 아래 있자니 여기가 천국이다. 베드로의 심정에 동의하며 고개를 주억거린다. “주님 여기가 너무 좋사옵니다” 하는데 숲속의 무인 도서관이 눈에 들어온다. 홀린 듯 다가가 망설임 없이 들어간다. 각종 소설, 에세이 류의 책들. 사람들은 주변 벤치에 흩어져 편한 자태로 독서삼매경에 빠져있다. 이거다! 이게 바로 내가 원하는 삶이다. 갑작스레 전도지에 사탕 하나 붙여 전하는 복음에 회의가 들며, 진정 바라는 삶이 무엇인지 알아 버렸다. “내 당장에 교회로 돌아가 전도지를 그 잘난 낯짝에 던지며 그만두겠다고 말하리라. 곧장 집으로 가 후줄근한 옷에 슬리퍼 끌고, 책 한 권 품에 지니고 숲으로 나가리라.” 휴. 생각뿐이라는 현실에 몸서리치며 교회로 허허롭게 돌아갔다.

1년 후. 작은 물병 하나, 때 묻은 성서 가방에 넣고서 두 다리도 가붓하게 제주의 속살을 느끼며 걸었다. 걷다가 풍광 좋은 곳에 이르면 흙바닥이건 바위건 털썩 앉아 성서를 폈다. 신이 인간에게 준 두 권의 책. 읽지 않아도 좋았다. 아무 곳이든 성서를 펴 무릎위에 두고 눈으로는 신의 형상이 고이 깃든 하늘과 바람을 쫓았다. 손으로는 길섶 신의 숨이 탄 온갖 것들을 보듬는다. “너 참 이쁘구나.” 꽃은 내 손 아래 수줍게 흔들리고, 하늘은 신의 미소를 보여주며, 신은 바람의 팔을 뻗어 나를 품는다. 그래. 이게 사람 사는 게지. 하나님께서 진작에 작정하신 사람의 삶이지 않은가.

하나님을 사랑해 시작한 목회가 오히려 하나님을 느끼지 못하게 한 세월이었다. 예배는 ‘일’이었고, 절기는 ‘이벤트’였다. 더불어 흔연히 갈 지체들은 처리해야 할 관계였다. 그렇게 좋아했던 책도 오로지 설교를 위한 참고 문헌에 지나지 않았다. 교회에서조차 숫자와 성과와 실적에 평가되는 현실에 절망했다. 강제된 목회에 나는 파괴되어 갔다. 철학자 한병철은 <피로사회>에서 현대사회의 성과주의에 관해 비판했다. 그토록 피로했던 것은 ‘간’때문이 아니었다. 하나님을 위한 공동체라는 교회가 하나님과 무관한 방식으로 사유하고 살아가는 것이 이유였다. 브라이언 왈시는 <제국과 천국>에서 ‘탈퇴의 윤리’에 관해 말한다. ‘탈퇴의 윤리’는 농부요 시인인 웬델 베리의 이야기라며 “권력과 과학이 돈과 동맹을 맺은 곳, 야망이 무지의 힘을 받아 꿈틀거리는 곳, 인간의 천재성이 전쟁의 종노릇 하는 곳, 그런 곳에서는 하나의 대안밖에 없다. 말없이 발걸음을 옮기는 것, 그것뿐이다.” 라고 말한다.

유치원에서 돌아온 딸아이는 늘 놀이터에 가자고 조른다. 놀이터에서 그네를 타고 동네 아이들과 노는 딸아이를 보며, 놀이터 정자에서 수런거리는 아줌마들 사이에서 브라이언 왈시의 <제국과 천국>을 적바림 해가며 읽었다. 그래. 발걸음을 옮겨야 해.

이후 세상보다 더 세상 같은 교회에서 발걸음을 옮겼다. 하나님의 창조 세계를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딛는 걸음마다 꽃이 피어 그분의 향을 발했다. 향기에 취하니 세상으로 발걸음을 옮길 수 있었다. 비로소 ‘교회’를 향해 발걸음을 내딛을 수 있었다.

하나님의 창조 세계는 조화롭다. 웅장하고 거대한 나무부터 길섶 이름 모를 야생초, 뒤안길의 푸새들. 그 모두는 ‘있음’으로 세상을 풍요롭게 하고 조화롭게 한다. 우리 교회는 세상 뒤안길의 푸새가 되기를 바란다. 성과와 실적에 쫓겨 인생 뒤안길에 이른 그 누군가에게 거기도 생명이 있음을 알려주는 교회가 되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