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식주의가 종교적인 확신에 근거한 것일 수도 있고, 건강상의 이유에 근거한 것일 수도 있을 것입니다마는, 귀하의 질문이 채식주의자의 질문이라는 점은 다른 기회에 다룰 수 있었으면 합니다. 이번 기회에는 귀하께서 물으신 대로 같은 성경 안에 채식을 주장할 근거 주절과 육식을 합법화하는 근거 구절이 함께 들어 있다고 지적하신 그 문제만 다루도록 하는 것을 우선 양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창세기 주석들을 보면 귀하께서 제기하신 이 문제를 다루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명령이 일관성을 결여할 때 신도들이 곤혹을 느낍니다. 채식과 육식 중에 어느 것이 하나님의 뜻인가? 창조 당시 채식을 명하신 하나님께서 홍수 이후에 왜 육식까지 허락하셨는가? 우리가 이런 질문은 할 수 있습니다마는 엄연한 현실은 본문 그대로라는 사실입니다. 창조 당시에는 채식을 명하셨다가 홍수 심판 이후부터는 육식을 허락하셨다는 것입니다. 거기에 대하여 우리는 왜냐고 묻고 있습니다. 세계 여러 곳을 다니다 보면 채식주의자를 위한 전문식당이 있는가하면, 식육동물만을 요리하여 제공하는 육식주의자들을 위한 식육동물 carnivore 식당도 있더군요.

아주 흥미 있는 대답 하나 소개해 드립니다. 우리말로 번역된 <독일성서공회 해설관주성경>의 창세기 1장 29-30절의 해설을 보면, 생물을 죽여서 먹는 것은 하나님의 원천적인 창조 의도가 아니다. 창세기 9:2-3에 따르면 이는 야만적으로 되는 인류에 대한 하나님의 양보 讓步라고 하는 생각을 반영합니다. 참 재미있는 표현입니다.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양보하시는 것입니다. 마치 이스라엘 백성이 사무엘에게 다른 나라처럼 왕 세워주기를 요청할 때, 왕제도 자체가 하나님의 뜻은 아니었지만, 하나님이 양보하신 적이 있습니다.

“7 백성이 네게 한 말을 다 들으라 이는 그들이 너를 버림이 아니요 나를 버려 자기들의 왕이 되지 못하게 함이니라 8 내가 그들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낸 날부터 오늘까지 그들이 모든 행사로 나를 버리고 다른 신들을 섬김 같이 네게도 그리하는도다 9 그러므로 그들의 말을 듣되 너는 그들에게 엄히 경고하고 그들을 다스릴 왕의 제도를 가르치라” (삼상 8:7-9)

먹을거리 문제는 곧바로 생명 문제와 연관이 됩니다. 창세기를 보면 채소류, 과일, 곡식류와 같은 식물은 그것이 생명임에도 불구하고 동물이나 사람의 생명과는 구별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육식을 허락하는 장면에서 피를 못 먹게 하는 것과 “피는 곧 생명”이라고 하는 생각이 나타나 있는 것입니다. 육식을 하되 피는 제거하고 하라는 것입니다. 오늘 날 임신중절이나 생명 복제나 맞춤형줄기세포 배양과 관련하여 생명 문제가 심각하게 논의되고 있는데 여기에서는 인간의 생명만 다루어지고 동물 일반의 생명은 동물보호단체를 제외하고는 별로 관심을 갖지 아니합니다. 식물에 대해서는 그것을 먹을거리로 삼으면서도 생명을 파괴하거나 희생시킨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혹시 지금 채식과 육식 문제를 제기하신 질문자께서도 비슷한 생각을 가지고 계신지도 모르겠습니다. 채식은 생명을 희생시키는 것이 아니지만 육식은 생명을 희생시키는 것이다, 이렇게 말이지요.

현대 문명과는 동떨어진 상태에서 지금까지 신화적 세계관을 가지고 살고 있는 일부 원주민들 사이에서는 식물이나 동물이나 인간이 서로 먹고 먹히는 관계 속에서 생명을 공유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런 점은 문화인류학을 통해서 좀더 확인될 필요가 있습니다만 흥미를 불러일으킵니다. 이웃 종교의 살생금지와 채식주의도 연구해 봄직 합니다. 함께 더 생각해 보았으면 합니다.

민영진 목사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