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천근 님,

질문하신 순서를 따라 설명을 드리겠습니다.

1) 절이 시작되는 곳에 붙어 있는 o표

절 머리에 있는 동그라미(o)는 각설표 却說表라고 하는 것입니다. 우리말 표현에서 "각설하고"라고 하면, 그것은 곧 화제 話題를 돌린다는 말입니다. 가로쓰기에서 문단 文段이 새로 시작되는 곳에서는 먼저 줄[행行]을 바꾸고, 시작되는 행의 첫 칸을 비우기도 하지요. 우리말 번역 성경은 1911년 성경전서가 완역된 이래, 특히 세로쓰기 편집에서 줄곧 이 각설표로 새 문단의 시작을 알려왔습니다. 그러다가 가로쓰기 편집이 나오고, 거기에 매 절이 새 문단인 것처럼 보이는 절별 節別 편집이 나오면서부터 문단 구분을 위해 전통적으로 써오던 각설표를 문단이 시작되는 곳에 붙이기 시작한 것입니다.

2) 본문 안에 들어 있는 작은 활자 본문은?

"성경 책명 약자표" 끝에 "원문에 가입 加入한 작은 글자는 원문의 뜻을 더 밝힘임"이라고 설명이 되어 있습니다.

3) "비어 있는 절"은?

해당 본문의 난 아래 각주 脚註에 설명이 나옵니다. 예를 들면, 마태복음 23장 14절을 보면, 절 번호만 있고 "(없음)"이란 말이 있지요. 각주에 보면 "어떤 사본에 14절에 막 12:40과 눅 20:47과 유사한 구절이 있음"이라는 설명이 있습니다. 원본에 가까운 고대의 사본에는 이 절이 없기 때문에 본문에서 번역을 하지 못한 것입니다. 후대 사본에 첨가된 것은 번역 본문에서는 빼고 난 밖의 각주에 그 사정을 설명하였습니다.

4) 페이지(쪽) 표기에 혼돈이 있습니다. 쪽 번호가 없는 페이지도 있고, 쪽 번호가 두 가지로 나와 있는 것도 있고, 같은 페이지 번호가 연거푸 반복되어 나오기도 하고,

1938년 [개역]이 나온 이래, 그리고 1961년 [개역한글판](표제지 표시 연도 1956년)이 나오면서부터, 크고 작은 모든 변형 판에 동일한 쪽 번호가 붙기 시작합니다. 그래서 교회에서 성경을 같이 읽을 때, 예를 들면, 성경봉독을 맡은 이가 "창세기 12장 1절부터 9절까지를 봉독하겠습니다."라고 말하면서, 동시에 "구약성경 14쪽입니다."라고 말하면, 모든 성도가 가진 성경이 어떤 크기 어떤 모양의 판이든지 그것이 [개역한글판]이면, 쪽 번호가 다 같기 때문에 쉽게 성경 구절을 찾습니다. 예를 들면, [개역한글판]의 경우는 전통적으로 세로쓰기 편집을 한 것이든, 새롭게 가로쓰기 편집을 한 것이든, 또는 상하 2단으로 편집된 것이든 좌우 두 칼럼으로 편집된 것이든, 쪽 번호는 같습니다. 어느 것이든 '시편'은 804쪽에서 시작되고, '예레미야'는 1050쪽에서 시작됩니다. "구약전서"는 1331쪽이고, "신약전서"는 423쪽입니다. 심지어 500여점의 선화 線畵가 들어간 "일러스트레이션 성경전서 개역한글판"도 부분적으로 쪽 이동이 있지만 전체 쪽수는 같습니다. 그러나 전체 쪽수는 같아도 반복되는 쪽 번호가 있기 때문에 이것이 가능합니다. 예를 들면 [개역한글판 일러스트레이션](2002)의 경우, 808쪽과 831쪽은 각각 두 번 나옵니다. 그런가 하면, 827쪽과 829쪽 사이에 828쪽은 없습니다. 833쪽과 835쪽 사이에도 834 쪽이 없습니다. 이것은 실수가 아니고 쪽 번호로 성경 본문을 찾으려고 하는 독자를 위한 배려입니다.

이런 문제는 [개역개정판](1998)에서도 그대로 이어집니다. 성경본문에 해설을 넣거나, 그림을 넣거나, 관주를 첨가하거나, 편집형태를 쪽마다 좌우 두 칼럼으로 하거나, 성경 전체의 쪽 수를 1/3 정도 대폭적으로 줄여 얇은 성경을 제작하거나 할 경우에는, 역시 쪽 번호 이동이 발생합니다. 심지어는 쪽 번호가 없는 쪽도 생기고, 두 쪽에 같은 쪽 번호가 붙는 경우가 생기는 것 등은 [개역한글판]의 변형 판에서 볼 수 있는 것과 같습니다. 이것 역시 실수가 아니고, 의도적인 고안입니다. 전통적으로 지켜온, 본문만 있는 성경의 동일한 쪽 번호를 지키기 위한 고육지책 苦肉之策입니다.

편집에 따라서는, 쪽 번호 표기를 이중 二重으로 하기도 합니다. 편집 형식이나 내용, 사용 폰트의 크기 등에 따라 쪽 번호가 달라지는 경우가 있는 것은 이미 말씀드렸습니다. 그럴 경우 같은 쪽에 두 개의 서로 다른 쪽 번호를 붙입니다. 괄호 속에 들어 있는 쪽 번호는 그 편집본 자체의 쪽 번호이고, 괄호 없이 굵은 폰트로 표기된 쪽 번호는 [개역한글판]과 [개역개정판]의 쪽 번호가 일치하는 것으로서, 여러 변형 판에 똑 같게 적용되는 표준 쪽 번호입니다. 예를 들면, [굿뉴스 스터디 바이블 개역개정판](2000)을 보면, 매 쪽에 두 가지 쪽 번호가 붙습니다. 괄호 속 번호는 이 책의 쪽 번호이고, 괄호 밖 고딕 쪽 번호는 [개역한글판]과 [개역개정판]이 일치하는 성경의 쪽 번호입니다. [관주 해설 성경전서 개역개정판](2004)과 [성경전서 개역개정판 컬러 일러스트](2004)도 쪽 번호의 이중 표기와, 기존 성경 쪽 번호의 이동 移動과 탈락 脫落과 반복 反復이 있습니다.

성경 독자들이 성경 구절을 찾을 때 <책, 장, 절>로 찾지 않고 쪽 번호로 찾으려고 하는 한 이런 문제는 줄곧 생겨날 것입니다. 좋은 질문 감사드리고, 설명이 번잡하고 부족하나마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었기를 바랍니다.

민영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