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동체성서연구

햇순, 공동체성서연구


	4/2013	목차 (2013년 4월호, 제206호) :햇순:을 읽고.. 편지로 띄우는 말씀 / 공동체성서연구자료 / 성서난해구 해설 / 공동체만들기 오늘을 바라보며 / 말씀과 삶의 뜨락 / 현장의 소리 / 강정규 연재동화 영성생활에 도움되는 책 / 에니어그램영성 / 공동체소식 / 공동체 이야기

영혼의 언어와 논리

소년과 구르지예프(11)

Boyhood with Gurdjieff

영성생활에
도움이 되는 책

프릿츠 피터스
Fritz Peters

내가 도저히 잊을 수 없는 사건에 내가 휘말렸었다. 보통 집안 정리를 하는 내 일은 보통 때 수행하는 것 이상의 일이었다. 그날은 귀중한 손님이 그를 찾아왔다. A.R오리지. 그는 우리 모두에게 잘 알려진 사람이었고, 구르지예프의 이론을 가르치는 교사로 인증된 사람이었다. 그 날 오찬을 마친 다음에 두 사람은 구르지예프의 방으로 갔다. 나는 호출을 받고 보통 때처럼 커피를 가지고 갔다. 오리지 씨의 체격이 우람해서 우리 모두는 존경심을 가지고 그를 대하였다. 그의 지성과 헌신과 성실은 의심할 여지가 없었다. 게다가 그는 다정하고 동정심이 많아서 나는 개인적으로 그를 무척 좋아했다.

구르지예프의 방에 가면서 내가 쟁반에다 커피와 브랜디를 가지고 문간에 들어섰을 때, 몹시 화가 나서 외치는 큰소리가 나서 멈칫했다. 방 안에서 들려오는 구르지예프의 목소리였다. 나는 노크를 하고 나서 대답도 듣기 전에 방으로 들어갔다. 구르지예프는 침대 맡에 서 있었고 오리지는 냉정하게 창백한 얼굴로 서 있었는데 마치 창문틀 속에 갇혀 있는 듯하였다. 나는 그들 사이로 지나가서 테이블 위에다 쟁반을 놓아야 했다. 구르지예프의 목소리에 내가 혼난 것처럼 느끼면서 간신히 그렇게 하고는, 그 앞에서 안 보이게 얼른 물러났다. 내가 문에 닿았을 때 그 두 사람을 돌아다보지 않을 수 없었다. 키가 큰 오리지는 시들고 꾸겨져서 창문틀 속에 늘어진 것처럼 보였고, 구르지예프는 실제로 키가 큰 사람은 아니었으나 대단해 보였고 분노의 화신 같았다. 그가 화내는 말이 비록 영어였지만 나는 도무지 알아들을 수가 없었고 분노의 물결이 엄청났다. 뜬금없이 찰나적인 순간에 구르지예프의 목소리가 멈췄다. 그의 전 인격이 바뀌었다. 나를 보고 활짝 미소를 짓는데 믿을 수 없이 평화롭고 내면의 고요함이 느껴졌다. 나더러 나가라는 몸짓을 짓고는 다시 오리지를 향해서 조금도 수그러들지 않은 힘으로 다시 비난을 쏟아내기 시작하였다. 이 행동이 순식간에 일어나서 내가 믿기로는 리듬이 잠시 깨졌던 것을 오리지도 눈치 채지도 못하였을 것이다.

이제, 방을 나오면서 나의 감정은 완전히 뒤바뀌었다. 나는 아직도 구르지예프에게서 본 분노 때문에 실색하고 겁이 났다. 내가 한층 더 겁이 난 것은, 내가 방에서 나올 때 깨달은 것이 그가 ‘참지 못하는’ 것이 아닐 뿐 아니라 참으며 대단히 컨트롤 할 뿐더러 스스로 그것을 의식하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나는 아직도 오리지에게는 안 됐지만, 뭔가 크게 잘못해서 구르지예프의 눈으로 보기에는 분노가 터져 나올 수밖에 없이 만들었을 거라는 확신이 생겼다. 구르지예프가 틀렸다든가, 어떤 의미에서라도 잘못했다는 생각이 전혀 들지 않았다. 문제 삼을 것도 없었지만, 나는 절대적으로 그의 전 존재를 믿었다. 그는 잘못 할 수가 없었다. 아주 묘하게 들리겠으나, 그를 개인적으로 모르는 사람들에게 설명하기도 어려운 일이지만, 그에 대한 나의 헌신은 열광적이었다. 사람이 신을 믿듯이 내가 그를 믿은 것은 아니었다. 그는 항상, 나에게는, 단순하고 논리적인 이유로 해서 옳았다. 그의 별난 ‘생활방식’, 이를테면, 방을 어지럽히는 거나, 밤낮 시도 때도 없이 커피를 가져오라는 거나, 이른바 정상적인 생활방식보다 훨씬 더 논리적인 것으로 보였다. 그가 하는 모든 일은 자신이 원하고 필요할 때 하는 거였다. 그는 어김없이 남에게 관심을 가졌고 생각이 깊었다. 새벽 세시에 내가 선잠 깬 상태에서 커피를 가져가면 그는 고맙다는 말과 함께 사과하는 말을 안 한 때가 한 번도 없었다. 나는 그런 배려가 익숙해서 차리는 예의보다 훨씬 더 큰 것이라는 걸 본능적으로 알았다. 그리고, 필경 그가 관심을 갖는다는 단서가 될 일이다. 언제라도 내가 그를 보거나, 그가 나에게 명령을 할 때, 그는 전적으로 나를 의식하고 있었고, 무슨 말을 하든지 완전히 집중하였고, 내가 그에게 말을 할 때면, 그의 집중력이 분산되는 법이 없었다. 그는 항상 내가 무엇을 하는지, 또 무엇을 했는지를 정확히 알고 있었다. 물론 내가 그랬듯이, 우리 모두는 느꼈을 것이다. 그가 우리 중의 누구라도 함께 있을 때면, 그가 전적으로 집중하는 관심을 받고 있었다는 것 말이다. 나는 인간관계에서 이보다 더 고마움을 표시하는 일을 더 이상 생각할 수가 없었다.

Ⅶ

때는 분주하던 한 여름이었다. 어느 날, 구르지예프가 다소 무뚝뚝하게 내가 아직도 공부하기 원하느냐고, 내가 ‘만사’를 알고 싶다고 한 말을 꽤나 비아냥하듯이 상기시키면서, 내 마음이 바뀐 건 아닌지 물었다. 내가 아니라고 답했다. “맘 안 바뀌었다면, 어째 안 요청하는거야?” 나는, 당황하고 불편한 마음으로, 내가 다시 언급하지 않은 이유가 여러 가지 있었노라고 말했다. 하나는 내가 이미 요청하였는데 혹시 잊지 않았을까 상상했고, 둘째, 글을 쓰고 사람을 만나서 회의하느라 시간이 없을 줄 생각했다고 하였다.(다음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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