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조국을 위해 헌신하려 했던 마음을 접으려 합니다.” 지난 3월 4일, 이중국적 논란을 빚은 김종훈 미래창조과학부장관 후보자가 돌연 사퇴하면서 내놓은 변입니다. 그는 “한국인으로서 자긍심을 갖고 미국에서 인정받는 한국인으로 자리 잡을 때까지 수많은 도전과 어려움을 극복해왔다”고 했습니다. “제가 미국에서 일궈 온 모든 것을 포기하고 마지막으로 저를 낳아준 조국을 위해 헌신하고자, 남은 일생을 바치고자 돌아왔다”고도 했습니다. 그랬다던 사람이 “대통령 면담조차 거부하는 야당과 정치권의 난맥상을 지켜보며 제가 조국을 위해 헌신하려 했던 마음을 지켜내기 어려워졌다”는 야당에 대한 비난은 생뚱맞기까지 합니다. 그는 박근혜 대통령이 대한민국의 미래를 위해 삼고초려해서 데려왔다는 사람입니다. 그만큼 유능한 사람일 것입니다. 과연 유능함이란 무엇일까?

가나안에 정착한 이스라엘이 사사들의 시대를 맞이했을 때입니다. 이 기간이 대략 450년 정도 되는데, 백성들은 늘 주변 부족들로부터 극심한 고통을 겪었습니다. 마침 이스라엘이 모압 왕에게 짓눌려 괴로워하자 하나님께서는 베냐민 사람 에훗을 사사로 세우십니다(삿 3:15). 그런데 에훗은 오른 손을 못 쓰는 장애인입니다. 장수가 다스리는 시대에 오른 손을 못 쓰는 장애인을 지도자로 세우다니! 물론 모자람이 무능을 의미하지는 않습니다. 그는 비록 육체적으로는 모자랄지라도 남다른 순수함과 하나님을 향한 사심 없는 열정 즉 헌신의 열정을 지녔기에 하나님께서 그를 들어 쓰셨을 것입니다.

십자가에 달린 예수는 어떻습니까.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시나이까!”(마 27:46)라고 절규하는 예수. 이보다 더 나약할 수 없습니다. 이보다 더 비참할 수 없습니다. 수많은 병자를 고치고, 기적을 일으키고, 유대 지도자들과 거침없이 논박하고, 죽은 자를 살리기까지 하신 분이 이럴 수가 있을까? 사람들은 이때 예수에 대해서 여러 가지 해석을 내놓고 있습니다. 그 중에서도 ‘마지막까지 하나님의 말씀을 붙잡고 계셨다’는 해석은 일품입니다. 예수의 절규는 바로 시편 22편의 말씀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 순간의 예수는 연약한 자들의 모습 그대로입니다.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라는 최악의 절규야말로 세상에서 연약한 자들이 겪는 현실입니다. 무시당하고, 천대받고, 억압당하고, 괴로움을 겪고, 소외 가운데 있는 이들이 아무리 하나님을 불러도 하나님은 응답이 없습니다. 세상은 그들을 동정하기는커녕 손가락질하고 외면합니다. 그런데 놀라운 일이 있습니다. 예수께서 그처럼 비참하게 하나님의 부재를 절규하며 운명하는 모습을 지켜보던 백부장은 “이는 진실로 하나님의 아들이었도다”(마 27:54)라고 합니다. 하나님의 부재로 절규하는 예수에게서 하나님의 아들을 보게 되다니! 이런 역설이 어디서 온 것일까? 바로 온전한 헌신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예수의 온전한 헌신이야말로 절망을 희망으로 바꾸는 초월적인 힘이라고 보아야 할 것입니다. 백부장은 그걸 본 것입니다.

돌이켜 보면, 김종훈 씨의 경우는 대단한 열정과 도전 정신으로 성공한 사람입니다. 하지만 아직 그가 도달하기에는 역부족인 자리가 있습니다. 헌신의 자리입니다. 그는 조국을 위해 헌신하려 했다고 했지만 헌신이 무엇인지 이해하지 못했던 게 분명합니다. 정말 조국을 위해 헌신하려 했다면 조국의 정치 현실, 그것도 가당치도 않은 이유를 들어 야당을 비난하기에 앞서 자신의 진심을 보여주기 위해 절치부심해야 했을 것입니다. 국가의 주요 공직자로서 자신에게로 향하는 정당한 의구심조차 납득할만한 설명을 내놓지 않은 사람이 ‘조국을 위한 헌신’ 운운하는 것은 과유불급이 아닐까 싶습니다.

헌신이 무엇이겠습니까? 종교적으로 말하면, 더 할 나위 없이 연약한 자가 입은 은혜에 감사하여 제 몸과 마음을 굽혀 드리는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러기에 참된 헌신은 대가를 바라지 않고, 제 이름을 내세우지 않습니다. 성공은 야망과 집념의 결과일수는 있어도 헌신의 결과일 수는 없습니다. 오히려 세속에서의 성공은 공동체에 대한 헌신을 외면한 결과일 수 있습니다. 공직자로서 요청받는 지도력은 어떤 일에 성공한 사람이 아니라 공적 직무에 헌신하는 사람입니다. 국민이 좌절하고, 나랏일이 어지러울 때는 어김없이 유능하기는 하지만, 헌신을 모르는 성공한 사람들이 득세하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