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준 목사님,

평안하시기를 빕니다. 대단히 짧은 질문이지만 두 가지를 동시에 물으신 것으로 이해됩니다. 하나는 그리스어 본문의 ‘에피 아비아타르 아르키에레오스 epi Abiathar archiereoOs’를 “아비아달 대제사장 때에”라고 번역한 우리말 번역들([개역], [개정], [새번역] 등)의 번역이 옳은 것이냐 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비록 그러한 번역들이 옳다고 하더라도(개정의 여지는 열려 있습니다), 이 진술이 역사적 사실과 맞느냐 하는 것입니다. 둘 다 문제가 있습니다.

관련된 본문을 [개역 개정판]으로 보니까 다음과 같이 번역되어 있습니다.

그가 아비아달 대제사장 때에 하나님의 전에 들어가서 제사장 외에는 먹지 못하는 진설병을 먹고 함께한 자들에게도 주지 아니하였느냐 ([개정] 막 2:26)

대다수의 번역들이 예외 없이 그리스어 신약의 주요 사본에 나오는 ‘에피 아비아타르 아르키에레오스’를 전통적으로 “아비아달 대제사장 때에”라고 번역합니다. 그러나 이 진술은 다윗에게 진설병을 먹도록 내어준 제사장이 아비아달이 아니라는 데 문제가 있습니다.

그래서 더러는 “아비아달 대제사장 때”를 괄호 속에 넣기도 합니다(YLT). 역사적 사실과 맞지 않다는 문제가 있다고 판단해서 그렇게 한 것입니다. 왜냐하면, 다윗이 “하나님의 전에 들어가서 제사장 외에는 먹지 못하는 진설병을 먹고 함께한 자들에게도 준” 그 일이 있었을 때의 제사장은 아비아달이 아니기 때문입니다(삼상 21:1-6). 그래서 사본들 중에는, 마 12:4와 눅 6:4의 평행본문을 따라서, 아예 ‘에피 아비아타르 아르키에레오스’를 삭제한 사본들도 있습니다. 또 사본 중에는 ‘에피 아비아타르 투 아르키에레오스 epi Abiathar tou archiereoOs’라고 읽어서 시간대를 확대하는 것도 있습니다. 꼭 다윗의 구체적 행동이 있었던 시점과는 무관하게, 시간 범위를 광범위하게 확대하고 일반화시켜 “아비아달이 대제사장으로 있던 그 무렵에는”이라고 읽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것도 ‘억지’에 가깝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번역하고도 여전히 문제가 있다고 하여 그 본문을 괄호 속에 넣는 번역도 있습니다(NLT).

문제가 있는 본문을 고쳐 읽거나, 문제가 되는 본문을 삭제해 버리거나, 이 두 가지 시도는 어려운 원문이 제기하는 문제를 풀어보려는 시도일 뿐, 외적 증거가 없어서 설득력도 그만큼 빈약합니다.

학자들에 따라서는 이 말을 직접 하신 예수께서 구약을 인용하실 때 “아히멜렉”을 “아비아달”로 잘못 인용하셨거나, 아니면 마가가 복음서를 쓸 때 예수께서 말씀하신 것을 부정확하게 기록하였거나, 아니면 베드로가 마가를 도와서 예수님의 말씀을 전달할 때 대제사장의 이름을 혼동했거나, 세 사람 중 한 사람의 부정확한 기억에 연유한다고 추측하기도 합니다. (신약의 구약 인용에 이런 현상은 이 밖에도 몇 곳에서 더 볼 수 있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할까요? 연구가 거듭되어 어떤 해답이 나올 때까지는 일단 문제는 문제 그대로 두는 겁니다. 중요한 문제를 물어주셨고, 다른 이들과 함께 생각해 볼 수 있도록 하신 것 감사드립니다.

민영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