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이 화근입니다. 이곳저곳에서 강의하며 우리 기독교계에 새로운 ‘대안잡지’가, 이론과 실천을 동시에 담보한 ‘운동잡지’가 필요하다고 입버릇처럼 말하곤 했습니다. 이미 여러 이름의 잡지들이 산재해 있는데, 그리고 어려운 환경에서도 각자 소신껏 문서사역에 헌신하는 착한 일꾼들이 많다는 것을 아는데, 그래도 또 있어야 한다, 더 있어도 된다, 기회 있을 때마다 떠들고 다녔습니다.

기존의 대중잡지들을 폄하하려는 뜻이 아닙니다. 다들 나름의 장점들이 있지만, 독자 입장에서는 어째 손이 잘 가지 않더라는 말씀입니다. 더러는 너무 무거워서 지레 질려버리고, 또 더러는 너무 가벼워서 남는 게 별로 없어 보입니다. 그런가 하면 대학 사회는 상아탑 밖에서 어차피 소비되지도 않을 논문들을 ‘등재지’니 ‘등재후보지’니 하는 ‘학술잡지’에 싣기 위해 혈안이 된 모습들로 얼룩진 지 오래입니다. 1년에 논문 한두 편 실리는 것으로 ‘의무방어’하는 교수들이 늘어날수록 인문학은 결국 말라죽을 텐데 말입니다.

이른바 신학 또는 인문학 담론과 기독교대중을 쉬이 연결할 만한 고리가 없을까, 한참을 떠들고 다녔더니 드디어 메아리가 들려오기 시작했습니다. 첫 메아리는 제자들의 목소리였습니다. 매 학기 만나는 학부 및 대학원 학생들에게 “이 정도 글 솜씨면 기자를 하고도 남겠다.”고 ‘뻥’(?)을 쳤더니 정말로 ‘기자’를 하겠다며 나섰습니다. 무모한 선생에 용감한 제자들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 다음 메아리는 각계각층의 ‘예수 길벗’들로부터 울려왔습니다. 그다지 무겁지 않은, 그렇다고 너무 가볍지 않은 그런 잡지를 만들어 달라, (과장법을 살짝 섞으면) ‘열화와도 같은’ 지지와 성원을 보내주었습니다.

아, 그래서 성경에 “말이 창조한다”(창세기 1:1; 요한복음 1:1 참고)고 나와 있나 봅니다. 말에는 신통하게도 창조의 힘이 들어 있습니다. 잘 뱉은 말 한 마디가 사람의 기를 살려주기도 하고, 세상의 기운을 바꾸기도 하니, 함부로 말할 일이 아닙니다.

게다가 말은 내뱉은 사람이 주워 담는 법이랍니다. 하여, 졸지에 저에게 ‘아우름이’(편집인)를 하라는 숙제가 떨어졌습니다. 이런저런 지면에 글을 낼 줄만 알았지, 전체를 아우르는 일은 난생 처음이어서 실수 연발입니다. ‘엮음이’(기자)들의 형편도 별반 다르지 않습니다. 그러면 잔뜩 주눅이 들어 위축될 법도 한데, 이른바 ‘엮음 모임’(편집회의)을 할 때마다 웃음소리가 끊이지 않는 게 신기합니다. 새 일을 시작한다는 것, 낯선 길을 걸어간다는 것만큼 가슴 설레고 신나는 놀이가 없다는 걸 모두들 온 몸으로 깨닫는 중입니다.

그러고 보면, 우리 안에는 새로움에 대한 ‘타는 목마름’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런 기다림이 없었다면, 제 말은 한낱 ‘울리는 꽹과리’에 그쳤을 테지요. 줄탁동시 ?啄同時라, 안에서 쪼고 밖에서 깨트리는 행위가 동시에 일어나야 생명이 태어나는 법입니다. <이제 여기 그 너머>도 그렇게 탄생했다, 믿고 싶습니다. 새로운 잡지를 보고 싶은 기독교대중의 마음과 새로운 잡지를 내고 싶은 우리의 마음이 불꽃 튀는 사랑으로 만나 한 생명을 낳으려 합니다.

그렇게 두근두근 설레는 마음으로 2014년 9월 「이제여기 그 너머」를 처음 선보입니다. ‘이제여기’의 문제에 천착하되, 문제에 매몰되어 절망하거나 허무에 빠지지 않고 ‘그 너머’를 바라보자는 뜻이 담긴 제목입니다. ‘이제여기’의 문제는 동일한 인식 지평에서는 해결될 수 없고, ‘그 너머’의 지평에서만 옳은 답을 찾을 수 있다는 것이 우리의 믿음입니다. 그 믿음에 터해 신학과 인문학, 신앙과 일상, 문화와 예술을 종횡무진 가로지르며 성찰과 지혜를 나누는 놀이마당이 되고자 합니다.

부디 함께 놀자고 청합니다. 판을 벌였으니, 모두 와서 노래하고 춤추십시오. 이 놀이의 주인공은 세상에 몸담고 사나 ‘초월’의 춤사위를 잊지 않은 그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