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동체성서연구

햇순, 공동체성서연구


	9/2014	목차 (2014년 9월호, 제223호) :햇순:을 읽고.. 편지로 띄우는 말씀 / 공동체성서연구자료 / 성서난해구 해설 / 공동체만들기 오늘을 바라보며 / 말씀과 삶의 뜨락 / 현장의 소리 / 강정규 시 영성생활에 도움되는 책 / 에니어그램영성 / 공동체소식 / 공동체 이야기

영혼의 언어와 논리

소년과 구르지예프(27)

Boyhood with Gurdjieff

영성생활에
도움이 되는 책

프릿츠 피터스
Fritz Peters

나는 책임 때문에 무척 신경이 쓰이기도 하였으나 동시에 그 일을 맡았다는 것이 제법 자랑스럽기도 하였다. 내게 가장 큰 어려움은 수프를 끓이기 위해 석탄을 넣을 때마다 엄청난 큰 통들을 난로 위에 이리저리 옮기는 일이었다. 이렇게 자주 해야 했다. 아침 내내 열심히 일해서 어떻게든 식사를 마련하여 식탁으로 제대로 옮겨갔을 때는 스스로 자랑스러웠다. 요리사가 없었기 때문에 서빙도 내가 할 필요가 있었다.

늘 하던 대로 학생들은 줄을 서서 각자가 수프 그릇과 수저를 손에 들고 서빙 테이블을 지날 때 요리사는 고기 한 조각과 수프를 한 국자씩 떠 주었다. 모든 일이 한 동안 잘 되었다. 마지막으로 서빙 할 때가 되어서 드디어 라흐밀레비치가 나타나면서 어려움이 시작되었다. 그가 나에게 왔을 때는 수프 통이 거의 비우게 되어서 나는 국자로 뜨려고 통을 기울여야 했다. 서빙 할 때 보니까 우리 서로에게 운명의 장난 같았다. 국자에 떠올린 속에 제법 큰 코크스 덩어리가 있었다. 수프가 진해서 크게 쨍그렁 소리를 내면서 그의 수프 그릇에 코크스가 담기기 전까지는 보이질 않았다.

라흐밀레비치의 반응으로 봤을 때 바로 그 순간 그의 세상은 끝이 났다. 길게 늘어놓으며 나에게 공격을 시작했는데 영 끝나지 않을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지난겨울 동안에 아이들이 자기에게 한 일을 모두 끄집어냈고 자세히도 늘어놓았다. 그가 욕하면서 분노를 터뜨리는 동안 나는 속수무책으로 수프 통 뒤에 꼼짝없이 서 있었다. 이 공격은 구르지예프의 등장으로 끝이 났다. 그는 보통 때 점심을 안 먹기 때문에 나타날 시간이 아니었다. 그는 우리가 너무 소란을 피우는 바람에 일을 할 수 없어서 나왔다고 설명하였다.

라흐밀레비치는 즉시 그에게 돌아서서 자기의 고통과 우리의 잘못에 대하여 처음부터 되풀이 하면서 늘어놓기 시작하였다. 구르지예프는 눈 하나 깜짝이지 않고 그를 지그시 지켜보며 있었는데 이것이 그를 진정시키는 효과가 있었던 것 같았다. 라흐밀레비치의 목소리 톤이 점점 낮아지면서 기가 빠진 것처럼 보였다. 그에게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구르지예프는 라흐밀레비치의 수프 그릇에서 코크스 덩어리를 집어내어 마당에다 던졌다. 그리곤 자기도 수프 좀 달라고 하였다. 그가 말하기를 오늘은 새 요리사가 있으니 그의 솜씨를 맛보는 것이 자기 책임으로 느낀다는 것이었다. 누군가 그에게 수프 그릇을 가져 와서 수프 통에 남은 것을 내가 서빙 했더니 그가 말없이 먹었다. 다 먹고 나더니 내게 다가 와서 큰 소리로 축하해줬다. 오늘의 이 특별한 수프는 자기가 좋아하는 것일 뿐 아니라 이제까지 먹어본 중에 제일 맛있었다고 말했다.

그러더니 모여 있는 학생들을 향하여 말하였다. 자기는 많은 일을 경험했고 훈련도 받았으며 일생동안 음식과 화학과 정통 요리법과 물론 맛을 보는 법까지 많이 배웠다고 하였다. 그는 또 말하기를 오늘의 이 수프는 자기가 직접 고안했을 뿐 아니라 자기가 특별히 좋아하는 건데 그것 완성하는 데 항상 뭐 한 가지가 부족하다는 것을 이제 깨달았다는 것이었다. 내 쪽으로 일종의 경의를 표하듯 하면서 나를 칭찬하면서 다행스러운 사고로 완전한 물질을 찾았다는 것이라 하였다. 그게 바로 이 수프에 필요한 탄소라고 하였다.

그는 연설을 마치면서 자기 비서에게 지시하여 레시피를 바꾸고 먹을 것이 아니라 맛만 더하기 위하여 코크스 한 덩어리를 넣도록 하겠다고 말하였다. 그리고나서 그는 라흐밀레비치에게 후식으로 커피를 자기와 함께 하자고 청하며 그 둘이 식당에서 나갔다.

XVII

프리에레에는 이러저러한 이유로 중요한 인물로 꼽히는 사람이 많이 있었다. 이를테면 드 하트만 여사, 구르지예프의 여비서와 그의 남편, 피아니스트이며 작곡가인 드 하트만 선생, 이는 구르지예프가 작은 페달 오르간 ‘하모니움’으로 작곡한 음악을 여러 가지 음악으로 편곡도 하고 연주도 하였다. 그리고 가장 인상적인 영원한 거주자인 구르지예프의 부인인데 늘 우리에게 마담 오스트롭스키로 알리어졌다.

이 부인은 키가 매우 크고 골격이 우람하고 이목구비가 뚜렷하게 잘 생긴 여자였다. 항상 차분하게 보였고 건물 복도를 다니면서 주방과 세탁실 같은 곳의 운영과 전반적인 가사 일을 감독할 때에도 거의 소리 없이 움직였다. 나는 그에게 어떤 권위가 얼마만큼 있는 것인지 알 길이 전혀 없었다. 드물기는 하지만 몇몇 경우에 그가 우리에게 실제로 뭐라도 말하면 우리 마음에 아무 문제가 될 것이 없었고 그의 말이 곧 법이었다. 그가 움직이는 자세에 매료되었던 기억이 난다. 걸을 때도 누가 알아 볼 만큼 머리를 움직이는 법이 없었고 심지어 몸을 움직임에 있어서도 아주 작게라도 급하게 하는 일이 전혀 없었다. 결코 서두르는 법이 없었으나 동시에 일을 할 때면 믿기 어려울 만큼 속도감이 있었다. 그가 뭘 하든지 그의 움직임은 어떤 것도 특정 활동에 꼭 필요한 것이었다. 첫 번째 여름 동안에 프리에레에 있을 때 그가 구르지예프의 식사를 준비해서 그의 방으로 가져갔는데 이렇게 그가 주방에 있을 때가 바로 그가 일하는 모습을 볼 수 있는 기회였다. 그가 말하는 경우는 드물었다. 실상 절대로 필요한 경우가 아니면 그는 말을 소통의 수단으로 사용하지 않는 것처럼 보였다. 일단 말 할 때는 목소리를 절대 높이지 않았다. 그는 온화함과 확고함의 아우라에 둘러싸인 것처럼 보였다. 모든 사람이 그를 겉으로 대놓고 표현한 일도 없었지만 그는 사람들 마음속에 헌신하겠다는 마음을 진짜 실감나게 하였다.

우리 대부분은 보통 하는 말로 그와 접촉하지 못하였다. 예를 들면 그가 심지어 나에게 직접 말했던 경우가 언제 한 번이라도 있었을까 싶었다. 그러나 많이 아프다는 걸 우리가 알았을 때 그건 정말 우리 모두의 걱정거리였다. 그가 항상 지니고 살았던 무언의 권위가 아쉬웠고 그가 없다는 것은 형언하자면 결정적인 상실감이었다.

게다가 그의 병은 구르지예프의 일과에 큰 변화를 일으켰다. 그의 방은 크기가 같은 구르지예프의 방을 마주하고 있었고 본관 저쪽 끝에 있었는데 일단 자리에 눕자 구르지예프는 날마다 여러 시간씩 그와 함께 지냈다. 그는 아침마다 짧은 시간이라도 부인의 방에 가서 그를 돌보라고 책임을 맡긴 큰 조카딸 두 명과 때에 따라 다른 사람들을 지도하고 나서 점심 후에 다시 와서는 오후 내내 함께 지냈다.

이 기간 동안에 살롱에서 함께 모이는 저녁 시간들을 빼놓으면 우리가 구르지예프를 접촉하는 시간은 드물었다. 그는 자기 일에 몰두하여 물러나 있는 상태에서 프리에레 운영의 세부 사항은 다른 사람들에게 거의 다 맡겼다. 우리는 그가 가끔 부인의 음식을 준비하는 과정을 직접 감독하기 위하여 오는 것을 주방 당번을 할 경우에만 볼 수 있었다. 부인은 식이요법을 하는데 많은 분량의 선지도 들어갔다. 부인을 위하여 특별히 선택해서 구입하는데 살코기에서 손으로 눌러 뺀 것이었다. (다음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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