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한 달이 넘게 <코로나19> 앞에서 우리가, 아니, 세계가 움츠려들고 있습니다. 두 달째로 접어들면서 이젠 좀 잠잠해 지려나 했는데, 앞을 예상할 수 없을 정도로 감염은 줄곧 빠르게 확산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도 이 사태를 보고 계실 터인데, 하나님께서는 지금 어떤 심정이실지, 우리의 기도는 어떠해야 할지 여쭙고 싶습니다. 박격리 朴隔離 드림

격리님,

이 어려운 때에 하나님의 안부를 물어주신 격리님의 고운 마음에 잠시 울컥했습니다. 하나님께서도 어쩌시지 못하는 곤경 속에 계실 거라는 생각이 순간적으로 스쳐지나갔기 때문입니다. 귀하께서 메일 명을 “격리”라고 하신 걸 보니 혹시 지금 자택에서 격리 생활을 하고 계신 것 같기도 합니다. 아무쪼록 무사하시길 빌겠습니다.
지금 우리는 사순절로 들어가고 있습니다. “사순절”을 명상한 졸시 한 편 인용하는 것을 양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사순절

“저주는 이 어미가 받으마”1)
지옥 地獄에는 내가 내려가마2)
널 위해, 네 자녈 위해 울지언정
날 두고 울진 마라3)
날 향해 ‘글로리아’4)
부르지 마라
날 향해 ‘할렐루야’5)
외치지 마라
내 앞에 꽃꽂이 장식 粧飾 하지 마라
내 앞에 촛불 밝히지 마라
내가 잠적 潛跡하는 동안은
온갖 성물 聖物은 흑색 휘장 쳐서
내 흔적 가려라
그 아침
빈 무덤 밖에서
네가 날 만나기 전까지는
(“사순절” 후반부)

위 시는 우리와 함께 사순기간으로 들어가시는 우리 주님의 심정을 짐작해 본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 주님의 심정도 죽음을 바로 눈앞에 둔 심각 深刻 단계일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격리님께서 혹시 기억하고 계실지요?

사무엘기하 24장 16절
다윗 왕은 하나님의 허락 없이 인구조사를 한 것이 하나님 앞에 큰 죄를 범한 것임을 뒤늦게 깨닫지요. 하나님은 당신의 예언자 갓을 시켜, 세 가지 형벌 중 하나를 다윗이 스스로 택하게 하시지요.

1) 다윗이 다스리는 나라에 일곱 해 동안 흉년이 들게 할까? 2) 다윗이 자기 목숨을 노리는 자객에게 석 달 동안 도망을 다니게 할까? 3) 다윗이 다스리는 나라 안에 사흘 동안 전염병 傳染病이 돌게 할까?

다윗은 전염병을 택하지요. 북쪽 단에서부터 남쪽 브엘세바에 이르기까지, 백성 가운데서 죽은 사람이 칠만 명이나 되었지요. 죽음의 천사가 이제 마지막으로 예루살렘을 치려고 하는데, 갑자기 성경 안에 우리가 듣기에 황송한 말씀이 나옵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전염병 재앙 내리신 것을 두시고서, 성경기자는 “하나님 자신이 그런 재앙 내린 것을 두고서 회개 悔改하셨다”고 합니다.

감히 하나님을 주어로 하여 동사 “회개하다”(‘니캄’ repent)를 쓸 수는 없지요. 그런데 많은 영어 번역들 GNV(1599), KJV(1611), ERV(1885), DBR(1890), ASV(1901), JPS(1917), NAS(1977).... 등 이 Jehovah repented him of the evil 이라고 “repent”를 쓰고 있습니다. 물론, 현대로 오면서 NAB(1991)는 “regretted (유감스러워하셨다)”, CJB(1998)는 “changed his mind (마음을 바꾸셨다)”, CSB(1999)는 “relented (측은해 하셨다)”, NIV(1973)는 “be grieved (애석해 하셨다)” 등으로 번역하고 있습니다만.

우리말 번역들 곧 <구역>(1911), <개역>(1938, 1961), <개정>(1998), <새번역> (2004) 등은 하나같이 다 “여호와께서 재앙을 내리신 것을 뉘우치셨다”고 번역합니다. 그러나 “회개하다”와 “뉘우치다”라는 말은 같은 뜻이면서도, 전자는 죄를 연관시키는 종교적 뉘앙스가 있고, 후자는 일상생활에서의 반성을 말하는 세속적인 함의 含意를 지닌 말 같습니다.

<개역>이나 <개정>의 전신인 우리말 <구역>은 한문역 漢文譯에서 번역된 것입니다. 그런데 한문역 마저 사무엘기하 24장 16절 번역에 있어서만큼은 동양적 東洋的 신중성 愼重性, 혹은 예절 禮節을 보입니다. 우리말 번역에 영향을 준 <대표본문리 代表本文理>(1854)는 하나님께서 회개하셨다 거나 뉘우치셨다는 말을 쓰지 않습니다. 아예 다른 표현으로 바꾸어 버립니다.

“여호와께서 노를 그치시고, 괴로워서
(당신의 명령을 실행하는 천사에게)
타이르셨다.
‘그만하면 됐다, 네 손을 멈추어도 된다.’”
耶華和怒息
諭? ( )
足矣可止爾手6)

<代表本文理>(1854)

우리말 <구역>이나 <개역>은 <대표본문리>(1854)를 따르지 않고, 다음에 보듯이 별도로 나온 <문리관주 文理串珠>(1854)와 <천문리 淺文理>(1902)를 따른 것 같습니다.

“주께서 이런 재앙 내리신 것을
후회 後悔하시고,
드디어 백성을 멸하는 천사에게 타이르셨다.
‘이제 그만하면 됐다. 네 손을 멈추어도 된다.’”
主悔降此災
遂諭滅民之使者曰
今足矣可止爾手7)

<文理串珠>(1854), <淺文理>(1902)

같은 히브리어 ‘니캄’은 하나님을 주어로 하여 “후회하다”로도 번역이 됩니다. 하나님께서 몇 번 후회하신 일이 있으십니다. 이것도 우리를 난처하게 하거나 놀라게 합니다. 하나님은 그럴 분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것이 예사니까요. 하나님은 절대로 후회하시는 분이 아니라는 진술과, 하나님께서도 때로 후회하신다는 진술이 성경 안에 같이 나옵니다. 후회하시는 하나님 쪽에 더 끌림이 있는 것은 왜일까요? 나만 그럴까요?

하나님은 후회하지 않는 분이십니다. “하나님은 인생이 아니시니 식언 食言치 않으시고 인자가 아니시니 후회가 없으시도다” (개역 민 23:19a); “내가 이미 말하였으며 작정하였고 후회하지 아니하였은즉 또한 돌이키지 아니하리라” (개역 렘 4:28b).

그러나 하나님은 때로 후회를 하시기도 하는 분이십니다. “땅 위에 사람 지으셨음을 후회하시며 마음 아파 하셨다.”(창 6:6); “여호와께서 자기 백성을 판단하시고 그 종들을 인하여 후회하시리니” (개역 신 32:36a); “사울을 왕으로 세운 것이 후회된다.” (삼상 15:11a); “주님께서도 사울을 이스라엘의 왕으로 세우신 것을 후회하셨다.” (삼상 15:35b).

이 두 상반된 주장이 성경 안에 함께 진술되어 있습니다.

시편 116편 15절

시편 116편에는 하나님께서 사랑하시는 사람의 임종을 지키는 장면이 묘사되어 있습니다. 히브리어로 ‘하시드’라고 표현된 것을 보면, 그런 사람들은 퍽 “신실한 사람들”, 하나님 보시기에 “신심이 깊은 사람들”이었음에 틀림없습니다. 그런 사람들의 임종을 지키시는 하나님의 슬픈 마음이 잘 나타나 있는 곳이 시편 116편 15절입니다. 그러나 히브리어 본문을 글자 그대로 “성도의 죽는 것을 여호와께서 귀중히 보시는도다”(개역) 라고 번역한 축자역인 우리말 여러 번역에서는 하나님의 심정이 잘 드러나 있지 않습니다. 번역자의 무한책임을 느끼면서도, 히브리시인의 압축된 표현이 졸역 拙譯을 유도했다는 핑계라도 대봅니다. 다시 졸시 한 편을 인용합니다.

히브리 시인에게8)

성도의 죽음은
“하나님께도 큰 상처”라고
“하나님께서도 심히 애도하신다”고,
“고통스러워하신다”고
“안타까워하신다”고
“하나님께서도 우리의 슬픔에 동참하신다”고
“하나님께서도 우리와 함께 우신다”고
요즘 영미 번역자들 번역하는데....9)
한국어 번역 스무 개 중 오직 하나만이
“얼마나 쓰라리시랴.
주님의 백성 죽어 가는 것 바라보는
여호와의 가슴은”10)
이라고 했다
(“히브리 시인에게” 후반부)

고통 속에서 우리가 드려야할 기도라고 하셨던가요? 저더러 하나를 말하라면 여리고 어느 길 가에서 시각장애인 바디매오가 큰 소리로 우리 주님을 불렀던 말을 불러내겠습니다.

“다윗의 자손 예수님,
나를 불쌍히 여겨 주십시오”
(막 10:47)

역대 교회가 지금까지 부르는 자비송 慈悲誦 입니다.

Κ?ριε ?λ?ησον,
Χριστ? ?λ?ησον,
Κ?ριε ?λ?ησον.
주님, 우리를 불쌍히 여겨주십시오.
그리스도님, 우리를 불쌍히 여겨주십시오.
주님, 우리를 불쌍히 여겨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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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창 27:13a
2) 사도신경, 새번역 각주; 벧전 3:19;벧전 4:6
3) 눅 23:28
4) 세계 교회들은 영광송(榮光頌, Gloria), 대림절 기간과 사순절 기간을 제외한 모든 주일에는 ‘영광송’을 모두 함께 또는 번갈아 노래하거나 암송한다.
5) 사순절(四旬節) 기간 동안 ‘할렐루야’와 ‘영광송’ 부르지 않는다.
6) 耶華和怒息 야화화노식; 諭? 유초 ( ); 足矣可止爾手 족이가지이수
7) 主悔降此災 주회강차재; 遂諭滅民之使者曰 수유멸민지사자왈; 今足矣可止爾手 금족이가지이수
8) <성실문화> 102호(2020년 사순절, 부활절), 46쪽
9) 시 116:15 번역비교. 의미 전달이 잘 되는 번역. CEV Ps 116:15 “You are deeply concerned when one of your loyal people faces death.”; EASY Ps 116:15 “It hurts the LORD very much when one of his servants dies.”; GNB Ps 116:15 “How painful it is to the LORD when one of his people dies!”; NLT Ps 116:15 “The LORD cares deeply when his loved ones die.”; TNK Ps 116:15 “The death of His faithful ones is grievous in the LORD's sight.”
10) <현대어성경>(생명의말씀사, 1977 신약, 1985 구약) 시116:15; 다른 번역들은 “성도의 죽는 것을 여호와께서 귀중히 보시는도다”(개역); “그의 경건한 자들의 죽음은 여호와께서 보시기에 귀중한 것이로다”(개정). 무슨 말인가? 잘 죽었다는 말인가? 죽음에 대한 애도는 나타나 있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