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학교 때였는지 고등학교 때였는지, 국어 교과서에 호손의 「큰 바위 얼굴」이 나온 적이 있다. 이야기를 읽고는 ‘나도 어니스트 같았으면……. 내 얼굴도 노년에 시나브로 큰 바위 얼굴처럼 되었으면…….’ 하고 바랐었다. 그리고 이야기의 여운은 길게 이어졌다. 장성한 뒤에도 문득 큰 바위 얼굴 이야기가 떠올라 마음속이 뭉근해지곤 했으니까.

‘바라봄’의 과정은 ‘닮음’이라는 결과를 낳는다. 나는 무엇을 바라보며 살아왔을까? 어린 시절 교회를 다니며 예수님을 알게 된 후로, 때론 형식적으로 때론 들은 대로 때론 불같은 마음으로 때론 죄책감을 안고 예수님의 길을 따르고 싶다는 생각을 많이 해왔는데, 아이러니하게도 세월이 흐르면서 나만 변한 것이 아니라 내가 바라보는 예수의 얼굴이 달라졌다.

한 율법교사가 예수님께 와서 ‘내가 무엇을 해야 영생을 얻겠습니까?’ 물었을 때 예수님의 첫 대답은 “율법에 무엇이라 기록되었으며 네가 ‘어떻게’ 읽느냐” 하는 것이었다. 변함이 없는 말씀이 ‘어떻게’ 때문에 달라진다. 이 말씀을 읽으면 예수님이 내게도 물으시는 것 같다. “순애야, 너는 나를 ‘어떻게’ 읽고 있니?”

지금 생각해보면, 나는 몇 해 전까지만 해도 예수님의 일생을 히어로 영화의 스토리 즈음으로 읽은 게 아닌가 싶다. 물론 그 히어로는 어느 지역이나 지구를 구하는 수준이 아니라 우주 너머 무한 차원의 시공간을 좌지우지하는 어마무시한 히어로다. 그는 헤아릴 수 없는 사랑을 가졌고 그로 인해 극한의 고통의 길을 선택했고 완전한 죽음을 이루었고 부활했다. 나는 그런 예수님의 고난과 괴로움을 가늠하며 죄의식에 허덕이기도 하고 감사해하기도 했지만, 내 시선은 어떠한 고난이든 원래부터 다 이겨내게 되어 있는 예수님, 실제로 다 이겨낸 예수님, 그 결과로 수많은 사람들이 추앙하고 숭상하는 예수님, 그런 예수의 ‘영광’에 가 있었다.

나는 많은 사람들이 가는 편하고 쉬운 길보다 어렵고 좁은 길을 걸어가는 삶을 동경했다. 그런데 사실 내게 중요했던 건, 그 길 자체가 아니라 그 과정의 끝에 확인하고픈 내 어떤 모습이다. 내가 그리는 내 정체성, 모든 역경을 견뎌내고 숭고하고 대단한 무언가가 되어 있는 나를 확인하는 것, 그걸 원한 거다. 그건 결국 자의식의 아우성, 자의식의 동동거림. (에니어그램 4번 유형이어서 그런지, 불건강할수록 현실의 나와 꿈꾸는 자아상 간의 격차가 커진다.)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져 사람들과 같이 되었고’ 오래 전부터 알았던 이 말씀이 다시 눈에 들어오더니 가슴에 쿡 박혀들었을 때, 예수님의 삶의 방향과 내 욕망의 방향이 정반대라는 것을 깨달았을 때, 그 때부터 예수님이 좀 다르게 보이기 시작했다.

어느 장로님께 예수님의 공생애 이전 30년 동안의 삶을 묵상하는 것이 참 은혜롭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나도 언젠가부터 자주 그리어보게 되는데 생각할수록 놀랍다. 그 지극한 평범함에. 여러 기적을 일으키신 뒤 고향에 가셨을 때 주변 사람들의 반응이 증명했듯, 더도 덜도 말할 것 없이 그냥 그들 형제와 함께 지냈던 보통 사람, 목수 예수.

그 후로도 머리 둘 곳 없이 떠돌아다녔던 예수, ‘드릴게요’보다는 ‘~해주세요’라는 요청을 끊임없이 맞닥뜨려야 했던 예수, 이적을 보고 몰려들었다가 어려운 말을 한다며 썰물처럼 빠져나가는 제자들을 바라본 예수, 죽을 때까지 가장 가까운 제자들에게도 이해받지 못했던 예수, 무시와 시험과 죽임의 위협을 느꼈던 예수, 함께 먹고 자며 가르친 열둘 중 하나에게 팔아넘겨지고 나머지 다에게 버림받을 줄 알았던 예수, 철저히 혼자여야 했던 예수.

그런 예수님인데, 묘하게도 예전에 내가 알던 예수님보다 더 가볍고 더 호쾌하고 더 크게 웃고 더 태평하시다. 사이다 발언을 하셔서 속이 뻥 뚫리게도 하시고 녹아내릴 듯 부드럽기도 하시다.

삶에서 어떤 일을 겪고 나면 그만큼 예수님의 얼굴이 또 다르게 보일 테지? 새로운 예수님의 얼굴을 기대해본다. 그리고 언젠가 마주 바라볼 수 있는 그날을 오늘도 간절히 기다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