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패밀리즘(familism/가족주의) : 집단으로서의 가족을 개개의 가족성원보다 중시하고, 가족적인 인간관계를 가족 이외의 사회관계에까지 동일하게 확대 적용하려는 주의 (daum. net). 패밀리즘의 전형으로 영화 대부 Godfather를 꼽을 수 있다. 가부장적인 질서 안에서 여자와 어린이는 주체적인 존재로 인정하지 않는다. 가족에 대한 충성을 제일 가치로 여기며 배신자는 철저하게 응징한다. 자기조직에 대한 충성 외에 공공의 이익이나 개개인간의 보편적 가치는 찾아볼 수 없다.

예언자 아모스가 활동할 당시(주전 8세기) 이스라엘은 다윗, 솔로몬 시대를 버금가는 번영을 누렸습니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급속한 경제 부흥은 이스라엘 사회에 심각한 모순을 초래했습니다. 국가의 보호를 받으며 형성된 부유층과 그렇지 못한 빈곤층 사이에 부익부 빈익빈 현상이 심화됐습니다. 권력과 한 통속이 된 부자들은 더 많은 부를 축적하기 위해 가난한 농민들을 끊임없이 쥐어짰습니다(암 5:11). 이처럼 불의의 참상을 목격한 아모스는 “오직 공의를 물 같이 정의를 하수같이 흘러넘치게 하라”(암 5:24)고 포효합니다. 그런데 저들에게는 더 심각한 문제가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자기들만을 위한 신이라는 선민의식, 더 나아가 편협한 국수주의에 사로잡힌 것입니다. 고약한 패밀리즘입니다. 바로 그런 자들을 향해서 하나님께서는 너희도 이방 나라들과 똑같이 심판 아래 놓여 있음을 잊지 말라고 경고하십니다(암 9:7-8).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이라는 한 종족 그것도 부자들만을 당신의 백성으로 여기고, 다른 종족은 외면하는 분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아모스가 부유한 자들의 패밀리즘을 역겨워했다면, 바울은 유대교 지도층의 패밀리즘을 깨뜨리려 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인종과 성별과 종교와 출신 등의 구별과 차별은 유대교를 지탱하는 기둥이었습니다. 그리하여 바울은 ‘율법’이 인식하는 인간이 아닌 ‘하나님의 영’으로 인식하는 인간을 새롭게 정의합니다. “여러분은 또다시 두려움에 빠뜨리는 노예의 영을 받은 것이 아니라 자녀로 삼으시는 영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 영으로 하나님을 ‘아바, 아버지’라고 부릅니다”(롬 8:15). 바울은 지금 율법주의에 세뇌된 선민의식을 부정하고 대신 입양 사상을 끌어들입니다. 입양은 혈연이 아닌 계약에 의해 맺어지는 사회적 관계로 내적인 신뢰와 상호 책임성이 더 중요합니다.

마가는 바울보다 더 나아가 예수를 반 패밀리즘 성향으로 묘사합니다. “누가 내 모친이며 동생이냐 (…) 누구든지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자는 내 형제요 자매요 모친이라”(막 3:20-21, 31-35)는 등의 표현이 그러합니다. 예수께서는 당시 유대 지도층의 숨 막히는 패밀리즘으로부터 벗어나려 하신데 반해, 예수의 모친과 친족들은 그런 예수를 미쳤다며 마치 바이러스 유포자라도 되는 것처럼 격리하려 했습니다. 예루살렘 지도층과 가까이 지내지는 못할망정 미움 사는 일은 하지 말아야 할 터인데, 매사에 저들의 눈 밖에 나는 언행만을 골라서 했으니 그럴 법도 합니다. 예수의 친족들이라면 말할 것도 없이 예루살렘으로부터 질시당하는 갈릴리 사람들일 것입니다. 그런 사람들이 예수를 미친 사람 취급하는 예루살렘 중심의 사고에 젖어 있었던 것입니다. 예수께서는 그렇게 당신을 미친 사람 취급하는 가족들을 향해 “누가 내 모친이며 동생이냐”고 매섭게 말씀하신 것입니다.

한국의 정치사회에 뿌리 깊은 패거리 집단의 패밀리즘 폐해가 극심합니다. 감염병(코로나19)의 확산이라는 국가적인 위기 앞에서도 패거리 집단은 달라질 기미가 보이지 않습니다. 여기에 교회마저도 인류의 보편적 가치를 위한 공동체이기보다 내 교회만을 위한 패밀리즘에 천착합니다. 인류 구원을 위한 복음을 자기 패밀리의 이익을 위한 수단으로 사용하는 게 다름 아닌 교회의 ‘세습’입니다. 유별나게 번성하는 사이비 종교들은 패밀리즘에 기대서 자기 세력을 구축합니다. 감염병의 집단 유포로 온 나라를 쑥대밭으로 만든 ‘신천지’는 패밀리즘을 가장 효과적인 포교수단으로 활용한 종교집단입니다. 하지만 정의 없는 번영, 자기애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배타적인 사랑은 하나님 나라 운동에서 일차적인 경계 대상입니다. 예수께서는 숨 막히는 패밀리즘의 벽을 깨뜨리고 마치 영화 <기생충>의 반지하 방처럼 빛이 차단된 삶의 자리에 빛을 들이기 위해 활동하신 분입니다. 복음은 패밀리즘에 기댄 자기애적인 사랑을 해체시킴으로서 스스로를 자유케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