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불안한 존재이다. 그리고 삶 자체가 불안하다. 인류 역사는 어쩌면 이 불안을 극복하고자 노력했던 흔적이라고 볼 수도 있겠다. 그리고 이러한 실존적 불안은 누군가 혹은 어떤 특별한 존재를 의지하여 그로부터 ‘평안’을 보장받고자 하는 욕구를 분출시켜왔다. 그러한 욕구는 분명하고 단호하며 확고하게 대답하는 리더를 본능적으로 선택하도록 강제(?)한다!

언젠가 읽은 어느 목사의 글이 잊히지 않는다. 내용은 대략 이랬다. “오랜만에 평소 친하게 지내는 친구 목사를 목양실로 찾아갔다. 그 친구는 모든 면에서 세련되고 교회도 크게 부흥시킨 목사라 친구들이 다 부러워하고 존경하는 이름 있는 교회 목사였다.

그런데 마침 수심이 가득한 여인이 상담차 목사를 찾아와서 잠시 밖에서 기다리게 되었다. 그런데 십여 분 남짓 상담을 받고 돌아가는 내담자의 얼굴이 처음과는 달리 환하게 웃고 있었다. 문득 직업적인(?) 호기심이 발동했다. 무슨 상담을 받고 돌아가기에 저렇게 표정이 밝을 수 있을까? 목양실로 들어가기가 무섭게 친구 목사에게 물었단다. 저 아가씨는 무슨 상담을 했느냐고? 그러자 친구 목사가 심드렁하게 말했다. 별거 아닐세. 혼기를 훨씬 넘긴 노처녀인데. 언제쯤이면 짝을 만날 수 있겠느냐고 물으러 온거야. 그래서 뭐랬는데, 표정이 그렇게 확 밝아졌어? 별말 하지 않았어. 내년까지는 짝이 나타날 테니 걱정하지 말라고만 했어. 그걸 자네가 어떻게 알고? 알긴 뭘 알아. 맘이라도 편하라고 한 소리고, 그때까지 가고 못 가고는 제 팔자지.”

지난날보다 우리 사회가 문명화(?)되었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사전적 의미에서 문명화란 “사회의 물질적, 기술적, 사회 조직적 발전 상태가 높은 수준이 됨”이다. 조금 덧붙이자면, 사람들이 합리적이고 과학적인 사고를 하는 사회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현실은? 총선이나 대선이면 후보들이 당락을 점치거나 좋은 운 運을 점하기 위한 비법을 위해 소위 용하다는 무당·점쟁이·도사들 찾는다는 소문은 더는 숨길 일도 아닌 세상이다. 어디까지 믿어야 할지 모르겠지만, 점쟁이를 찾는 사람들 상당수가 기독교인이라는 주장도 심심찮게 들린다. 자식들 혼사를 위해 궁합을 보면서 “자식에게 좋다는데 문제 될 게 뭐냐”고 당당하게 말하는 사람들을 찾기도 어렵지 않은 게 현실이다.

그런 현실이고 보니, 신학자나 목사들이 성경의 예언이 豫言이 아니라 預言이라고 아무리 가르쳐도 그야말로 소귀에 경 읽기다. 그래서 예언의 은사가 있다는 사람에게는 조금도 의심 없이 줄을 서고. 그들의 말을 금과옥조로 여긴다. 실제, 목회자에게 시집간 딸을 신령한(?) 기도원 원장의 계시(?)를 듣고 이혼시켰다는 장로 이야기도 있다. 현실이 그러니 인기 있고 신령한 목사로 인정받으려면 꿈 풀이라도 잘해야 한다. 꿈을 학문적(?)이고 합리적으로 설명하거나 꿈은 별 의미가 없다고 말하는 순간 실망하는(?) 교인의 표정을 마주하고, 신령하지 못한 학습무 學習巫같은 평가를 감수해야 한다.

목사에게 무언가를 묻는다는 것은 스스로 결정하거나 감당할 수 없는 문제로 인한 불안을 해결 받고자 하는 행위다. 그리고 그것은 스스로 결정할 수 없거나 확신하지 못하는 문제에 대한 책임 전가의 심리가 반영되는 것이라고 보아도 무방할 것이다. 우스개처럼 흔히 쓰는 단어 중에 ‘결정장애’라는 것이 있다. 결정장애는 자장면이냐, 짬뽕이냐 같은 일상의 소소한 것에서부터 진로의 결정이나 배우자의 선택과 같은 것들로 범위는 넓혀져 간다. 그리고 이러한 현상들은 무엇이든 확신하지 못하는 현대인의 불안을 보여준다.

이러한 불안은 자기 확신의 결여로 나타나는데 그러한 증거는 일상의 언어에도 반영되고 있다고 생각된다. 대표적인 표현이 “~인 것 같아요.”이다. 자기가 먹은 음식을 품평할 때도 ‘맛있다’는 표현이 ‘맛있는 것 같다.’라는 표현으로 대체된다. 이런 표현은 “재미있는 것 같아요”등과 같이 각 가지 감정이나 의견을 표출할 때 어김없이 그리고 ‘당연하게’ 등장한다.

이러한 사회 속에 거하는 교회인지라 교인들도 스스로 생각하고 결단하고 책임지기보다 목사에게 모든 것을 묻는다. 그리고 생각이 필요치 않은 ‘단답’을 기대한다. 그리고 단호하게 예스나 노로, 혹은 해결책을 제시하는 목사를 능력 있는 종으로 대우하고 추종한다. 그러나 목사들은 스스로 의심해야 한다. 정말 자신의 답이 모두 정답인지, 아니면 모르핀처럼 순간의 불안을 잠재우는 독약인지. 누군가의 말을 패러디해 본다. ‘스스로 생각하고 결단하는 교인이라야 진짜다!’ 생각하는 갈대가 그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