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성실성과 지속성 후레드릭 비크너 Frederick Buechner는 “설교란?”(분도출판사, 이봉우 옮김) 책에서 부제를 의미심장하게 달았다. 즉 ‘복음: 비극, 희극, 그리고 동화’ 라고 붙인 것이다. 복음은 만인에게 주어진 것이다. 그러나 일차적으로 복음은 비극이다. 인간이 죄 가운데 있으므로 죽을 수밖에 없는 존재라는 슬픈 소식을 전해주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사실을 깨닫고 회개하며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구원을 받는다는 진실은 희극이 된다. 그리고 이와 같은 희극을 어린이와 같은 심정으로 받아들이고 온 몸으로 살게 될 때, 그것은 곧 동화이다.

그런데 복음이 비극이 되는 또 다른 차원이 있다. 바울 같은 사도들이 말씀을 전할 때 베레아 유대인들처럼 열린 마음으로 열심히 받아들인 사람들에게는 복음이 곧 기쁜 소식이 되고 희극이 되지만, 데살로니카 유대인들처럼 말씀을 전하는 바울을 배척함으로써 말씀 자체를 거부하는 이들에게는 복음은 곧 슬픈 소식으로 끝나고 비극에서 멈춘다.

사실상 인간의 말을 받아들이는 것이나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들이는 것은 커뮤니케이션, 즉 의사소통이란 차원에서 보면 같은 원리이다. 우선 경청하는 성실한 태도가 요청된다. 표피적인 반응을 하면서 더 이상 경청하기를 거부하거나 감정적 반응을 하면서 두 번 생각하기를 거부할 때, 상대방의 말을 소화시키거나 내면화하는 것은 처음부터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상대방의 말을 들으면서도 내가 듣고 싶은 말만 들으려고 할 것이 아니라, 내가 들어야 할 필요가 있다면 듣기 싫어도 들어야 할 것이며,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먼저 말하는 이의 의도를 파악하는 노력이 요청된다.

이와 같은 논리로 보면 성서를 읽을 때 기록한 이의 의도성 Intentionality을 파악하는 노력과 성실한 태도가 매우 중요하다. 이를테면 입장을 바꿔 놓고 생각한다는 말이 있듯이, 내가 말하는 이나 기록한 이의 입장에 서서 ‘나’를 보며, 그 말을 곱씹어 보거나 그 글을 되새겨 보는 것이다. 이러한 성실성과 떼어 놓을 수 없는 것이 지속성이다. 물론 이것은 열정이나 개방성과도 떼어 놓을 수 없는 것이다. 이 모든 것이 하나로 이어지지 않으면 지속성은 기대할 수 없기 때문이다.

성서연구를 하는 데 필요한 모든 것을 갖추었다 하더라도 지속성이 없이는 아무 것도 제대로 될 수가 없다. 평화를 만드는 사람에게서도 이 지속성이 없이는 성취가 불가능한 것임을 동시에 볼 수 있다. 세계 평화상 수상자의 선정 기준에서도 이것은 중요하게 꼽힌다. 창의성 Creativity과 용기 Courage와 지속성 Consistency이 하나로 이어질 때에 비로소 평화 만들기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성서연구를 하는 목적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평화를 만드는 일이란 점에서도 그렇거니와, 성서연구 그 자체만을 생각하더라도 지속성은 절대로 필요한 것이다.

지속성이 아무리 중요하더라도 그것은 저절로 생기는 것이 아니다. 베레아 사람들처럼 ‘날마다 성서를 연구’ 하는 사람들에게 가능한 것이다. 우리가 우리의 삶에 필요한 것이나 좋은 것을 알면서도 그것을 얻기 위하여 지속적인 노력을 기울이지 않는다면 그 좋은 것은 우리의 것이 될 수 없다. 좋으신 하나님의 말씀도 받아들이기 위해서는 이와 같이 지속성을 살려 날마다 노력해야 한다.

‘날마다’ 성서연구를 한다는 것이 바쁜 생활을 하는 현대인에게는 거의 불가능하게 여겨지고, 그렇기 때문에 시작도 해보기 전에 포기할 가능성도 있다. 그러나 반드시 성서라는 인쇄된 책을 펼쳐들고서야 되는 것은 아니다. 이미 녹음된 말씀을 들을 수도 있고, 함께 길을 가는 이들끼리 엠마오 도상의 제자들처럼 성서의 말씀을 함께 나눌 수도 있다. 혼자서 할 수 있는 것 가운데는 기억 속에 들어와 있는 말씀을 꺼내어 반추하고 묵상하면서 성서연구를 할 수도 있다. 이러저러한 노력을 기울여 날마다 조금씩 혹은 잠깐만이라도 성서연구를 하는 일을 백일 동안 지속하노라면, 어느덧 그것은 삶의 일부가 되어 아주 자연스럽게 ‘날마다 성서를 연구’하는 사람이 된다.(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