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갖는 믿음이 종종 거품일 가능성이 많아서 실은 일상 생활에 직접적으로 타당성을 갖지 못한다. 내가 함께 일한 여러 사람들이 종교에 헌신적인 사람들이어서 믿음에 대한 프라이드가 대단한 사람들이었다. 그러나 그들은 자신에 대한 신뢰가 없었고, 자신을 인생에 내어 맡기지를 못했다. 사실은 그들이 자신의 신앙 체계를 이용하여 인생에 일정한 거리를 두었다. 그들이 종교를 믿는 것은 절대적이었고, 그것이 생의 전부였다. 그러나 어떤 사람을 신뢰하거나 자신들의 삶 속에서 새로운 개발에 대하여 신뢰하도록 요청을 받으면, 그들은 도망쳐서 숨을 곳을 찾는다. 신앙은 고착되어 있고 불변의 것일 수도 있다. 그러나 믿음이란 물을 휘젓는 천사와 같은, 그런 천사의 현존에 대하여 거의 언제나 응답하는 것이다. 아니면, 동정녀 마리아에게 나타나서 그가 하나님의 아들을 잉태하게 된다는 메시지에 대하여 터무니없는 신앙을 요구하는 천사와 같을 수도 있다. 마리아가 천사에게 말한다. ‘Fiat michi’ ‘무슨 뜻인지는 몰라도, 당신의 말씀대로 나에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 이 천사 가브리엘은 사실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더 자주 나타나서 우리가 신뢰하고 받아들여야 할 새로운 형태의 삶을 잉태하게 되리라고 우리에게 말해준다.

나의 사촌 가운데 수녀가 된 사람이 있었는데 한번은 자기가 겪은 엄청난 신앙의 몸부림에 대하여 은밀히 얘기해준 적이 있었다. 영성의 꽃이 일찌감치 핀 그는 일찍이 수녀원에 들어가서 그토록 열심히 수도 생활을 여러 해 동안 하였다. 끝없는 이상주의와 함께 늘 생생하게 살아있는 지적 호기심을 가지고 그는 신앙 생활에 대하여 공부하였고, 항상 믿음을 강화하면서 시대에 맞춰 사느라 무척 노력하였다. 그러나 그에게는 상냥함을 조절해주는 실용적이면서 진지한 면도 동시에 있었다. 그가 신학이나 명상이나 교육에 대하여 이야기할 때면 이승의 아이러니와 부조리를 늘 감지하고 있는 영성 지도자처럼 마음껏 웃곤 하였다.

높은 영성과 실용성이 그토록 흥미롭게 배합된 것을 보면 그에게 있는 두 가지 측면의 열정을 동시에 보여준 듯 하였다. 그는 여러 해 동안 여름 학기를 통하여 과학 공부를 해서 학위를 얻고 그가 속한 수도회에서 운영하는 여러 고등학교에서 과학을 가르쳤다. 그는 또한 에큐메니즘에 대하여 사람들이 얼굴을 찌푸리며 비판적이었을 때에도 선불교와 동양적인 명상법을 배우기도 하였다. 그가 무엇을 말하거나 행동을 하더라도, 사람들은 그에게서 탁월한 의도의 순수성과 함께 무한한 결단력을 느낄 수 있었다.

어느 날 그는 자신이 희귀한 고통스러운 치명적인 병을 앓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되었다. 점차 그는 가르치던 일을 포기하고 보다 더 많은 시간을 자기 몸을 돌보는 데 써야만 하였다. 그는 이 의사 저 의사를 찾아다니며 자신의 흔치 않은 상태에 대하여 조금씩이라도 정보를 더 모으려 하였다. 한 시점에 가서, 그는 전국에 있는 어느 의사보다도 필경은 자기의 병에 관하여 자신이 더 많이 알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의 특징답게, 자기가 할 수 있는 최상의 방법으로 자신의 삶을 정돈하기 시작하였다. 그는 자신의 병을 연구하여 스스로 돌보기 위한 자신만의 섭생법을 개발하였다.

그러다가 한참 앓는 가운데 그는 고통과 삶의 단절로 진짜 대가를 치르게 되었다. 그는 신앙을 잃어버렸다. 이 사람이야말로 평생을 바쳐 영성을 개발하고 신앙 생활에 온전히 헌신한 사람이었다. 입원했던 동안에 깊은 우울증에 빠지게 되었노라고 나에게 이야기하는 것이었다. 그가 믿었던 모든 것이 깊고 어둔 구멍 속으로 허물어져 내렸고 그가 정직하게 올곧은 삶을 살려고 하였던 이전의 노력이 수포로 돌아간 느낌이었다. 그가 신부의 심방을 요청하였을 때, 그가 신앙을 잃었다고 말하니까, 경악스럽게도, 그 신부는 황급히 입원실에서 빠져나갔다. 그 신부가 그의 의심과 우울증으로부터 도망치듯이 서둘러서 문을 열어제치고 나갈 때 그가 보여 준 뒷모습이 오랫동안 기억에 남았었다고 나에게 이야기해 주었다.

그에게는 어둔 정서 속으로 가라앉을 밖에 다른 도리가 없었다. 그토록 열심히 공부하여 영성 수련을 한 그가 그런 신앙의 위기를 맞게 되리라고는 결코 생각조차 할 수 없던 일이었다. 그가 기대할 수 있었던 것은 고작해서 여기 저기서 부딪히면 극복할 수 있는 문제들을 경험하면서 계속하여 상승하는 것뿐이었다. 그러나 그의 운명은 엉뚱한 방향으로 이끌려서, 영성의 공백과 절망이 지배하는 삶의 자리에까지 오게 되었던 것이다.

그리고 나서 그는 자신의 내면 깊은 곳으로 이끌려 들어가 모든 영적 야망과 그 때까지 성취하였던 모든 만족을 말끔히 비운 채 자신이 어떤 존재가 되어야 할 것으로 알고 있었던 인격의 문턱에까지 이르렀다. 그에게는 안내자도 없었고, 다음 순간 어디로 가야할지 어떤 힌트도 없었다. 자기 앞에 삶이 없었고 누구도 말을 건넬 사람이 없었다. 그는 동방의 비움이란 개념에 관한 책도 읽었으나 그것이 그토록 삭막하고 무기력하게 느껴질 줄은 몰랐다.

그러나 그는 내게 말하였다. 그는 결과적으로 자신의 우울한 생각과 정서로부터 곧바로 솟구쳐 오르는 일종의 새로운 믿음을 발견하게 되었던 것이다. 그것이 그토록 깊은 텅 빈 구렁 속에서 휘젓는 것을 느끼며 충격을 받았다. 그것에 대하여 무엇을 생각해야 옳을지 몰랐다. 왜냐하면, 그것은 자기가 평생동안 배우고 가꾸어 온 믿음과는 너무도 달랐기 때문이었다. 그것은 그의 질병이나 무기력함과 떼어놓을 수 없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런 새로운 영성 안에서 그는 깊은 평화를 발견하였다. 이제는 더 이상 병원의 원목이나 그 밖의 어떤 사람으로부터 얻는 위로를 갈망하지 않게 되었다. 그는 이렇게 느끼게 된 새로운 믿음을 묘사하기가 어려웠다고 말하는 것이었다. 왜냐하면, 그가 이전의 영성 수련을 통하여 가꾸어 왔던 믿음과는 비교하기 어려울 만큼 달랐고 또 깊었기 때문이었다. 이 믿음 속에는 더 뚜렷한 개성이 있었고, 상상했던 것보다 자기 자신의 정체성이나 질병에게 더 가까이 연결되어 있는 느낌을 받았다. 그는 자신에게 필요했던 것을 자기만의 방식대로 혼자서 발견하였던 것이다. 자기 신앙의 상실과 회복에 대한 이런 이야기를 나에게 들려준 뒤 얼마 안 되어서 그는 편안하게 숨을 거두었다.

영혼의 경제학이란 것이 있어서, 새로운 영역의 사고나 감성이나 관계 속으로 진입하는 데는 가파른(호된) 값을 치러야 한다. 꿈은 돈의 이미지로 이와 같은 교훈을 가르쳐 준다. 꿈을 꾸는 사람은 철도 여객 전무나 도둑이나 상점 주인에게 돈을 주기 위하여 주머니 속에 손을 넣으라는 말을 듣는다. 신화에서 보면, 지하 세계에 여행하는 사람은 통행세를 낼 수 있도록 잔돈을 준비해 오라는 충고를 받는다. 나의 친척은 망각의 강에 다다랐을 때 사공에게 뱃삯을 톡톡히 치렀다. 그는 오랫동안 지녔던 확신과 영성 생활의 기쁨을 포기해야 하였다. 이전의 믿음을 다 비우고서야 그것이 새로워졌고 또 완성되었다.

인간의 고난과 상실 속에는 이성을 가지고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미스테리가 있는데, 그것은 욥이 겪은 미스테리와 같다. 그것은 믿음으로 살 수 있을 뿐이다. 고난은 우리가 일상적으로는 소홀히 하는 자리에 집중하도록 억지로라도 만든다. 그 수녀가 오랫동안 집중했던 것은 그의 영성 수련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었다. 그러나 그 다음에는 영성의 어떤 소도구도 렌즈도 없이 억지로라도 자기 자신의 마음 속을 들여다보게 되었다. 그는 그런 믿음이 오로지 영성 생활이나 고등 계시로부터만 오는 것이 아니라, 그것은 동시에 깊은 데서 뿜어 나오는 것처럼 오거나 지극히 개인적인 삶의 자리에서 나오는 아주 비개인적인, 그래서 일반적인 현실처럼 다가오는 것임을 배워야만 하였다. 내 생각에는 그가 수많은 신비가들이 가르쳐주는 그런 교훈을 배웠던 것 같다: 즉, 이런 필요한 차원의 믿음은 ‘알지 못함’에 의하여 부화되는 것이다. 쿠사의 니콜라스가 말하기를 우리는 교육을 받아서 무지 속으로 들어가야지, 안 그러면 하나님의 온전한 현존은 영영 다가오지 못하는 것처럼 멀리 떨어져 있을 수밖에 없다고 하였다. 뭐가 어디로 가는지 아니면 우리가 무엇을 할 수 있는지를 모르는 그 어려운 지점에까지 도달해야만 한다. 바로 정확한 그 지점이야말로 참된 믿음을 향하여 열린 문이다.

거룩한 합일

모든 일상의 몸부림 한가운데서 우리는 계몽과 모종의 해방을 희망한다. 우리의 기도와 명상 속에서 우리는 평범한 삶의 성취를 희망한다. 융이 늘 가르쳤던 것은 이 두 가지 아니마와 아니무스는 hieros gamos 즉 거룩한 혼인이라 할 수 있는 신비한 결합을 가능하게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결과적으로 그리 쉬운 결혼이 아니다. 영은 자기 나름대로의 야망과 열광주의와 근본주의와 완전주의 안에서 내뿜어 나오는 경향이 있다. 영혼은 끈끈한 기분이나 불가능한 관계나 강박적인 걱정 속에 처박힌다. 결혼이 성립되기 위해서는 각자가 상대방을 올바르게 인식하는 법과 또 상대에 의하여 영향을 받는 방법을 배워야 한다. 마찬가지로 영성의 높은 목표는 영혼의 낮은 한계에 의하여 조절되어야 하며 영혼의 무의식은 관념과 상상력에 의하여 일깨워져야 한다.

이와 같은 합일을 향한 움직임은 시도되어야 할 일이며 또한 작업도 하고 여행도 해야 하는 일이다. 이것이야말로 영혼 만들기에 대한 관념으로서 키이츠가 서술하고 힐먼이 권고하는 바와 같다. 영혼 만들기는 시간과 노력과 기술과 직관과 용기가 필요한 여행이다. 영혼과 함께 하는 모든 작업은 연금술이나 순례나 모험과 같은 과정이어서 우리가 즉각적인 성공도 기대할 수 없거니와 어떤 식으로도 끝이 나지 않는 과정일 뿐임을 아는 것은 도움이 될 것이다. 모든 목표와 끝은 자기 스스로 발견하게 하는 것이고, 상상될 수 있는 만큼 중요한 것이지만 결코 문자 그대로 성취될 것은 아니다.

영성 문헌에서 하나님께 이르는 길이나 완전에의 길은 종종 오름으로 묘사된다. 그것은 단계적으로 이루어질지 모르나 목표는 분명하고 방향은 정해져 있고 길은 곧다. 그러나 우리가 이미 살펴본 바와 같이 영혼의 길에 대한 이미지는 아주 다르다. 그 길은 막다른 골목마다 끝에 가서 보면 괴물이 있는 그런 미로와 같거나 오딧세이 같은데 그 속에서 목표는 명백하지만 그 길은 기대 이상으로 훨씬 더 멀고 꼬여 있다. 오디세우스는 ‘polytropos’ 즉 수없이 많이 돌아가는 사람인데, 이 단어는 영혼의 길을 위해서는 좋은 말이다. 데메테르는 사방으로 딸을 찾아 나서는데 마침내 지하세계에 내려간 뒤에야 지구가 소생할 수 있게 된다. 트리스탄의 길 또한 이상야릇한 것인데, 그는 바닷길을 여행하는데 노도 삿대도 없이 하프를 연주하며 간다.

영혼의 길은 일편단심으로 계몽을 향하여 질주하는 것보다는 삶의 복합성으로 들어가는 통과의례와 더 비슷하여서 그 위에서는 짜임새와 장소와 사람들이 중요하다. 영혼이 건들거리듯 길을 가며 장애물 때문에 지연되기도 하고 온갖 매력 때문에 정신이 분산될 때 목적이나 지향성이 없는 상태는 극복될 수 없다. 발전에 대한 소원은 제쳐놓아야 할지 모르겠다. 그의 시 ‘Endymion’에서 키이츠는 이 영혼의 길을 정확히 묘사한다:

허나 이것이 인생이다:
전쟁과 행위 실망과 불안,
상상력의 몸부림은, 멀리 또 가까이,
모든 것이 인간적인 것:
제각기 속에 이 좋은 것을
지니고 있나니,
그리하여 그들은 아직도 공기이며,
묘한 음식이어서
우리로 하여 실존을 느끼게 한다.

이것이야말로 영혼의 길의 ‘목표’ 즉 실존을 느끼는 것이다. 인생의 몸부림이나 불안을 극복하는 것이 아니라 일차적으로 인생을 알고, 그 정황 속에서 충만하게 실존하는 것이다. 영성 수련이 때로는 남의 발자취를 따라 가는 것으로 묘사된다. 예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 보살의 삶은 그 길의 모델이 된다. 그러나 영혼의 오딧세이나 아니면 그 미로 속에서 갖는 느낌은 아무도 전에 이 길을 가 본 사람이 없다는 것이다. 치료받으러 오는 이들이 종종 묻는다. ‘누가 이런 경험을 한 사람이 있는지 아세요?’ 이 영혼의 길에서 맞닥뜨리는 막다른 골목들이 남에게도 익숙하다는 것을 알게 되면 안심이 될 것이다. ‘내가 바른 궤도를 가고 있다고 생각하세요?’ 누군가 다른 이는 이렇게 물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