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0년여 동안 우리는 실로 많은 것을 경험하였습니다. 눈부시게 발전한다는 말을 들을 만큼 쉼 없는 변화도 겪은 셈입니다. 수십 년 계속되었던 군부 독재와 이른바 ‘군사 문화화’ 된 세상을 살다가, 문민정부와 국민의 정부를 거쳐 참여정부의 오늘에 이르렀습니다.

이 기간에 우리는 모처럼 국민 소득 일만 달러 시대를 여는가 싶더니, “샴페인을 너무 일찍 터뜨린다‘는 소리를 듣는 것과 때맞춰 국제환란(IMF) 위기를 맞기도 하였습니다. 그래도 모두가 위기를 극복하는 일에 동참하여 세계가 놀랄 정도의 빠른 회복을 보였습니다. 그 가운데서도 IT강국의 면모를 유지하며, 특히 작년에는 2002 한일 월드컵의 세계적인 축제를 성 공적으로 치르고, 또 한번 세계를 놀라게 하였습니다.

그러나 희망과 기대 가운데 시작된 참여정부는 너무 빨리 많은 우려를 낳으며 국민을 불안하게 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단순히 상승 기대 때문에 나타나는 현상만은 아닌 듯 싶습니다. 그래서 심각한 상황에 부딪힐 때마다 어른들이 되뇌이던 말씀이 불현듯 떠오릅니다. “뭐가 모자라서?” 지금 이런 상황이 되었는가 하는 것입니다.

‘동북아 중심국가’라는 거창한 말은 안 하더라도 최소한의 성장 안정의 균형 잡힌 발전을 이루며, 이미 가입한 OECD 국가들 가운데서 크게 뒤지지 않고 어깨를 나란히 하려고 노력하자 해도 사실 우리에게는 모자라는 것이 꽤나 있을 법합니다. 무엇보다도 지금의 시점에서 절실하게 느껴지는 것은 ‘생각의 모자람’과 ‘진지함의 결여’라 하겠습니다.

어느 성인이 말씀한 것처럼, ‘모든 것이 우리 속에서 우리화해야 합니다. 대한민국은 대한민국다워야 하고, 노무현은 노무현다워야 하고, 김영운은 김영운다워야 한다는 말일 것입니다. 남의 생각 빌려오자는 것 아닙니다. 없는 것 억지로 쥐어짜듯이 끄집어내서 어쩌자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삶을 우리 속에서 내면화해야 할 것을 요구하는 뜻이라 여겨 집니다.

독일이 낳은 세계적인 철학자요 여성 신학자인 도로테 죌레는 세계 대전을 치르며 나치 독일이 저지른 만행에 대한 독일 국민의 고백과 함께 오늘도 자행되는 세계적인 폭력에 대한 비판 속에서 그 원인을 바로 ‘사고의 결여’와 ‘진지성의 결여’에서 찾았습니다. 따지고 보면 오늘 우리 사회 여기저기서 빚어지고 있는 숱한 갈등과 폭력성을 봐도 우리가 조금만 숨을 돌리며, 한번 생각할 것을 두 번 생각하는 자세를 갖기 시작한다면, 우리는 생각의 모자람도, 진지성의 모자람도 얼른 극복할 것이라 믿습니다.

다 자란 사람들이 언제까지 모자란 모습을 연출해야 하겠습니까? 개혁을 주창하는 이들이 자기 혁신 없이는 힘을 낼 수가 없습니다. 국가 안보를 강조하며 집단의식에 충일한 사람들이 공동체 의식과 공동선에 대한 관심을 높이지 못하면 수구세력이란 지탄을 면할 길이 없습니다. 하늘나라를 강조하면서 축복과 성장에만 몰두하는 이들은 시대 착오적 근본주의자란 낙인을 피할 수 없습니다.

마찬가지로 평화와 정의를 부르짖는 사람들이 자기 내면에서 그리고 공동체 내부에서 상호적인 인정과 존중, 이해와 신뢰 그리고 관용과 협동 속에서 몸부림치는 노력을 지속하지 못하면, 평화의 헛 구호를 외치는 위선을 모면할 수가 없습니다.

우리는 지금 건국 초기에 탄생한 세대가 대통령을 비롯하여 막중한 책임의 자리에 앉아있는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70～80년대의 반독재, 민주화 투쟁의 대열에 투신하였던 3040의 열혈 청년들이 요직들을 맡아 중요한 정책을 결정하고 수행하는 상황입니다. 개혁을 부르짖는 목소리가 큰 만큼, 지난 세월의 그늘 속에서 자신들도 모르게 이끼 끼듯이 내면과 삶의 스타일에 묻혀온 타성적인 관행과 기계적인 습성을 그만큼 강도 높게 깨어버리고 떨쳐버리는 결단이 요청됨을 생각하고 또 느껴야 합니다.

지금이 어느 때인데, 큰 지도자들과 요인들이 하는 ‘사려 깊지 못한 말’ ‘사려 깊지 못한 행동을 국민들이 언제까지 반복해서 지켜봐야 하겠습니까? 참여정부가 가능하려면, 무엇보다도 국민의 ‘역동적 파트너쉽’이 요청되는 법인데, 지도자들은 이 점에 대하여 깊이 생각하고 또 거기에 진지함을 더해야 할 것입니다. 정권도 대권도 교권도 요술방망이가 아닙니다. 이를 맡은 사람은 모름지기 고뇌에 찬 생각과 목숨을 건 진지함으로 살아가야 할 것입니다. 그래야 국민들도 모두 ‘생각의 모자람’과 ‘진지함의 모자람’을 이겨낼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