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뿐이는 딸처럼 키우는 다섯살박이 고양이이다. 작년에 미국에서 한국으로 이사를 온 후 이뿐이는 새 환경에 나름대로 적응하며 지내고 있다. 거기서 이뿐이는 각종 새들과 들짐승을 이 창문 저 창문 다니며 늘 내다볼 수 있어서 집안에 살면서도 심심치 않았다. 여기는 이웃을 볼 수 없게 막은 담장과 가리개 때문에 창가에 앉아도 볼 게 없어 심심해하니 미안하고 안쓰럽기만 하다. 고양이는 적응의 귀재라니까 그나마 자족하며 지내는 모양인데, 파리를 잡느라 가끔 날쌔게 움직일 뿐 운동량이 적어 이뿐이는 살이 찌고 있다.

사실 이런 물리적 환경보다 정신적 환경이 이뿐이를 더 힘들게 하는 듯하다. 어쩌다 밖으로 함께 산책을 가면 사람들은 이뿐이를 보고 질겁하질 않나, “저리 뚱뚱한 고양이를 왜 어깨에 매고 다닌담” 등 한마디씩 한다. 밥을 “사료”라고 부르질 않나, 백화점에 가도 애견코너는 있어도 애묘코너는 없으니 차별과 맞서 살림꾸리기가 쉽지 않다. 가족조차도 “그 애물단지를 왜 데려왔냐”느니, “뚱땡이”라고 놀려댄다. 20kg짜리 개한테는 아무 말도 안 하면서 5kg이 채 안 되는 쪼꼬만 고양이를 두고 말이다. (대신 견공을 차별하자는 말이 아니다.)

최근 주한 외국인(외교사절, 교수, 언론사 특파원, 기업 주재원 등)을 대상으로 한국 이미지에 대한 조사 결과가 흥미롭다. 이들은 “친절하고 정이 많다,” “역동적이다,” “안전하다,” “대중교통이 편리하다” 등을 좋은 점으로 꼽았다(그 다음으로 “여성이 아름답다”는 항목이 있는 것은 이 외국인 오피니언 리더들이 주로 남자요, 성차별적 시각이 있기 때문이라고 본다). 나쁜 점으로는 폐쇄성과 차별이 가장 컸고, 교통 체증과 대기 오염과 무례가 그 뒤를 따랐다. 교통이나 오염 문제야 세계 어느 대도시를 가도 다 겪어야 하는 문제이나, 내 생각에 폐쇄성과 차별은 세계화시대의 가장 큰 장애이고 교통 문제나 오염보다 훨씬 짜증나고 숨막힌다고 본다.

13년의 미국살이 후에 한국에 살며 느끼는 변화 중에는 무언가 꼬집어 말할 수 없는 좋은 것, 시민의 전체적인 성숙도랄까 그런 게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간 들을 수 없었던 성차별적 잔소리를 광고, 뉴스, 책, 주위 사람들로부터 다시 들어야 하고, 제도적인 것도 겪어야 하는 게 여간 고통스러운 것이 아니다. 2002년 통계청 자료에 의하면 한국의 직장 여성은 남성이 100을 벌 때 61.7밖에 못 번다. (그것도 고용된 여성만 통계 낸 것이니 일하고 싶어도 자리를 안 줘서 못하는 여성을 포함할 때 실제 차이는 더욱 크다.) 공원에서 내 앞에서 운동하던 여성들이 자신이 겪은 차별을 성토한 후에 “결혼한 여자는 공무원밖에 할 게 없어. 공무원밖에!”라고 조롱조로 뱉는 말을 들었다. 정부는 모든 여성을 공무원으로 채용하라!

남아선호도 역시 많이 나아졌다고는 하나 셋째아 이상의 경우 아들 골라 낳기는 여전해서 전국 평균이 100:143.1이고 대구 평균이 100:192.6이다. 직장에 다니면서도 대부분의 가사를 담당하는 여성은 87.6%나 된다. 그래서 옛날에 허난설헌(1500년대 후반 인물. 본명은 초희. 허균의 누나. 천재적 시재를 발휘)이 “하고많은 나라 중 조선에서 태어난 것, 하필이면 여자로 태어난 것, 하고많은 남자 중에 김성립의 아내된 것”을 한탄한 말이 21세기 한국 여성의 입에서도 절로 새어나올 판이다.

이뿐이는 이런 환경과 상관없이 우리를 엄청 행복하게 한다. 우리 세 식구 중(남편과 나는 목사이다) 이뿐이 인격이 가장 고매하고 하나님을 젤 많이 닮았다. 우리는 한 입으로 단물과 쓴물을 내는데 비해, 이뿐이는 부족한 우리를 한결같이 인내하고 사랑해 준다.

지난 한해 동안 감리교여성지도력개발원, 여신학자협의회, 이화여대 대학원 등에서 여러 여성을 만날 기회가 있었다. 인상적인 것은, 끊임없이 작은 상자에 가두어 아주 조그맣게 만들려고 하는 성차별적 문화와 제도에도 불구하고 이 여성들은 어쩜 그리 당차고 똑똑하고 무한한 가능성을 지녔느냐 하는 점이었다. 나는 계속 이렇게 겪다간 곧 자신감과 자긍심을 다 잃고 먼지가 되어버릴 것 같은데 말이다. 그래서 여성은 우선 좋은 여성 동무들이 많이 필요하다. 맨날 이쁘다고 말해주고 잘 들어주고 가능성을 찾아주고 사람을 있는 그대로 받아주고 평등평화 세상을 위해 함께 일하는 여성들. 그리고 한국에 그 비슷한 남성 동무들이 무지 많아졌으면 좋겠다. 그래서 국제 고양이 이뿐이처럼 우리가 모두 국제 한국인, 성숙한 세계인이 되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