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찍이 소크라테스는 ‘인생을 왜 사는가를 묻지 않는 사람은 인생을 살 가치가 없다’고 말하였습니다. 인생의 목적과 의미를 묻지도 않고 알지도 못한 채 살게 되면, 기계적인 삶이나 동물적인 삶은 이어갈지 몰라도 인간의 삶이라고 할 수는 없다는 말이 될 것입니다. 굴지예프도 가장 근원적인 물음으로 시작합니다. 즉, ‘보편적으로 말해서, 생명의 의의는 무엇이며, 구체적으로 말해서, 인생의 목표와 목적은 무엇인가?’

어째서 예부터 철인이나 현인들은 끊임없이 이와 같은 본질적인 물음을 물었을까를 다시 생각하게 됩니다. 그만큼 대부분의 보통 사람들은 타성에 젖어서 기계처럼 아니면 꼭두각시처럼 살고 있다는 얘기가 될 것입니다. 돈과 섹스와 권력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이 높은 것이나 열정을 쏟는 모습을 보면 가히 감탄스러울 정도입니다. 그것 자체를 나쁘다고만 할 수는 없습니다. 문제는 그것보다 더 중요한 인격 완성이나 자기 실현에 대한 관심이나 열정이 그와 균형을 이루지 못하는 데서 비롯되는 부조리가 생각보다는 심각하다는 데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인생에 있어서 실상이 아닌 허상을 쫓고 있는 셈입니다. 플라톤도 이런 모습을 가리켜 비유로 말한 적이 있습니다. 즉, 인간은 마치 동굴 안쪽 벽에 비친 춤추는 그림자에 매료되어 거기에 지나치게 몰두한 나머지, 자기 등뒤에 있는 동굴 바깥 세상은 까마득하게 잊어 버린다는 것입니다. 에니어그램을 현대인들에게 처음 가르치기 시작한 굴지예프는 그래서 인간이 자기 자신의 본질에 대해서 깨달음을 얻도록 돕는 일에 중점을 두고 노력하였던 점을 주목합니다.

그의 저서 대부분이 여기에 집중되어 있습니다. 그 가운데서도 직접적으로 이 주제를 다룬 책은 제목에서부터 그 의도를 분명히 드러냅니다: “‘나는 나다’ 할 수 있을 때, 그 때라야 인생은 진짜다(Life Is Real Only Then, When ‘I am’”. ‘나는 나다’라는 말은 각기 보는 관점에 따라서 달리 설명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먼저 구약성서의 말씀에 비추어 보자면, 모세가 불타는 떨기 가운데서 하나님을 만났을 때, 하나님은 스스로 이름을 ‘야훼’ 즉, ‘나는 곧 나다’하고 말씀하셨습니다. 신약을 보면, 예수께서 ‘에고 에이미’ ‘나는 곧 나다’하고 자신을 표현하십니다. 이는 바로 본질적인 정체성을 두고 한 말씀입니다.

1960 년대에 파리의 근교 프리외레에 굴지예프가 처음 연구원의 문을 열었을 때 붙인 이름이 ‘인간의 조화로운 발달 연구원’이었습니다. 그만큼 인격 완성이나 자기 실현을 지향하는 사람들은 인생의 다양한 측면이나 과정을 고려할 때, 무엇을 하든지 조화와 균형을 이루며 통전성 곧 온전한을 지향해야 할 것을 역설하였습니다. 성서에서 예수가 말씀하신 것처럼 ‘하늘 아버지께서 온전하신 것처럼 너희도 온전하라’ 하신 말씀이 울려나오는 것 같습니다.

오늘날 물질주의와 성공주의가 만연한 시대 풍조나 사회 환경을 생각할 때, 인간 발달의 조화와 균형은 그 어느 때보다도 절실히 요청된다 할 것입니다. 돈을 많이 버는 것도 좋고, 좋은 상대를 만나 사랑하며 하나가 되는 것도 중요합니다. 힘을 얻어서 사용하는 것도 좋습니다. 그러나 이 모든 것 위에 사람이 온전해지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없습니다.

이와 같은 지향점이 명백해질 때, 성서에서 말하는 사랑과 진리 안에서 성숙하고 자유한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사람이 완전을 향해 가는 도상에서 끊임없이 변화와 성숙을 이루어가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 자기 발견을 하는 일이 급선무입니다. ‘진짜 나’를 찾아야 하고 회복해야 합니다. ‘나는 나다’할 수 있기 위하여 무엇이 필요한가부터 알아야 할 것입니다. 오늘날 수많은 사람들이 -신자들 가운데서조차도- ‘돈이 제일이다’하고 서슴없이 말합니다. 그러나 예수의 본래적인 가르침에 ‘너희는 먼저 하나님의 나라와 그 의를 구하라’는 것이었습니다. 굴지예프는 말하기를 ‘너희는 인류를 위하여 살아라’ 하였습니다. 이와 같이 인생의 우선적 가치를 설파한 분들의 뜻은 따지고 보면 인생의 목적과 의미를 두고 하신 말씀이었음을 재발견하게 됩니다.

에니어그램 영성을 살피면서, 이런 본질적인 물음을 재확인하는 까닭이 있습니다. 이미 밝힌 바와 같이 에니어그램은 우주적 상징이요, 자기 발견의 지혜요, 인간 해방과 자유의 길입니다. 더욱이 학문의 길을 걷는 사람들에게도 숨은 진리까지 터득하게 만드는 체계입니다. 에니어그램을 통하여 모든 지식을 해석할 수 있는 체계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에니어그램을 배운 사람들 가운데서도 계속해서 공부하고 수련하지 않는 사람들은, 다른 수많은 이론 가운데 하나를 알아봤던 것처럼 여기며 그칩니다. 그 까닭은 여러 가지로 설명될 수 있습니다. 굴지예프가 인간의 ‘정상적인 상태 즉, 일상적인 상태를 설명하면서 ’인간은 스스로 자아의 포로‘라고 한 말의 뜻을 파악하지 못하였거나, 아니면 굳이 외면하려는 것입니다. 어쨌든, 그것은 자기 자신을 모를 뿐 아니라, 에니어그램을 모르는 것일 뿐입니다.

사람들이 이 세상을 살면서, 자기가 꼭 해야겠다고 마음먹고 하는 일이면, 그것이 돈을 버는 일이든지 노는 일이든지 간에, 남에게 지지 않으려고 열심히들 합니다. 뭐든지 하면,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만큼 열심히 합니다. 그런데 아이러니컬하게도, 매사에 경쟁적인 사람들이 선행이나 인격의 완성이나 영성을 높이는 일 같은 것에는 남에게 뒤떨어져도 괜찮고, 별로 상관하지 않는다는 사실입니다.

가치관에 입각하여 말하자면, 무엇이 상위 개념인지 우선적 가치인지 궁극적 관심인지 모르는 사람들 아닌 바에야 결코 소홀히 할 수도 없고 더욱이 해서는 안 되는 일이 바로 인생의 목적에 충실하는 것입니다. 핵심적이며 중심적인 것을 소홀히 할 수는 없는 일입니다. 본질적인 것을 외면해서는 안 되는 일입니다.

주변적인 일이나 부가적인 일이나 부수적인 일들은 하면 하는 만큼 좋을 수도 있고, 안 하거나 못해도 그만입니다. 그러나 단 한번 주어진 인생에 있어서, 자기 실현과 자기 완성을 해도 그만, 안 해도 그만이라는 식으로 살수는 없습니다. 비본질적인 일이나 비본래적인 일은 어떻게 찾고, 무엇으로 동일시하든지 간에 한번 발견하고 확인하면, 거기에 인격과 목숨을 거는 몸부림과 분투노력으로 집중해야 마땅한 일입니다.

에니어그램을 모를 때는 그렇다 치더라도, 일단 그 체계의 기초 이해를 시작한 사람이라면, 인격의 완성은 놔두더라도, 자기 발견에 대한 작업과 수련은 치열하게 지속해야 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에니어그램의 체계에 자기를 반사시켜 보며 성찰을 시작한 사람이라면, 자신이 ‘진짜 나’가 아니란 것쯤은 익히 알았을 터이기 때문입니다.

마음먹은 대로 사랑하지도 못하는 나, 격정에 사로잡혀 꼭두각시처럼 사는 나, 끝없는 경쟁의 쳇바퀴에서 다람쥐처럼 ‘정신없이’ 달리고 또 달리며 지친 나, 일등하고 이기고 나서도 쫓기며 불안해하는 나, 남 보기에 부럽잖은 지위에 올라 제법 잘 가면서도 왠지 열등감에 시달리는 나, 남들은 인정하고 신뢰해주는데도 자신은 늘 두려움과 불안에 빠지는 나 등등, 거짓 인성이 지닌 수많은 그늘진 얼굴의 나를 외면하지 않는다면, 그래서 정면으로 자기를 마주 대면하기만 한다면, 에니어그램은 그야말로 ‘오아시스’입니다.

인생의 목적과 목표도 재발견하고, 우주의 비밀도 재발견하고, 무엇보다 ‘참 나’를 발견하기 위해 에니어그램 공부에 집중하면 좋겠습니다. 더욱이 예수 그리스도의 본래적인 가르침에 집중하며 ‘하나님께서 온전하신 것처럼’ 온전해지기를 원하는 사람으로서 우리는 늘 깨어있으며, 살아있는 의식으로 ‘진짜 나’가 되는 일에 관심과 정신과 정성을 집중해야 합니다. 인생의 목적을 달성하는 길이 여기서부터 열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