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2004
|
|
|
|
|
||
|
|
5/2004 |
|
|
||
|
|
|
|
|
||
|
|
|
|
|
|
|
|
|
영혼의 논리와 언어 |
|
|
|
|
|
||
|
|
|
|
|
|
|
|
||
|
|
영성생활에 |
|
그들의 출현 설화에서 미국 남서부의 호피 푸에불로 족은 비슷한 입구에 대하여 이야기한다. 그들이 처음 출현할 때, 검은 자주색 빛의 시간 속에서, 그 부족의 이마에 촉촉한 습기와 정수리에 말랑말랑한 부위가 있었다. 점차 부드러운 부위가 단단해졌다. 그러나 그 때마다 거기가 문처럼 열려서 영적 세계의 영향을 손쉽게 받을 수 있게 해주었다. 그들이 물위로 떠다니며 살 만한 제 4의 세계를 찾고 있었을 때, “어찌할 바를 모르면, 노젓기를 멈추고 정수리에 있는 문을 열고 안내를 받게 하였다.”2) 이 이야기는 우리가 어떻게 하면, 우리에게서 의도와 목표를 비움으로써 인생의 방향을 찾을 수 있는가를 말해준다. 누구라도 -물론, 비유적으로- 자기의 머리에 있는 문을 열고 안내를 받을 수 있다. 이런 종류의 비움은 신앙의 한 측면으로서 신뢰와 짝지은 고요한 무지인데, 나이브한 것도 아니고 어리석을 만큼 단순한 것도 아니며, 자연 속에서 우리를 통하여 흐르며 우리를 위하여 배려하는 것이 있다. 여기에 내가 제안하고자 하는 종교에 대한 여러 가지 정의 가운데 하나가 있다: 즉, 미스테리의 영향에 대하여 열려 있기 위한 건설적 수단이다. 우리에게는 영적 감동을 받을 자세를 위한 방법이 필요하다. 그리고 방법과 이미지의 배합이 바로 우리가 종교라 부르는 것이다. 판테온 신전의 눈은 바로 그와 같은 이미지인데, 건축물의 디테일로서 정신의 틀이 되어야 할 것이 무엇인지를 보여준다. 우리는 신전의 구멍을 모델 삼아서 우리의 사고 속에 틈이 필요하다. 고대 신전이 우리에게 존재한 법을 가르쳐 준다. 영성의 진전에 있어서 첫 걸음은 빈 공간을 찾는 것인데, 이는 무한대와 신비스러운 것이 통과허여 들어갈 수 있는 것으로서 의미와 문화의 구조 속에 있는 구멍이다. 그 비움은 시간 속의 잠깐 쉬는 틈이요, 성찰의 순간이요, 쉬는 날 또는 청하지 않은 공상이다. 공간적으로 말하자면, 그것은 넓게 땅을 확장하는 것으로 나타내거나 빈 채플이나 명상실로 나타낼 수 있을지 모른다. 정서적으로 말하자면, 그것은 진통을 느끼는 상실이나 신경쇠약일 수도 있다. 지성적으로 말하자면, 공개적인 질문이나 의문이나 새로운 사고방식이 될 수 있다. 연극 무대나 영화 스크린이나 무용수의 마루바닥이나 화가의 캔버스가 또한 상상력이 무한대와 접촉할 수 있는 빈 공간이 된다. 빈 상태로 남아 있는 한, 모든 예술이 종교적이다. 화가가 그렇게 생각하고 다룬다면, 켄버스는 눈이다. 빈 캔버스에 그림을 그리는 예술은 엄격한 의미에서 명상이다. 그것은 예술가가 저 너머에 초월적으로 존재하는 모든 것과 접촉할 수 있도록 열어준다. 이런 종류의 무지와 비움은 부정적인 절망이나 허무주의에 빠지게 하는 것이 아니다. 정서적인 안정과 인생에 대한 깊은 코믹센스를 얻게 이끈다. 비록 우리가 그 모든 것의 기원과 끝과 의미를 모를지라도 인생을 심각하게 사는 데에는 뭔가 아이러니하고 부조리한 것이 있다. 영성의 스승들은 종종 이런 종류의 무지를 보고 웃는다. 경멸의 웃음이 아니라 사람들이 도대체 인생이 무엇인지도 모르면서 계속하여 살려고 기꺼이 마음먹는 것을 감상하는 웃음이다. 오래전 비 내리던 그 날에, 나는 지붕에 난 구멍으로 흩뿌리는 이슬비에 옷이 젖은 채 판테온 신전의 돌로 된 바닥을 응시하고 있었다. 나는 빗방울로 내리는 하늘의 은총을 그림으로 보았다. 그때 나는 난생 처음-우리가 아주 바보스러워서 우리의 지성 속에 구멍을 남겨 두든가 아니면 아주 똑똑해서 정수리에다 기름칠 잘 한 문을 달아 놓을 때- 은총이 어떻게 우리 속으로 쏟아 붓는가를 보았다.
2. 빈 자아
영성에 있어서 비움은 열린 마음일 뿐 아니라 열린 자아다. 우리는 우리의 설명과 목표와 습관과 염려에서 벗어나야만 한다. 우리는 흔히 할 수 있으면 재난은 피하려 하며 인생을 질서와 의미로 가득 채우고자 노력한다. 그러나 그 못지않게 흔히 인생은 우리의 모든 조심스러운 준비에 끝장을 낸다. 그런 순간에 우리는 불평을 할 수 있다. 그러나 알고 보면 그런 상실을 끌어안고 가면서 거기서 교훈을 얻는 것이 제일 좋은 일이다. 우리의 무지 속에 기꺼이 서려는 마음이 우리에게 성격을 부여하고 또 우리를 정직하게 살도록 지켜준다. 나 자신이 대학 교수 생활 7년차 마지막에 중대한 시기에 이런 고통스러운 교훈을 얻었다. 학과장이 나의 종신 교수직에 대한 교수회의의 비밀투표 결과를 알려주려고 나를 불렀다. 그가 말하였다. “톰, 우리는 당신에게 종신 교수직을 주지 않기로 결정하였습니다.” 나는 충격을 받았다. 나는 출판도 하였고, 저작자로서 유망성을 보여주었다고 생각하였다. 나는 좋은 선생이 되기 위하여 박사과정 중에 별도의 코스를 밟기도 하였다. 그러나 그는 말하였다. “당신은 가르치는 풍미도 열정도 잃었고, 학문적인 스타일로 적절하게 글을 쓰지도 않습니다.” 필경 나의 글에서는 아직도 내가 그 때의 거부당한 것을 통렬하게 느끼고 있음이 비쳐지는지 모르겠다. 과장은 내가 이의 신청은 할 수 있다고 말하였으나 나는 그의 말을 그냥 그만두라는 신호로 들었다. 나는 나의 커리어가 무너져 내리는 허전함을 느꼈다. 그런데 몇 년이 지나서야 그 실패로부터 새로운 인생이 솟아오르는 선물을 보게 되었다. 오늘날 사람들은 내게 말한다. “그 사람들이 그런 실수한 것 때문에 행복감을 느껴야 할 거에요. 이제 와서 그들은 미안하게 생각할걸요.” 진실은, 그들이 옳았다는 것이고, 나는 지금도 실패감을 느끼고 있다. 내가 궁극적인 승리를 주장하거나 그 때의 고통으로부터 내가 거리를 두려고 하는 어떤 것도 옳아보이지는 않는다. 승리를 자축하는 것이 어찌 보면, 중요하고도 필요한 상실에 대한 방어수단일 수도 있다. 자기 방어의 불평과 언사가 떨어져 나갈 때 느끼는 빈 느낌 속에 깊은 비움이 자리한다. 머리가 빈 것 같은 생각 없음이 나를 덮칠 때, 나는 (불교의) 공, 그리고 (기독교)의 자기부정이란 종교적 교리에서 어떤 안도감을 찾는다. 이런 주제들에 관한 긴 논문들이 발표되었다. 그러나 아이디어는 제법 소박한 것이다. 내 자신의 재빠른 묘사로 하자면, 비움은 지식에 있어서는 무지요, 행동에 있어서는 무능이요, 신앙에 있어서는 투명성이다. 사도바울은 예수가 자기 자신을 비우고, 종의 모습으로 사람이 되었다고 쓰면서 이 말을 사용하였다(빌립보서 2:7). 내가 생각하기에 우리 모두는 보다 위대한 계획을 따라 부름 받은 종이 되어야 하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어떤 사건이나 내 속에서 요동치는 감정에 대하여 억지로라도 굴복해야 한다고 느껴질 때, 나는 불평을 하기보다는 오히려 나의 고집과 이기심이 비워진다고 이해하려 한다. 감사하기 어렵고, 견디기 고통스러운 것이지만, 그 과정은 심오하게 종교적이다. 만약 우리가 끈기있게 지속하면, 행복이나 성취를 얻는 데 자아가 할 역할이 없다는 사실과 함께 어떤 인물이 되어야 만족을 느낄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발견할 수도 있다. 만약 어떤 종교적 또는 영적 행위가 거룩한 비움이 부족하다면, 스스로 가득 차서 정반대로 돌아서서, 결국은 미스테리가 지닌 정화력에 대한 방어적 구조물이 된다. 영성의 가르침은 두 종류가 있다. 하나는 무겁고 불투명하고 영적인 사실과 필수적인 가르침으로 구성되어 있다. 다른 한 가지는 가볍고 투명하며, 항상 초월적 상태를 지향하며, 결코 완전히 포착하기 어려운 상태에 있다. 이런 가벼움으로 편할 수 있는, 그리고 돌이 되기보다는 오히려 기꺼이 유리이고자 하는 스승이나 가르침을 발견하는 것은 드물게 얻는 기쁨이다. 나 자신에게 가톨릭은 늘 영성의 길 이상의 것이었다. 그러나 내 평생을 두고 나의 가톨릭은 변해왔다. 나는 영적으로 자랐다고 믿는다. 나와 교회의 관계는 현재 더 복합적이고, 가르침에 대한 나의 해석은 더 시적이고 신비적이다. 더 배우고 나이가 들면서 한발 한발 나의 믿음은 비워졌다. 그러나 이 비우는 작업이 나에게는 믿음을 풍요롭게 하였다. 실제로, 비울수록 더 가치를 지니게 되었다. 신자나 회의론자나 누구라도 이와 똑같은 자기 부정적 또는 비우는 과정을 거칠 수 있다. 믿음을 비울 때, 비전은 확대되고 더 예리해진다. 더 많이 알수록 우리가 계몽의 시점에 이를 정도의 무지 때문에 더욱 겸손해질지 모른다. 회의론자나 세속주의자는 신자보다 자신이 더 비어져있다고 생각할지 모르나, 사실은 그 반대일 경우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기도 생활과 순전한 겸손과 뜨거운 동정심을 이루는 삶은 날마다 자아를 이룬다. 많은 사람들이 실행의 충만함을 통하여 비움에 도달한다. 마더 테레사의 글들을 보면 그만큼의 암시가 있다. 그는 일상적인 경건의 삶을 통하여 뜨거운 동정심이 어린 비움을 발견하였다. 자신들이 경건과 확신으로 가득 차 있는 듯이 보이는 수많은 사람들이 상당히 비어있다. 그들에게 그토록 중요한 기도와 가르침은 그들의 인생이 아무런 장애를 받지 않은 채 거침없이 통과하도록 허용한다. 그런데 그런 식의 또 다른 통과는 그들의 경건성에 대하여 정의를 내릴 것이다. 그러나 배우는 일은 위협적일 수 있다. 사람들은 자신의 지식이 부적절하다는 것을 느낄 때 서둘러서 신경질적인 믿음이나 지나친 정보로 틈을 메꾸려 한다. 현대 과학과 교육은 검증할 수 없는 것을 증명하려는 방어적이며 초조한 시도로 가득 차 있다. 확실히 말해서, 사실은 시험될 수 있다. 그러나 길게 보면, 인간은 사실에 따라 사는 것이 아니라 믿음과 상상력을 따라 산다. 비움이란 것이 내가 믿기에는 사실이 아니라 미스테리로 짜여진 인생 속으로 거침없이 훌훌 떨어지는 것을 널널하게 받아들이는 것이다. 앨런 왓츠는 비움을 형이상학적 관념으로 생각하는 것에 대하여 경고한다. 왓츠의 말을 따르면, 비움은 우리를 깨우는 수단이다.3) 사람들이 갑자기 그들의 무의식으로부터 떨쳐 일어날 때, 그들이 제일 먼저 하는 생각은 뭔가를 제거하는 것이다. 직장을 그만두거나, 결혼생활을 포기하거나 집을 떠난다. 비우는 충동은 그들을 해방시키고 새로운 아이디어나 참신한 출발의 길을 열어준다. 깊은 영혼은 영원히 우리에게 새로운 가능성을 안겨준다. 반면에 영은 얇게 만들거나 매끈하게 만드는 중요한 과제를 수행한다. 영성에 있어서 비움은 체념이나 우울로 이어지는 것이 아니다. 반대로 우리에게 희망을 안겨주며, 우리가 통제할 수 있어야 한다는 불안으로부터 해방시켜준다. 어떤 사람들이 비행기 여행을 못하는 까닭은 그들이 감당하기 어려운 신뢰를 어느 정도 요구받기 때문이다. 비슷하게, 어떤 사람들이 신앙생활을 하지 못하는 까닭은 그들이 알아야 하고 통제할 필요를 강하게 느끼기 때문이다. 해결책은 땅을 더 가볍게 밟고, 굳어 있기보다는 더 비어있고, 신뢰는 더 많이 하고 믿기는 덜 하는 것이다. 이상적인 또는 영적인 이론으로 말하자면, 비움은 엄격해질 수 있다. 사람들은 말한다. “나는 순간 속에 살아야 한다. 나는 나의 의지를 굴복시켜야 한다.” 그러나 비움이 계획이 된다면, 일은 되지를 않는다. 비움은 그 자체로서는 아무것도 아니다. 그것은 우리가 행하고 생각하는 모든 일 속에 있는 질적인 차원이다. 일단 우리가 비우기를 결의하고 다지고 나면, 그것은 목적으로 가득 찬 일정이 된다. 우리의 집착과 기대를 포기해야 할 뿐만 아니라, 동시에 우리는 비움에 대한 고귀한 생각마저도 포기해야 한다. 비움 그 자체를 비워야한다. 불교의 비움 신경으로서 반야심경은 비움을 어떻게 해야 하는가를 표현하는 만다라로 끝맺는다. “가테가테 파라가테 파라삼 보드히 스바하. 갔도다. 갔도다. 전적으로 완전히 갔도다. 깨달음이 있을지어다.” 이런 비움을 어찌 얻을 것인가? 우리에게 요구되는 것은 우리가 비우지 못함에 대하여 성찰하는 것과 비움이 생겼을 때 그 비움을 인식하기에 충분한 자기지식이다. 비움은 예술이며 동시에 수행이다.
|
|
|
|||
|
|
|
|
|
|
|
|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