잔치는 끝났습니다. 들뜬 마음도 거친 숨결도 달리던 열기도 가라앉힐 때입니다. 잔치를 준비할 때부터 치루는 동안 나와 의견이 달랐던 사람들의 얼굴도 다시 평상심으로 돌아가 마주해야 할 시간입니다. 총선거라는 민주주의 잔치는 결과가 중요하기도 하지만 과정은 더욱 중요하고, 아니, 그보다 더욱 중요한 것은 준비하기 이전의 과정과 분위기라 하겠습니다.

잔치는 끝난 시점에서 돌아보며 내다보는 마음이 절실하게 요청됩니다. 잔칫날이 코앞에 닥쳤을 때 준비하자면 허둥대기 십상이고, 그나마 평소에 생각하던 것조차 갈피를 잡기 어려워서 자칫하면 머리가 어지럽기까지 합니다. 그래서 잔치는 끝났을 때, 다음번의 잔치를 준비하기 시작하는 것이 제일 좋은 법입니다.

건국 이래 열일곱 번의 총선을 치룬 오늘의 시점에서 다시 생각합니다. 랍비 전승에서 발견하는 지혜가 새삼 떠오릅니다. 당대에 모든 것을 마치려는 듯이 서둘지 말고, 한 세대에 벽돌 한 장 씩만 쌓자. 역사를 깊이 되새기게 하는 지혜라 생각됩니다. 만약 우리 모두가 1대 5.10 선거를 치루던 때부터 나라와 민족과 역사를 좀 더 깊이 생각하였더라면, 그래서 총선을 한 번 치룰 때마다 시행착오는 거치더라도, 그때마다 단단히 ‘벽돌’ 한 장씩 쌓았더라면, 오늘이 어떻게 달랐을까?

그러나 역사에 가정은 없다 하지 않습니까? 그러니 이제부터라도 역사의식을 새롭게 하되, 미래 지향적 역사의식을 가다듬어 볼 일입니다. 역사의 교훈과 거기서 얻는 지혜를 살려서 18대 총선을 내다보며 지금부터 그 잔치 준비를 차분하게 해 나갈 일입니다.

총선을 민주주의 잔치라 하면, 모두의 잔치입니다. 죽기 살기로 내닫는 전쟁이 아닙니다. 입후보자들의 당락이 나라의 운명을 좌우하는 것이 아니라 당락의 결과로 편이 갈라지고 반복의 줄이 깊어질 때, 사회의 발전과 안정은 어려워지고, 나라의 장래는 어두워집니다. 적어도 이 점을 깊이 생각하지 못하는 사람은 입후보하지 않는 풍토가 이루어져야 합니다.

하지만, 의식이 어디 하루아침에 깨이고 형성됩니까? 눈높이가 하루 이틀에 서는 것은 아니지 않습니까? 그러니 어려서부터 눈높이는 바로 세워야 하고, 의식은 젊어서부터 바로 형성되어야 합니다. 이른바 전교조 선생님들이 탄핵과 총선에 즈음하여 교육을 시도하였다 하여 의견이 분분하였습니다. 여기에 잇대어 생각하자면, 어떤 한쪽의 시도를 염려하는 데서 그칠 것이 아니라, 자라나는 세대가 공동체 의식을 갖도록 각기 자기들의 생각을 모아서 가르치고 눈높이를 다듬어 주는 일을 하는 편이 훨씬 좋을 것입니다.

지난번 편지에서 저는 총선을 앞둔 시점에서 ‘경청하는 마음’을 이야기 하였습니다. 실상, 경청하는 마음은 지원하는 공동체를 위한 기본입니다. 하늘의 소리를 경청하고, 자연의 소리를 경청하고, 사람의 소리를 경청하는 마음이 어우러질 때, 서로를 지원하는 마음이 솟아오릅니다.

21세기의 중요한 화두로 ‘지속 가능한 발전’ ‘지속 가능한 공동체’를 흔히 말합니다. ‘살만한 공동체’를 말하는 것이 그에 다름 아닙니다. 개인주의나 이기주의, 물질주의와 무한경쟁에 깊이 빠져서 20세기를 살아온 기성세대가 진정 회개하는 마음으로 새로운 세대에게 이바지 할 일이 있다면 더 늦기 전에 고백적인 태도로 공동체의식을 함양하고, 지원하는 공동체 문화를 일구기 시작해야 합니다. 그것도 무조건적 사랑을 가지고 시작해야 합니다.

구체적인 활동에서 시작할 수 있습니다. 가정의 달 5월에, 가족들이 회의를 거쳐 결정할 수 있을 것입니다. 어린 사람부터 어른들까지 모두가 자기가 작은 정성을 모아 지원하는 공동체를 선정합니다. 동네의 독서실이나 작은 도서실을 지원하는 일에서 가까이 있는 자선 단체나 봉사 단체를 꼽을 수도 있습니다. 자신이 좋아하는 가수나 운동선수를 지원하는 길을 선택할 수도 있습니다. 온 가족이 결정하여 자신들의 생각을 대변하는 정치인을 지원하는 일도 할 수 있습니다. 자기 지방의 교향악단이나 합창단이나 축구단이나 야구단 또는 농구단도 지원하는 것입니다.

아주 작은 정성일지라도 모두가 마음을 집중하여 지원하는 공동체를 만들기 시작하면, 그 힘이 모아져 새로운 문화를 일구게 됩니다. 경청하는 마음이 모아져서 지원하는 공동체를 만드는 새로운 문화는 다음번 잔치를 한층 더 풍성하게 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