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부터 안경을 써도 잘 보이지 않고 눈이 쿡쿡 쑤시기까지 한다. 안과에 같더니 백내장, 녹내장이 시작되어 진행하고 있고 망막근처에는 어떤 습포 같은 것이 셍겼다고 한다. 물론 안구 건조증 까지 있어 안약을 두 가지나 처방을 해 주었다.

안과에 간 김에 물건들이나 똑똑히 보기를 원해 시력 검사를 다시 해 보았다. 그런데 의사의 태도가 좀 이상하였다. 안경을 쓰고도 0.7정도 밖에 안 되는데도 더 이상 올려 주는 시늉을 하지 않는 것이다. 이상해서 물어 보았더니 더 이상 시력이 나오지 않는다는 것이다. 본래 나는 난시가 너무 심해서 안경을 쓰지 않으면 물건이 두개로 보이거나 여러 겹으로 보이는 사람이다. 그러나 그 동안에는 안경의 도수를 바꾸면 아주 깨끗하게 보이곤 했는데 이제는 그 한계가 다 되었다는 것이다. 이제부터는 불편하게 보이더라도 참고 살아야 된다는 것이다. 백내장 수술을 한 친구들 이야기를 들으면 수술 후에는 그렇게 잘 보일 수가 없다고 한다. 그러나 나는 아직 수술 할 단계는 아니기 때문에 어느 정도 진행 될 때 까지는 기다려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 진단을 받고는 내 속에서 참 재미(?)있는 반응이 일어나고 있었다. ‘아, 나도 이제는 정말 노인의 반열에 드는구나!’ 노인이 된다는 것에 좋아 할 사람은 별로 없는 것 같다. 물론 나도 거울을 볼 때 턱 밑이 늘어지고 볼 살은 들어가고 있는 내 얼굴이 그다지 마음에 들지는 않는다. 그러나 오히려 마음 한 구석에 편안해 지는 면이 생기기 때문에 늙어간다는 것이 그다지 나쁘지는 않다는 것이다.

나는 그동안 사순절이 되어 예수님이 시험 당하시고 고난을 당하신 발자취를 따라 살아 본다고 하면서, 생각으로는 큰 소리를 치지만 아픈 일이 생기거나, 갈등이 생기면 먼저 겁부터 나거나, 그 것을 피하려고 애를 쓴 적이 많은 편이었다. 그러나 연륜을 더 해 가면서 보여 지는 것들이 있다. 아무리 어려운 일이 생겨도 결국에는 내가 그것을 이겨내고 마는 것이다.

예수님께서도 성령에 의해서 광야로 나가셨고 시험을 받아도 그것을 이겨 내어 우리에게 부활의 기쁨을 안겨 주셨다. 부족하나마 그래도, 그 분의 뒤를 따라가고 있는 내가 최후 승리를 믿을 수 있다는 것은 젊었을 때에는 잘 되지 않던 부분이다.

두려움에 떨었거나 기도를 하면서 성령에 의해 겨우, 떠밀려가는 생활이었다고나 할까? 그러나 경험을 더 해 갈수록 두려움의 강도는 엷어지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아직도 나는 내 격정 때문에 부족한 점이 많지만 내 생각 속에는 결과가 훤히 보여 지고 있기 때문에 격정을 인식하고 받아들이는 데에는 수월해 지고 있다. 다른 사람과의 관계 속에서 일어나는 갈등을 처리하는 데에 걸리는 시간도 짧아지고 있다.

돈 욕심도 버리고, 명예나 권세도 내 것이 아닌냥 살아가려고 하면서도 격정에 휘말려 마음이 편하게 살지 못한다면 내 인생은 너무나 손해나는 것 같아서 싫다. 다른 사람의 격정이 나를 건드릴지라도 내가 그냥 그대로 보아 줄 수 있다면 평안을 잃어버리지 않을 것이다.

늙어간다는 것은 이런 일을 실천할 수 있다는 말과도 같다고 본다. 반복되어지는 갈등 때문에 짜증이 나는 것도, 자기만 챙기는 사람을 보며 무시하는 것도, 할일이 많은데 돈이 모지라 애를 태우는 것도 좀 내려 놓을 수 있다는 것은 늙어가기 때문에 할 수 있는 일인 것 같다.

그렇기 때문에 안구에 물이 모자라 안약을 넣고 있으면서도 오히려 재미를 느낄 수 있는게 아닌가싶다. 그리고 또한 재미있는 것은 나 혼자 늙어가는 것이 아니라, 내 친구들이나 내가 같이 살고 있는 사람들이 함께 공동체적으로 늙어가고 있다는 것이다. 걸음걸이도 같이 천천히 걸어가고, 노래를 불러도 같이 낮은 음으로 부르고, 음식을 먹어도 같이 흘리며 먹으면 불편할 것이 없을 것 아닌가!

소원이 하나 있다면 자라나는 손녀딸들이 할머니하고 같이 있고 싶어 하고, 같이 자고 싶어 하는 일이 끝까지 계속 되어지면 좋겠다. 할머니에게서 나가는 편안한 기가 갓 태어난 아가에게도, 펄펄 튀는 청년들에게도, 여성의 권익을 위해ㅐ 뛰고 있는 동료들에게도, 정치를 하는 건지, 소용돌이 속에서 자기가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지를 제대로 알지 못하고 사는 기득권자들에게도 전해지면 좋겠다. 그러려면 잘 늙어가야 되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