햇순, 공동체성서연구

 

 


12/2008

 

 

 

 

 

 

 

 

 

 

 

 

에니어그램영성 (93)

 

# 2번 유형 : 막달라 마리아

 

 

 

 

 

  에니어그램으로 보는 성서 인물

 

 

 

 


영성생활에
도움이 되는 글

제공 :
공동체성서연구원


구르지에프와 에니어그램의 지혜

에니어그램 격언






 


1. 소문난 여자, 막달라 마리아

성서의 인물들 가운데 이름난 여성은 그리 많지 않다. 남성 중심 사회의 전통과 문화적 배경을 생각하면 어쩔 수 없었으리라 생각한다. 그러나 등장하는 여성은 한결같이 빼어난 여성들이다. 그 가운데서도 특히 신약에는 마리아라는 이름을 가진 이들이 많이 있다. 예수의 어머니 마리아를 비롯하여 마르다의 동생 마리아, 글로바의 아내 마리아, 그리고 막달라 마리아 등 여럿이 등장한다.

신약에 등장하는 수많은 마리아 가운데서, 동정녀 마리아를 제외하면, 단연 막달라 마리아가 돋보인다. 그는 그의 고향이 막달라로 알려진 인물이다. 그가 소문난 여자로 알려진 것과 고향의 이름으로 알려진 것은 인습적이기는 하지만 그 고장을 특별히 살펴 볼 필요를 느낀다.

막달라는 오늘의 메즈델에 해당되는 곳이다. 예수가 펼친 갈릴리 선교의 한 거점인 가버나움에서 서쪽으로 약 십리 떨어진 해변가에 위치한다. 상업적으로 번창하여 부촌이었던 만큼 도덕적으로는 좀 문란했던 모양이다. 이런 환경에서 자란 마리아가 소문난 여자로 등장한 배경을 고려할 수 있다. 복음서에 그에 대한 다양한 묘사가 있다. 먼저 ‘죄인’(눅 7:37)으로 설명되는 이 여인은 ‘일곱 귀신이 떨어져 나간’(눅 8:2) 여자로 묘사된다.

사람을 이해하는 데는 먼저 가치관과 성격을 파악하는 것이 중요하다. 눈높이 CE⁴-Level는 See-Level, 곧 가치관이 형성되는 과정과 배경에는 문화 Culture, 교육 Education, 경험 Experience, 환경 Environment 그리고 기대 Expectation 등 다섯 가지 요소가 작용한다. 맹모삼천설을 상기할 수 있는 일이지만, 부유하나 부도덕한 고장에서 자라난 것을 간과할 수 없을 듯하다.

이른바 대처에서 자라나고, 부도덕한 환경에서 살았기 때문에 모두가 다 부도덕해지는 것은 물론 아니다. 그러나 그런 환경에서 유혹을 받을 가능성이 성격에 따라 좌우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막달라 출신 마리아의 성격 형성 과정을 살펴 보게 된다.

사복음서에 고르게 소개된 것만으로도 이 여인에 대한 관심이 높았던 것은 자명한 일이다. 소문난 여자로 등장한 데서 시작하여 부활하신 주님을 맨 먼저 만났고 또 제일 처음으로 부활의 기쁜 소식을 전한 첫 번째 증인이 되었다는 점에서도 파란만장한 삶을 살았던 것을 알 수 있다. 그런데 마리아가 드러낸 단면들을 통틀어 생각하자면 그가 건강하지 못하였을 때나 건강할 때를 막론하고 공통적으로 드러낸 특징은 남에게 잘 주고 잘 돌보는 성격이라는 점이다.

에니어그램 2번 유형을 잘 드러내고 있는 성격이라 할 사람이 바로 막달라 마리아이다. 2번 유형은 먼저 ‘주는 사람’, ‘돕는 사람’, ‘돌보는 사람’으로 성격의 특징이나 성향이 묘사된다. 이런 사람은 자기 자신의 필요는 기피하면서 ‘나 몰라라’ 하고 사는데 비하여, 남의 필요는 어려서부터 잘 아는 사람이다. 심지어는 아침에 눈을 뜨면 먼저 자기의 손길이나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이 쭉 늘어선 것처럼 보이듯이 봉사해야 한다는 함정에 빠지기 쉽다.

2번 유형이 빠지는 함정을 다른 관점에서 보면, ‘자유’라고 할 것이다. 어떤 것에도 묶이지 않으려는 자유에의 욕망이 강하기 때문이다. 심리적으로나 정신적으로 건강하지 못하면 이런 성향에다 야심과 함께 허영에 들뜨기 쉬운 성향인데다 ‘궁핍’을 기피하려 한다. 따라서 가정 형편이 어려우면, 소문난 여자가 될 가능성이 커지기 쉽다.


2. 섬기는 여인, 막달라 마리아

남에게 잘 주고 잘 돌보는 2번 유형은 만 여섯 살 전후하여 아버지와 애증이 엇갈린 상태에서 자란다. 아버지가 나를 사랑하는 줄은 알겠는데 왠지 편하게 사랑을 받아들일 수만은 없다. 아버지가 싫지는 않으면서도 그리 편하지 만은 않다. 자연히 아버지의 사랑을 자신이 편하게 받아들이지 못하는 데 대하여 어린 마음에도 일종의 죄책감을 느낀다.

이렇게 아버지 또는 아버지 같은 인물과 애증이 엇갈린 상태로 동일시하며 자란 어린이는 아버지에게 무엇이 필요한가를 열심히 찾으며 그것을 채워줌으로써 보상하려는 심리가 발달한다. 그러자니 자연히 아버지로부터 시작하여 가족들에게 필요한 것을 주며 봉사하는 특징이 강화된다. 그리고 마침내 자기 주변의 모든 사람에게 이런 성향이 나타난다.

‘죄인’이라 묘사된 막달라 마리아는 바리새파 사람들의 눈으로 보면 부도덕한 사람으로 보일 것이다. 사회학적으로 보면 당시의 ‘죄인’이라는 사람들은 소외된, 밀려난 사람을 일컫는 말이었다. 먹고 살기 힘들어서 안식일을 지키지 못한 가난한 사람들까지 여기에 다 포함되었다. 전통적으로 창녀로 이해되었던 막달라 출신 마리아가 물질적으로 궁핍한 것을 기피하려고 애썼을 가능성이나 아니면 허영에 들떠서 쾌락을 좇다가 그만 소문난 여자가 되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는 없다.

그에게서 ‘일곱 귀신이 떨어져 나간’ 사실을 떠올려 보더라도, 그에게는 정신적으로나 심리적으로 적잖은 문제가 있었을 가능성은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예수께서 치유하여 건강을 회복한 마리아는 예전의 그를 보는 사람들에게는 아직도 ‘죄인’이었을지라도 그는 사람들의 관습이나 상상을 뛰어넘어서 섬김의 뚜렷한 모습을 드러낸다. 섬길 줄 아는 사람의 전형을 보인다.

‘옥합을 깨뜨린 여인’으로도 잘 알려진 막달라 마리아는 필요에 따라서 큰마음 먹고 주기로 말하면 보통 사람들이 계산하는 것을 훌쩍 뛰어 넘는다. ‘향유가 담긴 옥합’(눅 7:37)을 가지고 와서 ‘예수의 등 뒤에 발 곁에 서더니, 울면서 눈물로 그 발을 적시고, 자기 머리털로 닦고, 그 발에 입을 맞추고, 향유를 발랐다’(눅 7:38)고 누가는 상세히 기록한다.

마가복음의 저자가 전하는 이야기는 보다 더 극적이다. ‘한 여자가 매우 값진 순수한 나드 향유 한 옥합을 가지고 와서, 그 옥합을 깨뜨리고, 향유를 예수의 머리에 부었다.’(막14:3)고 기록하였다.

이 광경을 지켜보던 사람들 가운데서 ‘몇몇 사람이 화를 내면서 말하였다. “어찌하여 향유를 이렇게 허비하는가? 이 향유는 삼백 데나리온 이상에 팔아서, 그 돈을 가난한 사람들에게 줄 수 있었겠다” 그리고는 그 여자를 나무랐다.’(막 14:4-5) 한 데나리온이 노동자의 하루 품삯인 점을 생각할 때, 상관도 없는 사람들이 허비한다고 화를 낼만큼 엄청나게 값진 향유는 한 노동자가 일 년 내내 벌어서 먹지도 쓰지도 않고 모아야 할 돈이 들었다.

막달라 마리아가 이토록 값진 향유를 흔쾌하게 예수께 바치며 헌신적인 봉사를 한 것에서 에니어그램 2번의 특유성이 돋보인다. ‘장차 예수를 넘겨줄 가룟 유다가 앞서 언급한 불평을 대표로 발언한 것(요 12:4-5)과는 대조적으로,’ 예수께서 말씀하셨다. “그대로 두어라. 그는 나의 장사 날에 쓰려고 간직한 것을 쓴 것이다. 가난한 사람들은 언제나 너희와 함께 있지만, 나는 언제나 너희와 함께 있는 것이 아니다”(요 14:7-8). (다음호에 계속)







구르지에프와 에니어그램의 지혜


들어가는 말

구르지예프 George Ivanovich Gurdjieff 는 1949년 10월 29일에 서거하였다. 무릇 위대한 스승들의 역사가 그렇듯이 구르지예프도 생전에는 그의 사상과 가르침에 관심이 쏠리기 때문에 그의 출생에 대하여는 별로 알려진 것이 없다. 다만 그의 어린 시절은 그의 자전적 글 ‘위대한 만남 Meetings With Remarkable Men’에 그려진 것이 전부이다. 그의 출생년도는 1866년 경으로 알려지고 있다. 어떤 이는 1872년으로 말한다. 그의 여권에는 1877년 11월 28일로 생년월일이 기재되어 있다. 그는 러시아와 알메니아의 접경지역 알렉산드로폴 Alexandropol (현재의 굼리 Gumri)에서 그리스인 아버지와 알메니아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어린 시절에 그의 가족이 칼스 Kars 근방으로 이사하여 좋은 교육의 기회를 얻었다. 러시아 군대의 고위 성직자에게 사사하였고 의학도 공부하였다. 그의 아버지와 함께 구르지예프에게 가장 큰 영향을 끼쳤던 사람이다. 이때부터 구르지예프는 삶의 의미와 목적을 추구하기 시작하였다. 그가 마침내 1912년에 모스코에서 가르치기 시작하였을 때 첫 번째 물음이 이것이었다.


‘생명의 의미와 의의는 무엇이며, 인생의 목적은 무엇인가?’
What is a sense and significance of life in general and particularly, the aim and purpose of human life?


구르지예프에 대한 스케치

한 사람의 삶이 중요하듯이 죽음 또한 큰 의미를 지닌다. 위대한 인물을 알거나 이야기하는 것은 큰 산을 알거나 이야기하는 것과 같다고 할 수 있다. 백두산이나 에베레스트를 열 번 올랐다고 하여 다 알 수 없듯이 구르지예프의 생애 또한 태산을 대하는 듯하다. 1949년에 그가 세상을 떠날 때 임종을 지켜 본 의사가 말하였다. ‘나는 전문의로서 수많은 사람의 임종을 지켜보았으나 구르지예프 선생처럼 ‘제왕적인 죽음 royal death’ 을 맞이하는 것을 일찍이 본 일이 없다.’

그는 세상을 떠나기 며칠 전까지 기력이 정정하였고 의식이 맑았다. 스스로 병원에 전화하여 앰뷸런스를 보내달라 하였다. 의복을 갖춰 입은 것이 아니라 파자마를 입고 fez 라는 모자까지 쓰고 들것에 앉아서 제자들에게 작별하며 ‘온 세상이여, 안녕 Au revoire tout le Monde!’ 라고 말하면서 떠난 길이 마지막이었다. 그는 자신이 세상을 떠날 날을 내다본 듯하였다.

구르지예프의 평전을 쓴 수많은 사람들 가운데 의사로서 그의 제자 중 한 사람이었던 케네스 워커 Kenneth Walker, M.D. 는 1948년에 만난 구르지예프를 회상한다. 노인들이 흔히 더듬거나 머뭇거리고 몸놀림이 둔한 법인데, 구르지예프는 끝까지 노인의 흔적이라고는 찾아보기 어려웠다. 얼굴에 주름도 없고, 사뿐사뿐 걸어서 마치 ‘고양이의 우아한 feline grace’ 걸음 같았다. 요리를 썩 잘한 그가 오이를 써는 칼질이 어떤 주방장보다 민첩하였고, 마치 숙련된 외과의사가 수술하듯이 정교하였다고 하였다. 이처럼 구르지예프는 자신의 몸을 완전히 컨트롤하였다. 그래서 그의 몸놀림을 지켜보는 것이 즐거웠다고 하였다.

그가 즐겨 쓰던 칼막 kalmak 이란 모자를 벗으면, 백호를 친 머리가 빛이 났는데, 귀에서 정수리까지 아주 높았다. 올리브 색을 띈 얼굴은 부드러우면서도 힘이 넘쳤고 그런가 하면 평온하였다. 심지어 ‘그의 침묵은 다른 사람들의 침묵과 같지 않았다’ 고 하였다. 사람들은 그런 침묵을 지닌 구르지예프로부터 지혜를 배웠다.

그가 마지막 살았던 파리 개선문 근처의 꼴로넬 레이나드가의 아파트에는 당대의 기라성 같은 각계의 인물들이 모여 제자가 되었다. 미국에서 온 서포터즈, 세계적 테너의 홀로된 부인, 영국과 프랑스의 의사들, 기업인들, 변호사들, 영국의 귀족, 미국, 영국, 프랑스 등지에서 모인 다양한 신분의 사람들, 전공도 성장 배경도 다양한 그들이 한결같이 자신의 인격에서 엄청난 파워를 내뿜는 것처럼 보이는 구르지예프에 대한 존경심 때문에 집이 좁은 것을 마다 않고 모여들었다.

무엇이 그들로 하여금 이렇게 선생에게 열광하게 만들었을까? 워커는 이렇게 증언한다 : ‘구르지예프는 매우 광범위한 지식을 지녔다. 그는 현대 서구의 과학 이론은 물론 동양을 유랑하던 시절에 배운 특별한 지식까지 지녔다. 그러나 사람들에게 감명을 준 것은 그의 말과 행동이라기보다 그의 존재 자체였다. 구르지예프는 자신의 가르침을 ‘인간의 조화로운 발달’이라 집약하여 표현하였는데, 스스로 그런 가르침의 결과를 그대로 실증한 예가 바로 구르지예프였다. 구르지예프의 탁월한 표시는 모든 위대한 스승들의 탁월한 표시 그 자체였다.’(다음호에 계속)

-----------

한국에니어그램협회 가을학술대회 기조강연,
2008년 10월 24일, 김영운 박사.






에니어그램 격언



수련 인성을 위하여 : 늘 깨어 있으라

기계적 삶에 저항하며 살기 위하여
수련하는 목표이자
가장 중요한 화두이다.
정진, 또 정진!



명상 35

사람들과 잘 지내는 법을
배우는 것은 중요하다.
중요한 길은
한 가지 뿐이다
모든 종류의 상황 속에서,
모든 종류의 사람들과 더불어 사는 것-
끊임없이
그들에게 반응하지 않는다는 의미에서
더불어 사는 것이다.



 

 

 

 

 

 

 

 

 




120-802 서울 서대문구 남가좌1동 152-28 2층   Tel 02)312-6803, Fax 02)374-7277
  cbsi@cho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