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고난받는 욥

세상은 고해와 같다고 한다. 누구나 고난을 겪는다. 아무도 고난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문제는 고난을 어떻게 견디고 이겨내느냐 하는 것이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고난을 잘 견디며 이겨낸 사람은 성취하며 성숙하였다. 그러나 고난을 견디지 못하고, 견디기 힘이 들어서 체념하고 포기한 사람은 실패하였다.

에니어그램 수련에 있어서도 고난을 견디는 법을 터득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그래서 예부터 어떤 형태의 고난이든지 그것을 ‘필요한 고난’으로 보게 가르쳤다. 인간의 변화와 성숙에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고난을 피하지 말고, 마음먹고 견디는 법을 배우라 하였다. ‘자발적 고난’ Voluntary Suggering을 견디는 법을 배우고 익히며 수련하면, 마침내 성숙한다.

성서의 수많은 인물들 가운데 고난에 관한 표본을 우리는 욥에게서 찾는다. 까닭은 스스로 저지른 잘못 때문에 겪는 고난일지라도 잘 견뎌내면 변화하고 성숙하는 법이다. 하물며 욥은 잘못은커녕 ‘의인’으로 칭송받던 사람인데 뜬금없이 고난을, 그것도 말로 표현하기 힘든 고난을 받고도 상상을 넘어서는 인내로 하나님 만을 의지하며 견뎌냈다.

욥은 고난을 이겨낸 상징이다. 육체적 고난과 정신적 고난을 견뎌낸 원형이다. 욥은 ‘어째서 선한 사람에게 악한 일이 생기는가?’라는 질문을 할 수밖에 없는 사람들의 표본이다. 하나님도 자랑하는 욥이었다. ‘흠이 없고, 정직한 사람, 그렇게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을 멀리하는 사람은 없다’고 말씀하신다(욥기 1:8).

그런 욥에게 혹독한 시련이 닥친다. 사람으로서는 이유를 알 수 없는 고난이 찾아온 것이다. 성서에서는 사탄이 하나님께 이의를 제기하여 사단이 벌어지는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사탄이 주님께 아뢰었다. ‘욥이 아무것도 바라는 것 없이 하나님을 경외하겠습니까?’ 욥의 경외심을 신뢰하신 하나님께서 사탄에게 말씀하셨다. ‘그가 가진 모든 것을 다 네 손에 맡겨 보겠다.’ 그러고 나서 재난이 닥쳤다. 사람으로서는 알 수 없는 원인이 하늘에서 시작되었다.

결국 욥은 느닷없이 양 7000마리, 낙타 3000마리, 겨릿소 500쌍, 암나귀 500마리 등 온갖 재산을 박탈당한다. 상상을 초월한 상실이다. 게다가 일곱 아들과 세 딸을 잃는다. 갑자기 광야에서 강풍이 불어와서 잔치를 벌이고 있던 그들에게 재난이 일어나 집이 무너져 깔려서 죽었다. 소식을 전해들은 욥은 충격과 슬픔에 빠졌다.

‘욥은 겉옷을 찢고 머리털을 민 다음에, 머리를 땅에 대고 엎드려 경배하였다.’ ‘빈 손으로 태어났으니, 빈 손으로 돌아갈 것’이라 말하며 주님의 이름을 찬양하였다. 다른 사람 같으면 하나님을 저주하고 신앙도 경외심도 버릴 만 한 지경이었다. 그러나 욥은 ‘주신 분도 주님이시오, 가져가신 분도 주님이시니, 주님의 이름을 찬양할 뿐입니다.’ 하였다.

그러자 욥이 재산을 빼앗기는 정도로는 안 되는 것을 보고 사탄이 재차 시험하였다. 이것도 사람으로서는 알 수 없는 발단이다. 결국은 욥이 ‘발바닥에서부터 정수리에까지 악성 종기가 나서 고생하게’ 되었다. 욥이 잿더미에 앉아서 옹기 조각을 가지고 자기 몸을 긁고 있는 것을 본 그의 아내가 ‘차라리 하나님을 저주하고서 죽는 것이 낫겠습니다’ 할 정도로 참혹하였다.

2. 체념하는 욥

에니어그램 #4번 유형은 상상력과 감정이 풍부하고, 고통이나 고난에 대하여 민감하다. 상처에 대해서도 예민한 편이다. 그래서 같은 조건과 환경 속에서도 남들보다 힘이 든다. 그러나 건강하고 성숙하면 ‘하나님과의 일치’를 지향하며 직관력도 높고 텔레파시도 강하고 감정의 균형이 이루어지면서 침착해진다. 입을 열어 말을 하면 감동을 주고 설득력이 높다.

성서의 욥은 이처럼 건강하고 행복한 #4번 유형의 표본으로 등장하는데, 지상에서 사는 사람들로서는 예측도 못하고 원인도 알 수 없는 고난을 겪게 된다. 그 고난이 얼마나 극심한지, 의인으로 칭송 받는 욥, #4번 유형의 건강 상태로 보면 최상의 경지에 있다고 볼 수 있는 욥에게도 견디기가 쉽지 않았을 것이다. 하나님을 전적으로 의지하기에 흔들림 없이 침착하긴 하여도 고통에 대하여 민감하기는 마찬가지였을 터이니 말이다.

욥은 그야말로 억울한 고난과 고통을 당하는 상징이다. 자기감정을 살피고 분석하고 느끼는 데 많은 시간을 보내는 #4번 유형은 특히 고난을 당하면 동정심을 유발하거나 상황을 비극적으로 말하는 것도 따지고 보면, 깨야 할 자기 이미지의 일부이다. 이와 함께 극복해야 할 것이 ‘과거 지향성’이다. 특히 욥과 같은 처지가 되면 풍요로웠던 삶을 회상하며, 현재를 둘러보면 자괴감과 부족감이 생기기 쉽고, 그래서 시기의 격정이 끌어 오르기 쉽다.

#4번 유형은 문제가 생기면, 현실을 도피하면서, 눈을 감고 환상 속에서 해결책을 찾으려는 성향이 있다. 그러므로 환상을 깨고 문제와 고통과 고난을 직시해야 한다. 피하려고 할수록 그것은 ‘불필요한 고난’으로 생각되고 #4번 유형을 환상 속으로 내몬다. 그래서 현재에 깨어 있어야 한다. 고난을 직시하고,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현실 속으로 들어가야 한다. 고난을 견뎌내면 성취하고 성숙한다는 신념을 갖고 나면 #4번 특유의 통찰력과 직관력으로 고난을 ‘필요한 고난’으로 수용하고 ‘자발적 고난’을 견디는 법을 배우고 익히게 된다. 끝내 하나님과의 일치를 경험하며 더할 수 없이 침착해진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이렇게 된다고 해도, 거기에 이르는 과정, 특히 욥이 겪는 고난의 ‘과정’은 말처럼 쉬운 것이 아니다. 하지만 명백한 것은 견디기 어려운 만큼, 견디고 이겨내면 결과는 비길 수 없을 만큼 좋은 법이다. 이런 뜻에서 고난은 시험이요 시금석이다. 신앙도 인생도 고난을 이겨내면 성취하고 성숙한다.

그러나 여기까지의 과정이 어렵다. 고난도 밑바닥까지 내려가야 올라오는 법이다. 그 과정에서 분노도 불평도 원망도 일어난다. 끝내 체념하는 데까지 이른다. #4번 유형이 이런 상황에 놓이면 극심한 스트레스로 인하여 ‘동굴’ 속으로 들어가는 심정이 된다. 방에 콕 처박히는 ‘방콕’상태가 된다. 모든 것을 체념하고 포기하고 싶다.

고난을 당하지만 하나님과 일치를 이루는 상태에 있던 욥은 부인이 ‘차라리 하나님을 저주하고서 죽는 것이 낫겠습니다’라고 말하였을 때도 흔들림이 없었다. 그러나 고통이 참기 어려워지고 습진이 견디기 어려워지니까 몸도 마음도 지치고 힘들게 되어서 자기 출생을 저주하고 원망하기까지 기운다. ‘욥은 이 모든 어려움을 당하고서도, 말로 죄를 짓지 않았다’(2:10)고 한다.

#4번 유형들은 감정을 직접적으로 표현하지 않으려는 성향이 있다. 말로는 아니더라도 마음으로는 원망하고 불평할 수 있다. 하나님을 저주하지는 않아도, ‘드디어 욥이 말문을 열고, 자기 생일을 저주하면서 울부짖었다’(3:1). 신실함을 체념하는 모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