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

삼촌이 가다가 백구를 안는다.
안고 가다 지고 간다.
백구가 삼촌 등에 업혀간다.
눈보라,
눈길을 간다.
산길을 걸어
들길을 걸어
고개를 넘어
개울을 건너
꽃우물, 전설의 마을
그런데 어디선가 개 짓는 소리 요란하고
굴뚝에서 저녁연기 피어오르는데, 분명히
사철탕 집, 개장국 집, 무슨 가든이며
울긋불긋 간판마다 불이 켜진다.
신도시 변두리의 산골 동네,
음식점뿐만 아니라 새로 세운 절간도 있고
새빨간 십자가 예배당도 보인다.
무엇보다 걸리는 건 개 사육장,
거기서 키우는 개가 그슬려
바로 옆집 개장국 집의 개장국이 되는지
백구가 끙긍거린다.
삼촌은 망설이다
외갓집 마당에서 돌아선다.
폐교된 초등학교 옆
삼촌의 임시 화실이 된 기와집,
빈집 대문을 열고
마당으로 들어선다.
네모진 안마당에 눈이 쌓인다.
쌓인 눈 위에 눈이 쌓인다.
백구를 세워 두고
안채 부엌 아궁이에
장작불 지핀다.
가마솥에 샘물 퍼다 붓고
백구는 마당에서 놀고
날이 저물고,
백구가 아궁이 앞에 엎드리고
물이 끓고
삼촌은 백구를 쓰다듬고,
백구는 모처럼 눈을 내리 감는다.
문 밖엔 밤새 눈보라
웬일인지 개 사육장에서는
개들이 울고
삼촌은 백구와 둘이
캄캄한 방안에서
이불도 없이 깔개도 없이
그 밤을 보내고,
이튿날 아침 일찍
외갓집을 찾아간다.

새벽참에 사돈총각 맞이한 두 노친네. 그러니까, 외할아버지와 외할머니 얼마나 놀라셨을까.
“오셨으믄 내 집에 와 주무시던가 먼 길도 아닌 거리를…….
오늘 아침 오시던가, 엄동설한에 빈 집에서 잠을 자고, 새벽참에 그것도 개와 함께…….
어서오소, 이를 어쩐다. 아랫목으로 앉으시게나…….”
삼촌은 밥을 먹고 숭늉도 마신 다음 개밥을 부탁하고, 외할머니께 개똥도 부탁하며 외할아버지께 어쩌다 이런 부탁을 어르신께 하게 됐는지 자신도 알 수 없다며 머리를 조아렸죠. 그러고 그날 하루 삼촌은 외갓집에서 개집도 만들고 밥그릇도 찾아 놓고 외할아버지, 외할머니께 다시 신신당부 잊지 않고, 내일 모레 다시 오겠다 하며 돌아설 수밖에 없었죠.(다음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