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여름은 무던히 더웠습니다. 끓는 가마솥이 따로 없었습니다. 날씨만이 아닙니다. 한상렬 목사의 북한입국사건으로 세상이 바글바글 끓었습니다. 특히 교계가 더욱 끓었습니다. ‘미치광이’ ‘정신병자’ ‘과대망상’ ‘객기’ ‘치기’ ‘망발’ 등 한국교회가 한상렬 목사에게 붙인 수식어들입니다. 그토록 격렬한 반응을 보이다니. 생각해보니, 정말 한상렬 목사에게 딱 맞는 말이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분단 65년이 지났음에도, 멀어져만 가는 통일의 꿈, 불길한 징조들, 숨통이 꽉 막힌 남북의 현실에서 미친 사람 하나 없다면 그게 어디 정상이겠습니까! 그래서 한상렬 목사는 미친 사람이지요. 과대망상에 사로잡힌 자이고요. 참 바보지요. 지금이 어느 땐데 미운 짓을 골라서 하다니! 욕을 바가지로 먹어도 싸지요. 알고 보면 문익환 목사도 그런 사람이었지요. “평양 가는 기차표 살래야!”라고 ‘잠꼬대’한 사람이었으니까요.

한국교회 대표적인 보수단체는 한상렬 목사를 비난하는 것으로 모자라, 그가 소속된 교단까지 비난하는 성명서를 발표했습니다. 물론 이에 질세라 해당 교단에서도 반박 성명서로 맞받았습니다. 한국교회 보수와 진보가 시퍼런 날을 세운 것이지요. 다행히 멱살잡이까지는 가지 않았지만, 마치 발가벗은 임금님처럼 한국교회의 속살이 그대로 드러났습니다. 오히려 잘 됐다는 생각도 듭니다. 제각기 ‘평화통일’을 말하면서도 서로 통하지 않은 연유가 다른 데 있지 않았나 봅니다. 북한을 인식하는 유전자가 피차 다른 것을 몰랐던 것입니다. 참 우스꽝스러운 일입니다. 상대의 인식 코드를 알지 못하면서 ‘하나 되어야 한다’고 공허한 소리만 하고 있었으니.

한상렬 목사는 자신이 옳다고 여긴 일을 한 것입니다. 그가 목사라는 것이 비난의 대상이 되고, 그가 속한 교단이 규탄의 대상이 되었지만, 제대로 된 목사라면 그래야 하는 게 아니던가요? 신앙양심에 따라 옳다고 여기는 바대로 행동하는 목사, 그게 진짜 목사라는 생각입니다. 이 눈치 저 눈치 보는 것도 모자라 다중의 열기에 영합하고, 권력의 입맛에 드는 말만 골라서 하고, 이권이 개입된 일에는 불나방처럼 달려들고, 교세가 크다고 노골적으로 뻐기고(차라리 복근을 자랑하는 게 낫지). 그러면서도 마치 세상의 심판자라도 되는 양 허세부리는 게 무슨 목사이겠습니까! 나라 법을 어긴 것은 한 목사 스스로 책임지겠다고 했다니 그러면 된 것이지요.

이번 한 목사에 대한 한국교회의 격한 반응을 보면, 한국교회가 진정으로 남과 북 사이에 얽히고설킨 원수관계를 청산하고, 평화 통일을 성취할 의지가 있는 것인지 의구심이 듭니다. 예수님의 평화는 원수를 친구로 만들라는 게 아닌가요? 원수를 친구로 만드는 데 특별한 비법이 없습니다. 미워도 자주 만나고, 마음에 안 드는 일이 있어도 참고, 이왕이면 좋게 말하고, 좋게 대하는 것입니다. 어려울 때 도와야 하고요. 지난 일을 계속 들춰내 심장에 비수를 꽂고, 받아들일 수 없는 조건을 내세우면서 친구가 될 수는 없습니다. 버르장머리를 단단히 고치기 전에는 절대 친구 될 수 없다면, 이거야말로 자기 발등 찍는 일이지요. 지금 한국이 그러고 있는 게 아닙니까? 미국의 항공모함까지 불러들여 연일 무력시위를 하면서 북한이 납작 엎드리기를 바라는 모양새가 참 우습습니다. 굳건한 한미동맹과 압도적인 군사력에 의해 도발 의지를 꺾어놓고, 봉쇄하고, 붕괴되면 흡수통일 하겠다는 것인데, 이건 원수를 친구 만드는 게 아니라 깔아뭉개겠다는 것입니다. 그것도 자유의 이름으로. 과연 원수를 깔아뭉개고 평화를 성취한 역사가 있는지 묻고 싶습니다. 예수님의 평화가 소위 ‘로마의 평화’와 충돌하는 이유가 다른 데 있지 않을 것입니다.

평화가 하나님의 은총인 것은, 그것이 조건 없는 자비의 실천이기 때문입니다. 손톱 밑에 작은 가시 하나만 박혀도 잠을 이루기 어렵습니다. 하물며 북한을 원수로 남겨둔 채 한반도의 평화는 요원합니다.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이해 못하는 이들이 너무 많습니다. 요인이 어디에 있든 분단의 상처는 불신의 그늘을 과잉생산하고 있습니다. 천안함 폭침과 같은 사건은 극도의 불신에서 비롯된 비극입니다. 이 불신의 벽을 허물지 않는다면 남과 북은 돌이킬 수 없는 불행을 자초할 수도 있습니다. 원수가 목마를 때 마실 것을 주고, 배고플 때 먹을 것을 주는 것은 원수를 친구로 삼는 가장 쉽고도 안전한 길입니다. 예수님의 평화 프로세스가 그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