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다섯 살 반 된 손녀와 두 살 반 된 손녀가 있다. 그 아이들이 보고 싶으면 시도 때도 없이 딸네 집으로 간다. 그 아이들 역시 이 외할머니를 좋아하며 내가 가면 소리소리 지르곤 한다. 큰 아이는 할머니하고 같이 살았으면 좋겠다는 말도 자주 한다. 내가 가면 뽀뽀를 하자고 자주 요구하기 때문에 귀찮아 하기도하지만 그래도 우리의 사랑은 잘 유지되고 있다. 뽀뽀하기 싫을 때는 “싫어”하며 팩 돌아서지만 나는 그 때 절대로 거절당했다는 생각을 안 한다. 그 아이의 그런 모습이 마냥 귀엽기만 하다. 조금 있다가 기회를 봐서 또 다시 “뽀뽀하자”라는 나의 구걸에 다시 응해 주기도 한다. 어떤 때는 내가 우는 시늉을 하면 “응, 그래, 그래” 하면서 나를 달래주느라고 귀여운 입술과 볼을 가지고 온다.

할머니인 나는 손녀와의 관계에서 좋은 면만 지닐 수 있지만, 에미인 내 딸은 아이들과의 긴장이 많이 있게 된다. 위험한 장난을 할 때 다칠까봐 못하게 할 때도 있지만 에미 자신이 싫어하는 행동을 할 때에도 저지를 할 때가 있는 것이다. 내 생각에는 소파나 침대에서 뛴다거나 마루에다 물을 쏟거나 하는 일은 어느 정도 놔두어도 괜찮은 것 같은데, 내 딸에게는 허락이 안 되는 일이다. 딸은 워낙 깔끔하게 살림을 하는 사람이다. 그러나 그것이 어린아이들에게 감정이 억눌러져 크게 자라지 못할까봐 걱정이 되기도 한다. 나는 내 딸이 너무 깔끔 떠는 것이 보기 싫어서 얼마동안 딸집에 가지 않았다. 그런데 문제는 아이들이 보고 싶어져서 못 견디는 것이다. 왜 할머니는 손녀들에게 이렇게 무조건적인 사랑을 갖게 되는 것일까? 본능이라고? 본능이라도 좋다. 아이들이 나에게, 삐쭉 빼쭉해도 마냥 예쁘기만 하니 말이다.

에니어그램 2번인 나는 친구가 많기 때문에 서로 사랑하며 산다고 생각하는 관계가 많이 있기 마련이다. 어떤 사람과 관계가 나빠지는 것을 견디는 것이 나에게는 어려운 일이다. 예전에 나는 누구에게나 다 내가 대접해야 한다는 ‘봉사’라는 함정에 빠져 있었다. 내 주머니에 돈이 별 로 없어도 밥값은 내가 내야 되는 줄 알았다. 내가 남에게 잘 해주면 다른 사람도 다 나에게 잘 해 줄 것이라는 생각이었던 것이다.

나이가 들면서 꼭 그런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고, 나는 사람사이에서 긴장이 생기면 몸에 스트레스성 병이 생기곤 했었다. 이제 나는 ‘봉사’라는 함정에서 빠져나오고 싶다. ‘남편이나 자녀들에게도 내가 잘 해 주면 되지’라는 생각에 살아 왔다. 그러나 모든 관계는 내가 잘해 준다고 해서 잘 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이 때도 있고, 장소도 있고, 때로는 아무 것도 안 해주는 것이 잘해주는 것이 될 때도 있는 것이다.

내가 남에게 잘 해주며 사는 것을 좋아하고 칭찬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그렇게 하지 못하는 사람이 나를 시기 할 수도 있는 것이다. 또한 내가 선의로 한 일이지만 상대방에게는 자존심을 건드리고 아프게 해 줄 수도 있는 것이다. 내가 의도적으로 한 일이건, 아니건 간에 상대방과 긴장이 생기는 것이 나는 싫다. 그것이 나의 몸을 상하게 하기 때문에 더욱 싫다.

어떤 사람은 나에게 기도하며 사는 사람이 왜 스트레스를 받느냐고 한다. 맞다, 그렇다! 그동안 나는 나와 긴장이 생긴 사람사이에서 그 긴장을 풀려는 노력을 많이 하며 살아왔다. 그러나 어떤 사람들은 그것이 진행되지 않을 때도 있다. 상대방이 준비되지 않을 때도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긴장이 풀어지지 않는 동안에 나는 편하지가 않는 것이다.

기도한다. 내가 잘못했을 때는 내가 회개하기도 하지만 상대방이 나에게 잘못했을 때는 그를 용서하게 해 달라는 기도를 한다. 그러나 나의 기도는 장기를 두는 것처럼 하나 놓고 하나 먹는 것 같은 구도이다. 이것 가지고는 해결이 나지 않을 것 같다. 손녀와의 관계에서 배우는 것처럼, 그 쪽에서 나를 공격하든, 토라지든, 거절하든, 나는 그에게 좋은 감정을 계속 가지는 것이다.

이것은 어떤 상대를 위해 가지는 마음이 아니다. 내 자신이 항상 말랑말랑한 마음을 유지하는 것이다. 다른 사람을 생각해서, 그가 나빠 질까봐, 그가 불행해 질까봐 내가 어떻게 해 주려고 하는 관심을 나에게로 돌리는 것이다.

어느 누구하고 지내든지 손녀와의 관계처럼, 내 자신이 별 상처를 받지 않고 그저 평온한 마음을 유지하는 것이다. 부활하신 주님이 제일 먼저 하신 말씀 “평안하라” 이것이 나에게 주신 은총임을 다시 한번 깨닫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