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 온 뒤 선들 바람이 불면서도 햇볕은 따갑다. 모든 곡식이 익어서 추수를 기다리며 벌판을 물들이고 있겠지?. 어떻게 했는지 이른 가을 과일들이 벌써 가게에 많이 나왔다. 달이 둥글게 영글어 가면 덜도 말고 더도 말고 한가위만 같아라! 하는 명절 추석이 다가온다.(햇순을 받아 보았을 즈음에는 지났겠지만)

‘아 좋다!’ 그런데 왜 명절만 되면 뭔가 숙제를 하지 못한 것 같은 기분이 된다. <추석을 어찌할꼬><추수감사절 따로 추석 따로> 아직도 기독교 문화 안에서 이 두 날이 잘 정리가 되지 않는다. 교회는 우리에게 설날과 추석과 같은 우리 고유의 두 명절은 알아서 하라고 방치하고 있다. ‘성묘예배문을 교회현관에서 가져가서 사용하세요’ 하는 정도의 약간의 배려 외에 명절은 뜨거운 감자로 집집마다 다루는 방식이 다양하다. 추석을 추수감사절로 대치해서 지내는 교회가 있다고는 하지만 많은 사람에게는 아직 어정쩡한 날이다. “명절에는 귀신이 마구 돌아다니니 믿는 사람들은 조심하라고 목사님이 그러셔요” 후배가 어떻게 조심해야 좋을지 모르겠다고 조심스러워 한다.

“명절은 다 큰 자식들의 성적표를 비교하는 날 같아요.” 자식들은 전전긍긍한다. 기독교 가정도 예외가 아니다. 우리가 어떤 가문이고 집안인데, 아직도 뼈대있는 집안, 번창하여 복 받은 가문이고 싶은 우리 안의 과시가 조상제사와 음식장만으로 우리를 묶어 놓는다.

3일의 연휴로 이어지는 명절을 지치고 힘든 날로 보내는 것이 이 땅의 아내요 며느리요 딸들이다. 조상제사를 추모예배로 바꾸어 드린다. 힘든 음식을 형제자매들이 나누어 조금씩 해오기도 한다. 하루는 시집에 하루는 친정에 가는 대안을 내놓기도 하고 남자들이 설거지를 하는 것을 해결책으로 삼기도 한다. 간소하게 축소하기도 하고 아예 외국여행으로 갈등을 모면하는 방법도 훌륭한 대안으로 쓰이고 있다. 이런 저런 대안명절이 제시되고 있어 육체적인 문제는 덜어질지 몰라도 사실 여성들은 몸이 힘든 것은 오히려 차후 문제라고 말한다. 정리되지 않은 명절의 찌꺼기들이 사실 우리를 더 힘들게 한다. 무엇이 우리를 이렇게 부담스럽게 하는 것일까?

우리 삶과 전통이란 이름의 현장을 신앙의 눈으로 이해하고 해석해야 하는 숙제를 늘 못하고 있다. 장구한 세월 속에서 제도나 관습이 결국 인간에 의해 형성되는 것인데 무엇이 즐거워야 할 날에 행복해야 할 사람들을 상처내고 고통을 주나 생각해 보지 않을 수 없다.

하늘에 감사하고 먹을 것을 이웃 공동체와 나누는 명절에 언제 차례와 성묘가 포함이 되었을까? 성묘는 한식과 중추에 가장 성했으나 서울 사람들 양반 일부가 하던 것이(유득공의 경도잡지-1790년) 또한 사당에 차를 올리던 간단한 차례도 조선후기 대략 1800년대에 와서야 명절에 포함이 되었다고 한다. 그것도 서울 지방에 한정되었고 전국적 행사로 제사가 정착된 것은 개항 이후 1850년 후대의 일로 보고 있다. 조선시대의 제사형식도 부계, 장자 중심도 아니었고 양자제가 일반화되는 17C-19C이전에는 혈연관계에 있는 딸에게 봉사권과 재산상속권이 주어졌다. 불교와 기독교는 성직자가 구별되어 있어서 예식을 주관하게 했는데 유교는 성직자가 없는 대신에 모든 가정의 남자 특히 큰아들만을 성직자로 세워 제사를 주관하게 하였다. 어마어마한 숫자의 남자성직자가 각 가정에 대를 이어 추대되며 명절을 주관하였다. 전통은 만들어지는 것이 분명할 뿐 아니라 변화해야 하는 것이다.

이런 한국인의 가부장적인 명절에 예수 그리스도의 삶이 만나서 구원의 역사가 일어난다면 어떻게 될까? 다는 할 수 없지만 이 숙제 하나만이라도 올해는 하고 싶다. 무척 흥미로워질 뿐 아니라 새 전통을 위해 우리가 결단해야할 과제로 여겨진다.

명절이 핏줄가족 그것도 아들 중심의 가족 일로 생각하는 편견에서 해방시키실 것 같다. 핏줄가족끼리 모이는 명절을 부끄럽게 여기게 하실 것 같다. 누가 네 부모며 형제냐? 핏줄가족의 명절 분위기 때문에 소외되고 열등감을 갖게 되는 사람들은 누구일까? 생각해 볼일이다. 예수께서는 “그래 지금 네가 생각해 내는 그 사람이 네 가족이다”라고 말씀하실 것 같다. 누구를 생각하셨습니까?

“그 사람을 우리 자리에 초대합시다. 아니면 그 사람을 찾아가 함께 합시다.” 그 사람이 명절에 함께 해야 할 예수의 생명가족일 것이다. 하나님께서 축복하여 허락하신 생명의 띠로 우리 모두가 하나이고 당신은 나에게 복된 인연이라고 말해 주는 명절이 된다면 올해 숙제하나를 한 셈이 된다. 숙제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