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목회지였던 학운리의 학운교회…. 30년 전, 이곳은 뱀골이라 불릴 만큼 뱀이 많았습니다. 재래식 변소 발편이나 마당, 부엌 개수대 구멍을 타고 설거지 그릇에도, 심지어 빨아서 널어놓은 트렁크가방에까지, 그야말로 뱀 천지였습니다. 서울서 갓 시집 온 어린 새색시는 하루에도 몇 번씩 까악 까악 놀래곤 했습니다. 특히, 동산 아래에 있는 우물펌프에 물을 길러 갈 때면, 계단마다 서리서리 뱀들은 꽈리를 틀고 모여 있었습니다.

이러한 환경 속에서 살아야 하는 제가 염려스러웠던지, 집사님들이 제게 교육을 시켰습니다. 보통 뱀들은 사람을 보면 달아나지만, 알록달록 현란한 색을 띤 뱀은 독을 품고 있어서 사람을 해칠 수도 있으니, 그런 뱀을 보면 다 지나갈 때까지 건드리지 말라는 것이었습니다.

그 이듬 해, 여름성경학교 교사들을 위한 식사준비를 위해 텃밭에 들어가 풋고추를 따고 있는데, 갑자기 발등에 찬 기운이 느껴져서 내려다보니, 그 문제의 알록달록한 뱀이 제 발등에 척 걸쳐 있었습니다. ‘알록달록’이를 보면 건드리지 말라는 집사님들의 말이 생각나서, 나는 ‘알록달록’이가 다 지나갈 때까지 꾹 참았습니다. 하지만, 너무나 놀라서 긴장한 나머지, 어지럼증에 걸려서 한 달 만에 일어나야만 했습니다. 이곳 학운리에서 6년 동안 목회를 하다가 산골마을로 떠나게 되었습니다.

해마다 이맘때가 되면, 고추이식을 하고 모내기까지 끝낸 산골마을 사람들은, 철이 지나 쇠어버린 산나물과 고사리 꺾기가 시작됩니다. 어느 날, 중고등부 지도를 하기 위해서 교회를 가던 중에, 어느 집사님으로부터 안타까운 소식을 들었습니다. 우리교회 집사님이랑 함께 고사리 꺾으러 갔던 오사리교회 집사님이 뱀에 물려서 위독하다는 것이었습니다. 나는 중고등부 기도시간에 뱀에 물린 그분의 쾌유를 위해서 기도하기로 했습니다. 기도시간이 되자, 나는 안타깝고도 간절한 마음으로 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 “하나님, 오사리에 사시는 집사님이 고사리 꺾으러 갔다가 뱀에 물려 위독하답니다. 오사리에 고사리 꺾으러 가셨던 그분을 치료해주셔서, 오사리에 고사리에…. 아니, 고사리에 오사리에….” 제 특기인 헷갈림 증세가 시작되자, 간절하고도 경건해야할 기도시간이 엉망이 되고 말았습니다. 내가 헷갈려 할 때마다, 적절한 단어를 말해주는 기특한 녀석들 때문에, 나는 더욱 헷갈리게 되었습니다. 진지함을 회복하기위해서 눈물까지 흘리며 기도했습니다. 하지만, 진지함을 아직 찾지 못하고 있을 때, 기특한 녀석 중 하나가 작은 소리로 “애들아, 사모님이 우셨어!”하고 말하니, 다시 조용해졌습니다. 웃음은 좋은 것이지만, 경건함과 간절함에는 별로 도움이 안 된다는 것을 알게 되었던 중요한 시간이기도 했습니다.

산골마을에 살면서 집사님들과 함께 고사리를 꺾으러 여러 번 간 적이 있습니다. 산골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분들이라 통통하고도 튼실한 고사리를 척척 꺾고 있을 때, 나는 머리를 땅에 대다시피 하고 고사리를 찾았습니다. 서서는 절대로 안 보이던 고사리, 머리를 땅에 대고 옆으로 바라보면 다른 풀보다 조금 더 키가 큰 고사리가 눈에 보였습니다. 그렇게 조금 꺾다보면, 머리가 아파서 나무그늘 밑에서 쉬곤 했습니다. 햇고사리를 삶아, 새끼 조기와 함께 조려먹는 그 맛 때문에, 고사리를 꺾으러 산으로 들로 다녔지만, 나는 뱀을 한 번도 본 적이 없습니다.

그리고 학운교회를 떠난 지 21년이 지난 후, 그 산골마을을 떠나 다시 이곳에 오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다시 오게 되면서 걱정했던, 그 뱀들이 지금은 거의 없습니다. 그런데, 뱀만 사라진 것이 아니라, 뱀과 함께 사라진 것들이 너무나 많습니다. 학 鶴이 구름처럼 많아서 학운리 鶴雲里라 불리던 이곳에, 이제는 학 鶴이 없습니다. 학 鶴만 아니라, 여름이면 시끄러워서 잠을 이루지 못하게 방해하던 개구리들도 거의 다 사라졌습니다.

그밖에도, 이름 모를 새들과 맑은 공기, 그리고 염전과 갯벌도 다 사라지고 없습니다. 사라진 것들이 다시 돌아온다면, 알록달록한 뱀 때문에 하루에도 몇 번씩 까악 까악 놀라는 일이 생길지라도, 그 모든 것들과 다시 함께 하고 싶습니다. 그때, 몸서리치도록 무서웠던 뱀들이 그리워서, 혹시나 하고 잔디밭이나 동산 모퉁이를 잘 살펴보곤 합니다. 그러나 아직 제 눈에는 단 한 마리도 보이지 않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