볍씨 아이들과 교사들은 적어도 일주일에 한 번씩은 ‘생활나눔’을 합니다. ‘생활나눔’은 말 그대로 내 생활을 함께 나누는 것을 의미합니다. 아이들이 어릴 때에는 주로 주말에 있었던 일을 서로 소개하며 시간을 보냅니다. 아이들 이야기를 듣다 보면 그 아이가 어떠한 문화 속에서 무엇을 느끼며 살아가고 있는지, 아이가 무얼 중요하게 여기고 세상과 어떻게 소통하며 지내고 있는지를 엿볼 수 있습니다. 그렇게 이야기가 쌓이고 쌓여 아이들이 점점 자라가면, 생활나눔의 깊이도 달라집니다. 신변잡기를 다루는 것에서 벗어나 주변 사람들과의 관계가 어떠한지, 내가 무엇과 갈등하고 있는지, 내가 주로 겪는 상황과 감정은 어떤 것인지를 스스로 살피고 고백합니다. 교사들끼리 모이는 자리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볍씨 교사 공동체 ‘밥’ 회의 때에도, 광명YMCA 실무자들이 모두 모이는 ‘이리 와 등대모임’ 때에도 생활나눔이 언제나 제일 먼저입니다. 자기 이야기, 삶의 이야기가 우리들한테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생활나눔은 나 자신을 되돌아보며 성찰하는 장입니다. 하지만 그러한 성찰이 진짜 힘을 받는 순간은 그걸 꺼내놓는 그 때입니다. ‘내가 보는 나’는 나라는 존재의 전체 가운데 어느 한 부분일 따름입니다. 평생 내 뒷모습을 내 눈으로 확인할 수 없는 것처럼. 우리 뇌는 많은 정보들을 자기한테 유리하게 왜곡해서 기억 속에 담아둔다고 하지요. 나 혼자 있어서는 나 자신을 제대로 알 도리가 없습니다. 내 모습을 밝히 보려면 거울이 필요하듯, 진짜 나를 찾아가는 데에는 나를 되비쳐줄 ‘너’가 필요합니다. 내 안에 꼭꼭 담아두는 것으로 끝내지 않고 공동체 안에서 이야기를 시작할 때, 나 스스로를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는 힘이 길러집니다. 과장된 것이 힘을 잃으면서 떨어져나가고, 내 눈엔 모호하던 것이 저이의 입술에서 선명하게 확인되고, 옛이야기 속에 등장하는 ‘코끼리를 만진 눈 먼 생쥐’ 같던 내 시야가 점점 확대되는 경험을 하면서 말이죠. 아주 구체적이고 실제적인 그의 이야기는 지금 내가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려주는 지혜의 빛이 되기도 합니다.

에니어그램은 우리들의 이야기를 훨씬 풍성하게 만들어줍니다. 사람을 이전보다 다차원적인 측면에서 읽을 수 있게 도와주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그가 겉으로 드러내는 여러 가지 단편적인 사실들을 넘어서 그가 주는 느낌과 기운의 파장, 그의 욕구, 그래서 반복될 수밖에 없는 상황들을 읽어내려고 노력합니다. 또 에니어그램은 이런 역할도 합니다. 누군가를 이해하려 할 때, 그에 대해 서로가 알고 있는 각각의 조각들이 퍼즐처럼 아귀를 맞춰가며 전존재를 그려낼 수 있도록 촉진하는 일을. 사람들은 에니어그램을 고리로 대화를 나누며 좀 더 빠르게 공감대를 형성하고, 서로의 상태를 읽어주고 해석해주면서 긍정적인 기운을 북돋우곤 합니다.

지난 3-4월에는 상담이 한창 진행되었습니다. 교사와 아이가 1:1로, 또 교사와 부모가 1:2로, 때론 반 아이들 모두 함께 집단적으로. 에니어그램은 상담 과정에서 우리가 짚어야 할 지점들이 좀 더 또렷하고 명료해질 수 있게 작용합니다. 아이의 과거사를 평면적으로 읊고 지나가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지금의 아이한테 미친 영향력과 지금이라도 풀어야 할 문제를 찾아내는 것, 또 앞으로 애써야 할 과제들을 함께 확인하는 데에도 기여하고요. 꼭 상담이 아니더라도 기회가 되어 아이와 속 깊은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어느 순간 아이에게서 나 자신을 발견하게 될 때가 있습니다. 그럴 때는 갑자기 아이와 나의 경계가 허물어진 듯하여 묘한 느낌이 들기도 하고, 내 안의 상처가 치유되면서 내가 갖고 있던 짐이 한결 가벼워지기도 합니다. 또 가끔은 두려움을 무릅쓰고 용기 있게 내뱉은 이야기가 이야기한 그이의 내면과 그를 둘러싼 관계를 이전과는 다른 차원으로 변화시키는 것을 봅니다. 공감과 솔직한 이야기의 힘은 참 대단합니다. 진정한 ‘나’와 진정한 ‘너’가 만나, 나도 없고 너도 없는 자유로움을 맛보게 한달까요. 그야말로 인생에서 가장 멋진 춤!

봄이 없어졌다고 이구동성으로 야단이다. 때 이른 꽃망울에 연세 느긋하신 농군들은 변고 變故의 징조란다. 그 분들은 땅의 변화를 자신의 아픔으로 받아들인다. 하기야 반세기 이상을 봄맞이 하면서 살아온 분들에게 봄은 몸의 일부이다.

‘손에 매어 표로 삼고, 이마에 붙여 기호로 삼아라. 집 문설주와 대문에도 써서 붙여라.’ 쉐마가 함축하는 하나님의 율법은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몸의 일부다. 아니 전부다. 이스라엘 사람에게 쉐마가 아프면, 자신도 아프다. 자신이 아프면 쉐마도 아프다. 반대로 쉐마가 기쁘면, 자신도 기쁘다. 자신이 기쁘면 쉐마도 기쁘다.(오늘 묵상의 말씀은 신명기 6:1-9이다.)

“쉐마 이스라엘!”을 우리의 현재 말로 번역한다면, “들어라. 기독교인이여!”와 같이 될 것이다. 물론 구체적인 조목들은 재해석되어야 하겠지만….그렇다면 기독교인에게 몸의 일부, 아니 전부는 무엇인가?

최성규: 오늘 ‘해설’을 읽을 때, 사 55:10-11이 생각났다. “비와 눈이 하늘에서 내려서, 땅을 적셔서 싹이 돋아 열매를 맺게 하고, 씨 뿌리는 사람에게 씨앗을 주고, 사람에게 먹거리를 주고 나서야, 그 근원으로 돌아가는 것처럼, 나의 입에서 나가는 말도, 내가 뜻하는 바를 이루고 나서야, 내가 하라고 보낸 일을 성취하고 나서야, 나에게로 돌아올 것이다.” 이루어져야 돌아가는 말씀을 하나님께서 왜 주셨을까?

윤장한: 사람관계로 비유하면, 부모자식 관계가 하나님과 그리스도인의 관계를 가장 잘 표현할 것이다. 부모는 자식이 잘되기를 소망하며 교훈하지만, 자식들은 교훈을 기준삼아 반항하며 철이 들어간다. 반항과 교훈은 묘한 관계이다. 교훈이나 반항이나 모두 성숙을 전제하지만, 둘 사이에 심각한 갈등이 종종 일어난다. 나는 자녀 입장에 서서, 갈등하는 가운데 인간됨을 향하는 틀과 도구로써, 넉넉하신 하나님께서 쉐마를 주셨다고 생각한다.

김종우: 역사비평은 논외로 하고, 신명기는 이스라엘 민족이 가나안 땅에 들어가기 직전에 주신 말씀이다. 이스라엘 민족은 광야에서 말을 꽤 안 들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민족을 광야에서 이끄시는 도중, 그들의 성격을 알게 되었다. 크게 보면 쉐마가 인간됨의 틀과 도구이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쉐마를 주신 직접적인 원인은 배은망덕한 그들의 속성 때문으로 생각한다.

김기섭; 하나님께서 쉐마를 주신 의도는 단순하다. 인간의 복된 길을 가르쳐 주신 것이다. 결국 주님의 말씀을 새기고 실천하고 수행하는 것이 복된 길이다. 우리나라에도 쉐마 교육과 유사한 것이 있다. 바로 입시 교육이다. 하지만 방향은 반대이다. 우리나라의 입시 교육은 청소년을 망치고 있다. 지식에는 크게 두 가지가 있다. 도구적 지식과 통찰적 지식이다. 도구적 지식이란 생활에 효과적인 지식, 돈 버는 데 필요한 지식이다. 통찰적 지식이란 세계를 바라보는 지식, 세계 속에서 자신을 자리매김할 수 있는 지식이다. 이 두 가지가 모두 필요하지만, 우리나라 교육은 도구적 지식에 치우쳤다. 학교에서 뿐만 아니라 교회와 가정에서도 통찰적 지식 교육을 심화시켜야 한다.

최성규: 사람들은 보통 신앙을 두 가지로 분류한다. 기복 신앙과 참된 신앙이다. 쉐마의 핵은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이다. 참된 신앙이란 하나님과 이웃을 아는 것, 즉 세계 속에서 자신의 자리를 매김 하는 것이다. 그래야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 자연스레 온다고 성경은 증언한다.

윤병선: 더 나아가 쉐마는 삶 자체이다. 사람들이 가기를 기뻐하고, 교우들의 얼굴이 평안한 교회가 있다. 그러한 교회는 신자들이 목사님을 존경한다. 일반화 시킬 수 없지만, 그러한 교회와 목사님은 입만 있는 것이 아니라, 사람의 삶과 관계된 하나님의 마음을 잘 알고 잘 전한다. 교회와 목회자의 정체성은 짐꾼이다. 교회와 목회자는 하나님의 마음을 인간에게 실어 나르고, 인간의 삶을 하나님께 실어 나르는 사람이다. 오늘날 짐꾼 같은 목사님들과 교회들이 무엇보다 필요하다. 그런 목사님과 교회가 우리나라에 많아져야 우리나라에 희망이 있다.

라광진: 쉐마는 본디 “경청”이라는 의미가 있다. 오늘날 경청을 중요시하는 교육이 이 점차 강조되고 있다. 시각적인 것은 청각적인 것보다 용량도 크고 변화무쌍하다. 따라서 집중력을 떨어뜨리는 경향, 더 강한 자극을 유도하는 경향이 있다. 우리가 처한 세계는 더 시각적이며 더 변화무쌍한 시대가 되고 있다. 지금 우리에게는 조용한 경청이 필요하다. 더 큰 부를 향해 망나니처럼 날 뛰다가 하나님 주의력 결핍환자가 되지 말자. 하나님께 집중하는 능력이 하늘로 부터 온 세계에 부어지도록, 우리 모두 하나님의 말씀을 조용히 경청해서 세상을 살리는 목사가 되기를 희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