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6월 8일 배춘희 할머니(91세)가 돌아가셨다. 이제 세상 밖으로 걸어 나와 정부에 등록된 위안부 피해자 237명 중 생존자는 54명(국내 거주 49명) 밖에 남지 않았다. 이 분들의 평균 연령이 88세라고 하니 얼마 안 있으면 대부분의 할머니들이 한 많은 인생을 접게 되실 것이다.

1991년, 남은 생을 인간답게 살고 싶다며 위안부 피해자임을 밝힌 이후로 지금까지 할머니들은 매주 수요일 1,100여회가 넘도록 주한 일본대사관 앞에서 일본 정부의 공식 사과를 요구해 왔다. 또한 할머니들은 세계 여러 나라를 다니며 일본의 만행에 대한 증언을 계속해 왔다. 그 결과 2007년 미국 하원이 위안부 강제 동원에 대한 일본 정부의 공식 사과를 요구하는 ‘위안부 결의안’을 채택했고, 2011년에는 우리나라의 헌법재판소가 한국 정부가 위안부 문제와 관련해 분쟁 해결 조치를 취하지 않은 것이 위헌이라는 결정을 내리기도 했다. 또한 지난 해 교학사의 국사 교과서가 ‘위안부가 일본군 부대를 따라 다니는 경우가 많았다’고 서술한 것에 대해, 88세 김복동 할머니는 국정감사장에서 “우리를 강제로 끌고 간 것이지 따라 다니지 않았다”고 반박 증언함으로써 교학사 교과서 퇴출에 결정적인 역할을 끼쳤다.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이 원하는 것은 오직 짓밟혔던 그들의 인권과 명예를 ‘죽기 전에’ 회복하는 것이다. 20만 명에 달했던 전체 위안부 피해자들을 대신해 극소수의 할머니들이 ‘죽기 전에’ 죽을 힘을 다해 존중받아야 할 사람으로서의 권리 회복에 나서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이들이 지긋지긋하게 여기고 있는 것은 전쟁의 깃발 아래 자신들을 성의 노예로 삼았던 일본군들만이 아니라 전쟁 이후의 삶에서 경험한 ‘2차 가해’이다. 집안의 빚을 갚기 위해 군수 공장의 노동자나 전장의 군인 대상 간호사 모집 공고에 속아 자원했거나, 강제 납치·유괴 등의 방법으로 끌려가 짐승보다 못한 삶을 살다가 겨우 목숨을 부지하고 살아 돌아온 이들에게 쏟아진 것은 수치와 경멸의 차가운 시선이었다. 약자이기 때문에 당해야 했던 참혹한 고통을 가족과 고향, 국가의 품에서 따뜻하게 위로받고 억울함을 토해내며 자신들이 오직 ‘피해자’였음을 인정받아야 함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냉대와 외면 속에 더 깊은 슬픔과 절망을 경험했던 것이다. 할머니들은 위안부 피해자로 얼굴을 드러낸 뒤에 그동안 잘 지내왔던 주변 사람들의 시선이 달라졌다고 얘기한다. 그냥 잠자코 살면 모를 것을 굳이 드러내어 창피함을 무릅써야 하는지 의아해 하는 눈초리가 짐작이 가고도 남는다.

우리 사회는 자신의 불편함을 견디면서 이웃의 아픔을 진심으로 공감하는 것에 익숙지 않다. 관련없는 일에 힘들고 골치를 썩는 것에 대해 분노하고 마음 불편한 과거의 일을 대충 덮어 더 이상 신경쓰게 되지 않는 것이 살기 힘든 세상에서 생존하는 방법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매우 크다. 내 이웃이 눈물 흘리고 피를 토하며 가슴 쥐어뜯는 일은 공동체의 일원인 내게도 눈물과 아픔이 된다는 것을 알려 하지 않는다.

위안부를 강제 동원했던 과거의 잘못을 참회하노라고 양심선언을 한 일본인들이 몇 있었다. 그러나 자신의 돈벌이 때문에 일본의 위안부 강제 동원에 앞장섰던 많은 한국인(조선인)들은 단 한 사람도 과거의 잘못을 인정하며 나서지 않고 있다. 일본인의 강제 동원인 경우에도 실제로 앞장섰던 사람은 조선인이었다고 하니 결국 일본의 지시에 따라 자국의 딸들을 인간 이하의 삶으로 몰아넣고도 지금까지 눈감고 침묵하고 있는 이들이 우리 이웃으로 존재한다는 것이다. 이들에겐 위안부 할머니들의 아픔이 단지 할머니들만의 것일 뿐이다.

상처 부위에 반창고만 덮어 놓고 이제 안 아프다고 들춰 보지 않는 것은 잘못된 치료 방법이다. 필요하다면 상처를 째고 흘릴 만큼 피를 흘리고 적절한 약을 바르고 먹고 해야 하며 아프고 괴로워도 상처를 드러내 빨리 소독하고 치료받는 사람이 빨리 건강해질 수 있다.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의 외로운 외침에 대해서도 그것을 나의 상처, 우리의 상처로 생각해 함께 치료하는 과정을 거쳐야 한다. 그래야 할머니들의 한 맺힌 인생을 보듬을 수 있고 상처를 싸맨 우리 사회의 성숙한 발전도 기대할 수 있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