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엔은 2001년을 ‘문명간 대화의 해’로 정한 바 있습니다. 그것은 이념 대결의 시대였던 20세기가 지나고 서로 다른 문명이 공존하는 21세기가 왔음을 시사해주는 것입니다. 그러나 일찍이 사무엘 헌팅턴은 그의 책 <문명의 충돌>을 통해 냉전이 종언된 앞으로의 시대는 전통, 문화, 종교적 차이로 국가들이 충돌할 것이라고 예측했습니다. 그의 예측처럼 문명과 종교의 차이와 다름으로 인종적, 종교적 분쟁이 지구촌 곳곳에서 발생하고 있습니다. 나이지리아에서의 이슬람교도와 기독교인 사이의 유혈충돌, 인도와 파키스탄의 카슈미르 분쟁, 중동지역에서 일어나는 유혈 테러 사건은 종교적 차이와 다름이 정치적 분쟁으로 이어지는 것을 보여줍니다. 물론 대부분의 종교적 분쟁 뒤에는 종교 근본주의자들을 이용하려는 보수 정치인들이 있기도 합니다.

그러나 문명의 충돌이라는 헌팅턴의 예측에도 불구하고 다른 한편에는 종교와 문명간의 다름을 인정하며 인류 전체 사회를 위한 공동의 선을 추구하는 종교간의 대화 Interfaith Dialogue가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서로 다른 종교적 전통과 문화 속에 살아온 이웃 종교인들이 상호이해와 존중을 바탕으로 지구의 미래에 대해 공동의 책임을 지려는 노력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네가 죽어야 내가 산다는 상극 시대에서 네가 살아야 내가 사는 상생의 시대를 인식한 것으로 헌팅턴의 예측을 빗나가게 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분명히 문명의 충돌이 아닌 문명의 공존시대에 살고 있으니 말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종교의 두 얼굴을 보게 됩니다. 상호이해와 존중을 바탕으로 정의와 생명을 추구하는 평화의 얼굴, 그리고 불평등과 억압, 전쟁을 조장하는 폭력의 얼굴을 말입니다. 그런데 이런 종교의 폭력성을 극복하고 생명과 정의를 추구하는 종교가 되려면 종교간의 상호 대화가 필요합니다. 종교간의 대화를 통해 상대방을 볼 뿐만이 아니라 그들을 통해 하나님의 모습을 느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종교간의 대화는 하나님과 이웃, 나를 볼 수 있는 거울이 됩니다.

올해는 동족상잔의 비극인 6·25 전쟁이 발발한지 64년이 되는 해이고 일제식민지배에서 민족이 해방된 지 69년이 되는 해입니다. 한국 역사 속에서 결코 잊지 못할 이 역사적 사건들이 이제는 60 여년 전의 일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아직도 남과 북은 통일을 이루지 못하고 지구상의 유일한 분단국가로 남아 있습니다. 세계 속의 젊은이들과 어깨를 겨루며 학문적 열정을 쏟을 나이에 남과 북의 젊은이들은 서로에게 총부리를 겨누고 서로를 죽이는 훈련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분단의 시대에 종교인들의 역할은 무엇인가?

한국 기독교는 한국사회로부터 신뢰감을 잃어버린 지 오래되었습니다. 가난하고 소외된 사회적 약자를 사랑하신 예수를 따라가는 길에서 벗어나서 지배자의 권력에 들러리 서는 종교로 타락했습니다. 세월호 참사와 일제식민지와 한국전쟁을 하나님의 뜻으로 보는 왜곡된 신앙관은 기독교의 또 하나의 폭력의 모습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정의를 세우며 사회적 약자를 돌보고 섬기는 평화의 종교가 될 때 기독교는 잃어버렸던 신뢰를 다시 회복할 것 입니다. 이웃종교와 성숙한 모습으로 대화하며 공동의 선을 추구하는 일도 신뢰 회복을 위한 또 다른 기회가 될 것입니다.

조너단 색스 Jonathan Sacks는 차이의 존중 Dignity of Difference이란 그의 저서에서 종교의 역할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는 중요한 화두를 이렇게 던집니다. “문명이 살아남는 것은 힘과 부와 세력이 강대했기 때문이 아니라 약자를 외면하지 않은 덕이고 빈자를 배려한 덕이며 힘없는 자를 보살 핀 덕이라는 사실 말이다.”

생명과 평화를 사랑하는 기독교인들은 이웃종교인들과 비폭력과 관용의 정신으로 화해와 공존의 세상을 앞당기는데 함께 일을 해야 합니다. 21세기는 평화의 세기와 대화의 세기가 될 것이라는 달라이 라마의 말은 약자를 위한 사회적 정의를 세우며 남과 북의 화해와 용서를 위한 한반도의 종교인들의 역할이 어느 때 보다 더 절실히 요청되는 시대임을 다시 한 번 알게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