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은 봄의 시작이다. 양지쪽에서는 벌써 초록빛을 띤 새싹들이 생명의 강인함을 들어낸다. 문학적 감성이 뛰어난 사람들은 벌써 꽃을 보고 열매를 본다. 그러니 3월은 당연히 생명의 계절이고 환희의 계절이고 또 그렇게 불러야 마땅할 것이다. 생명! 이 얼마나 아름다운 말인가? 그런데 내게 3월은 생명이 아니라 죽음이 떠오르는 계절이다.

지금은 좀 달라졌지만, 지난날에는 감리교회 목사가 되려면 서리 1년과 준회원 1년, 2년, 3년 과정을 마치고 안수를 받았다. 그런데 여기서 끝이 아니라 목사 안수를 받은 후에도 준회원 4년급에 진급하기 위해서 또 시험과 논문과 자격심사를 통과해야 했다. 그리고 또 다시 동일한 과정을 한 번 더 거쳐 정회원이 되어야 진급과정이 끝이 난다. 지금은 다들 실력도 있고 민주화(?)가 되어 덜 하지만 그때는 진급과정이 공포(?) 그 자체였다. 시험도 잘 치러야 하지만 심사과정에서 조금이라도 삐끗하면 ‘머무를 이’이라는 괴물에 잡혀먹을 수밖에 없었다. 그러니 사투를 벌이듯 기도원이나 여관방에 동병상련 하는 동료들끼리 삼삼오오 모여서 나름 열심히 할 수밖에. 그해 3월에도 연회 年會를 앞두고 필기시험과 논문심사, 그리고 자격심사로 기진맥진하여 며칠 만에 축 처진 모습으로 돌아오니 교인들이 창고공사를 마무리하고 있었다. 그런데 항상 충성하는 관리부장인 A집사님이 보이지 않았다. 내 마음을 읽었는지 집사님 한 분이 말씀하셨다. “오늘 A집사님, 이상했어요. 별일 아닌 것에 화를 내고 집에 가다가 다시 오고, 시멘트 바르는데도 헛손질을 하고. 너무 이상해서 집에 가는데도 아무 말도 못했어요.”

다음 날 새벽 2시경, 문을 꽝꽝 두드리는 소리에 전등을 켰다. “목사님, A집사가 죽었다나 봐요” 뛰다시피 해야 30분 거리에 사는 집사님이 숨을 헐떡이며 전한 소식이다. 급히 목장을 하는 교회청년을 불러 A집사를 태우고 병원으로 달렸다. 운전대를 잡은 청년과 나 사이에 A집사를 앉히고. 빨리 도착해 치료받게 하려는 마음에 차는 비포장도로를 탱크처럼 마구 달렸다. 당시만 해도 응급실 있는 병원이 없어, 염치불구하고 잘 아는 내과의사를 깨울 수밖에. 그런데 침대에 누여진 A집사를 본 의사가 입을 열었습니다. “왜 오셨습니까? 벌써 사망했습니다!” 누구보다도 충성했던, 그리고 철없는 젊은 목사에게 힘이 되어주던 집사님의 허망한 죽음 앞에 망연자실할 수밖에 없었다. 향년 47세. 가장 급한 것은 장례를 치루는 일이었다.

당시만 해도 모든 절차를 가정에서 하던 때였으니 할 일이 많았지만. 우선 큰 교회에 가서 상여 喪輿를 빌리는 일이 급했다. 목사가 직접 가야할 일이라 트럭을 빌려 다녀오는데 상가 분위기가 이상했다. 경험이 일천한 목사의 가슴이 철렁할 수밖에. 조심스레 고인을 모신 방문을 열고 들어가니 눈물범벅이 된 부인과 고등학생 딸이 맞아주었다. 잠깐 예배를 드리고 났는데, 부인이 입을 열었다. “목사님.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할 일이 없지요.” 뭔 뜬금없는 소리인가? 돌연 그 부인이 고인을 덮은 흰 천을 확 벗겨내며 피를 토하듯 내뱉었다. “목사님, 전 지금 목사님이 내 남편에게 손을 얹어 기도하면 살아날 줄 믿습니다. 빨리 기도해주세요. 제발 기도해주세요. 내 남편 살려주세요.” 당황해하며 진정시키려는 내게 못을 박듯 외쳤다. “왜 목사님은 믿지 못하세요!” 그리고는 핏발 선 눈빛으로 막무가내로, 그러다가는 애절하게 살려달라는, 목사님이 기도하면 살아날 줄 믿는다는 남편 잃은 여인 앞에서 나 자신이 혼돈스러웠다. 정말 기도하면 살아나는 것인데 내가 믿음이 없는 것 아닌가? 그렇다면 약속을 믿고 간절히 기도해 볼까? 아니야, 이건 시험이고 유혹이야! 아니야, 저 애절한 여인을 통해서 주님이 주시는 명령일지도 몰라? 정말 일각이여삼추 一刻如三秋…. 어찌어찌 사태를 수습하고 장례를 치렀다.

부부의 금슬이 좋아서 아내에게 냇물에 발 한번 적시게 안했다는 남편, 남편을 하늘같이 여겼던 아내. 지금도 그때를 생각하면 가슴이 먹먹하다. 그리고 자문한다. “정말, 내가 믿음이 없어서 살리지 못한 것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