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은 민주공화제로 함”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앞은 상해임시정부 임시헌장 제1조이고, 뒤는 대한민국헌법 제1조 1항입니다. 새삼스럽게 헌법을 꺼낸 것은 금년은 3·1절 100주년에, 상해임시정부수립 100주년이 되는 해이기 때문입니다. 민주공화국 즉 민주+공화의 합체가 대한민국 헌법의 근간입니다. ‘민주제’가 자유와 인권 등 개인의 기본권에 가치를 둔다면 ‘공화제’는 공공의 이익과 안녕 그리고 질서에 가치를 둡니다. 이 민주공화국 정치사상이 어떻게 대한민국 국체가 되었을까? 헌법학자이자 독립운동가인 조소앙(趙素昻/1887-1958)이 그 중심에 있습니다. 어려서부터 천재 소리를 들은 조소앙은 16살의 나이로 성균관에 입학, 황실유학생으로 일본 메이지대학 법학부에서 공부하게 됩니다. 그는 법학과 함께 동서양의 정치·철학·역사·종교 등에 관한 서적을 폭넓게 탐독하면서 민주주의 등 근대 정치제도를 접하게 됩니다. 조소앙은 1917년 신규식·박은식·신채호 등과 함께 “주권행사의 의무와 권리는 국민에게 있다”는 <대동단결선언 大同團結宣言>문을 작성하고, 이어서 선언문을 기초한 이들과 함께 국내외에서 임시정부 수립에 대한 논의를 시작합니다. 그리고 1919년 2월 1일 독립운동가들과 함께 중국 동북부 길림성에서 <대한독립선언서>를 작성 발표합니다. 이 선언서는 같은 해 동경유학생 중심의 <2ㆍ8 독립선언서>와 뒤이은 <3ㆍ1 독립선언서>에 영향을 끼치게 됩니다. 조소앙은 상하이에서 김구 안창호 이시영 이동녕 등과 함께 임시정부를 수립할 때 주도적으로 참여하여 임시정부 최초의 헌법이라 할 수 있는 ‘임시헌장’을 기초, 한민족 역사상 최초의 민주공화정이 탄생하는 산파 역할을 하게 됩니다.

임시정부가 수립될 당시 장차 어떤 나라를 세울 것인가가 초미의 관심사였습니다. 각기 의견이 분분했고, 백성들 머릿속에는 여전히 신민의식이 자리 잡고 있을 때이니, 왕권 체제가 아닌 근대화된 정치체제를 도입한다는 게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바로 그럴 때 조소앙의 ‘삼균주의 三均主義’ 사상이 큰 역할을 하게 됩니다. 삼균주의란 조소앙이 동서양을 아우르는 철학적 탐구와 고민 끝에 탄생시킨 사상으로 개인, 민족, 국가의 균등과 정치적 균등, 경제적 균등, 교육적 균등의 실현으로 세계일가 世界一家의 이상사회를 건설한다는 내용입니다.

일제의 패망이 예견되던 1941년 무렵, 조소앙은 <대한민국 건국강령>을 작성, 신생 독립국가의 정치적 비전과 철학을 제시합니다. 임시정부는 그가 작성한 건국강령을 해방 후 수립하게 될 정부의 기본 이념으로 채택합니다. 그 이후 여러 차례 역사의 굴곡을 겪으며 헌법이 개정되었음에도 최초의 ‘민주공화국’만큼은 대한민국헌법의 중심을 이루고 있습니다. 그처럼 대한민국 탄생에 크게 기여한 인물이었음에도 조소앙은 6·25 전쟁 때 납북되고, 이후 그와 그의 삼균주의는 잊혀지게 됩니다. 반공을 통치 이념으로 삼은 이승만과 박정희 전두환 정권에서 조소앙의 삼균주의는 공산주의와 유사한 사상으로 치부됐기 때문입니다. (정부는 조소앙이 사망한 지 30년이 지난 1989년에야 그에게 건국훈장 대한민국장을 추서했고, 이듬해 북한도 그에게 조국통일상을 수여했다. 독립운동 자료)

오늘날 대한민국 헌법은 조소앙의 삼균주의와 깊은 관련이 있습니다. 그리고 대한민국의 ‘민주공화국’ 이념은 장로교 정치원리 자유·평등·연합과 일맥상통한다는 측면에서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더 나아가 조소앙의 세계일가 世界一家 사상은 복음의 천부인권 사상과 자유정신 그리고 바울이 시효 만료된 로마제국을 대신할 새로운 사회조직으로 전망한 그리스도 공동체 oikoumene와 일치한다는 측면에서 정말 놀라운 일입니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대한민국은 해방 후 지금까지 ‘민주공화국’을 제대로 구현한 적이 없습니다. 민주+공화 가운데서 ‘민주’는 나름으로 진척을 보았지만, ‘공화’는 여전히 걸음마 단계입니다. 물론 민주주의도 저절로 이뤄진 것은 아닙니다. 야수 같은 독재 권력과의 피 흘리는 투쟁을 통해 쟁취한 것입니다. 나머지 반쪽인 ‘공화’는 박정희 군부정권의 ‘공화당’이 말해주는 것처럼 독재 권력의 전유물이었다는 게 역사의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습니다. ‘이게 나라냐!?’ 지난 촛불혁명의 외침은 잃어버린 반쪽인 ‘공화’를 불러내는 주문이기도 합니다. 이제는 개개인의 자유와 인권 못지않게 공공의 이익 역시 침해되지 않고 함께 잘 사는 세상을 가꿀 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