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히 로마 가톨릭교회는 성경의 권위 위에 교회가 있고, 교회의 권위 위에 교황의 권위가 있다고 말한다. 그래서 교황 무류설(無謬說/ Papal infallibility)이 등장한다. 그렇다면 한국 프로테스탄트 교회에서는 어떨까? 정말 ‘오직 성경’(Sola Scriptura)으로일까?

자정이 가까운 시간에 전화벨이 울렸다. 늦은 시간에 울리는 목사관의 전화벨은 대개가 불길한 소식일 때가 많다. 무슨 일일까? 찰나이지만 별별 생각이 뇌리에 스쳐간다. 착 가라앉은 특유의 목소리다. 실세 장로님이시다. 원로 장로가 된 지 여러 해 지났지만, 자타가 공인하는 실세 장로님의 목소리에 새가슴은 벌써 두 방망이질이다. “목사님, 헌금봉투를 인쇄해 오셨다구요?” “예, 장로님” “목사님 그러시면 안됩니다. 우리 교회에서는 헌금봉투를 인쇄해다 사용한 적이 없습니다!” “장로님, 한 번에 여러 장을 인쇄해서 백봉투를 쓰는 것과 가격차이가 별로 없습니다.” “목사님, 돈이 문제가아니라 우리교회는 인쇄해서 쓴적이 없습니다. 다음부터는 그렇게 하지 마세요” 그리고는 전화가 뚝 끊겼다.

지방 여선교회 계삭회 季朔會가 섬기는 교회에서 모이게 되었다. 교회로서는 크고도 중요한 행사다. 교회로서 가장 중요한 문제는 식사를 준비하는 일이다. 당연히 장로님들을 비롯해 중진들이 모여서 의논할 수밖에! 먼저 내가 의견을 냈다. 바쁜 철이고 준비도 힘드니 인근 식당에서 간단한 메뉴로 접대를 하면 좋겠다고 동의를 구했다. 나는 다들 찬성할 줄 알았다. 그런데 반응은 영 달랐다. “목사님, 우리 교회는 식당에서 접대한 적이 없습니다.” 그 한마디에 결국 여선교회 회원들이 직접 차리기로 했다. 이제 남은 문제는 어떤 음식으로 하느냐이다. 그런데 시골에서는 비록 별로 먹지 않을 음식으로라도 다양한 메뉴로 한 상 가득 채워야 체면이 선다는 악습(?)이 있다. 내가 또 의견을 냈다. “다른 교회 다녀보니 음식은 맛있는 메인 메뉴 하나를 잘 준비하고 다른 것은 간략하게 하도록 하는 게 좋겠습니다.” 나는 남자들은 몰라도 여선교회 회원들은 다들 좋아 할 줄 알았다. 그런데 웬걸 여선교회회장이 앞장 서 반대를 했다. “목사님, 그래도 최면이 있지요. 한상 가득 채워야 합니다. 우리교회는 지금껏 그렇게 대충(?) 차린 적이 없습니다.” 그러자 모두가 이구동성으로 그 말에 찬성하는 발언을 했다. 요지는 간단했다. “우리는 그렇게 해 본적이 없다!” 내가 다시 설득하려 하자, 여러 사람이 혈기까지 부리며 ‘말도 안 되는’ 의견을 낸 철없는(?) 목사를 공박했다. 결국 목숨 걸 일도 아니라고 스스로 위로하며 내가 질 수밖에.

가깝게 지내는 후배가 일백 년이 넘는 역사를 자랑하는 교회에 부임했다. 어느 날 굳게 잠긴 창고를 열어보니 오만가지 물건들로 가득했단다. 강대상을 비롯해서 각가지 교회 용품들이. 부임한지도 얼마 되지 않았기에 임원회의 때 이야기를 꺼냈다. 필요 없는 물건들은 버리고 그 공간을 활용했으면 좋겠다고. 너무 당연한 이야기라고 생각했기에 반대는 예상도 못하고 말을 꺼낸 그 후배는 한 순간 세상모르는 철부지 목사가 됐다. “성물로 봉헌된 물건을 폐기처분 한다니 말이 되느냐. 더 중요한 것은 우리교회는 성물을 버린 적이 없습니다. 목사님이 젊으셔서 아직 모르시는 겁니다.”

주일 점심을 준비하는 일을 안건으로 냈다. 앞으로 교회에서 비용을 지불하지 않고 각 속에서 자율적으로 해결하라. 세상 모임을 위해서는 적어도 수십만 원씩 쓰면서 믿음의 형제자매들을 위해서는 몇 만원도 못쓴다면 말이 안 된다. 모두가 공감하고 찬성하는 분위기에 한 권사님이 손을 들었다. 얼마 전, 이명 移名해 온 장로님 부인이다. “목사님, 그건 말이 되지 않습니다. 제가 전에 다니던 교회는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목사들이 부임해가면 제일 힘든 게 전통(?)을 내세우는 교인들을 설득하는 일이다. 은퇴가 가깝기까지 목양하는 동안 성경을 들고 와서 말씀에 어긋난다고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은 만나보지 못했다. “지금까지” “전에는” “먼저 교회에서는” 이런 어휘들이 귀에 쟁쟁하다. 어디선가 11계명이 ‘들키지 말지니라’요, 4복음서 다음 복음서가 ‘내가복음’이라는 우스갯소리를 본 적이 있다. 이제 그 다음으로 ‘전통복음’ 혹은 ‘전에복음’이라도 등장할 차례인가? 마음이 무겁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