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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을 바라보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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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에서 태어나 서울에서만 살아온 내게는 그런 일이야 그냥 익숙한 일이었지만, 시골 삶의 여유로움에 젖은 사람에겐 결코 ‘아무 일도 아닌 것’은 아니었던 모양이다. 그러나 훗날 그 일을 두고 웃을 수만은 없었던 것은 바로 내 자신의 잠재된 조급증과 불안감의 원인에 대해 생각하면서 부터였다. 길 하나 건너는 일에서부터 조급증에 시달려야하는 서울에서의 삶이란 온통 정서불안의 유혹이 도처에 깔려 있음을 느끼게 되었기 때문이다. 아침 출근길 직장에 늦을까 허둥거리며 일어나는 침상에서부터 그 조급증과 불안감은 시작되어서, 길을 건너고 전철을 타거나 주차장 같은 도로에서 시달려야하고, 직장 역시 ‘빨리 빨리’라는 문화 속에서 조급증을 떨어야 간신히 하루 일과를 마치는 것이 일상일지도 모른다. 아무튼 도시문화라는 것이 어쩌다 한가롭게 혼자만의 여유로운 시간을 즐긴다 해도 바쁘게 돌아가는 도시문화의 입장에서 보면 곧 ‘낭비하는 시간’이거나 아니면 ‘사치스런 시간’일지도 모른다. 얼마 전, 주일 오후예배를 마치고 모처럼 단풍 구경하러 도봉산을 다녀온 적이 있었다. 옛날부터 워낙에 산을 좋아했기에, 오랜만에 산내음을 맡을 수 있게 되었다는 가벼운 흥분감을 안고 길을 떠났지만, 결국 그러한 마음은 길 위에서 산산조각 나고 말았다. 평소에는 자가용으로 한 시간이면 갈 수 있는 거리를 길이 막혀 결국 네 시간 만에 도착했기 때문이다. 산 입구에 도착하니 이미 날은 어두워져 버렸고 내 하루의 꿈은 길 위에서 숨을 넘기고 말았다. 그 때 또 하나 느꼈던 것은 도시의 삶이란 체념하는 법도 배워야 하겠다고 생각했었다. 꽉 막힌 차량들 속의 사람들은 서로에게 관심을 보여서는 안 될 고립된 인간들처럼 보였다. 가뜩이나 길이 막혀 짜증나는 통에 차창을 열고 무슨 즐겁고 인격적인 교감을 나누겠는가? 마치 도시라는 말이 체념과 고립이라는 문화를 조성하고, 조급증과 정서불안에 대해 무감각해지는 법을 터득해야 하는 우리 시대의 상징처럼 느껴졌다. 옛날엔 누렁이라고 불리우는 토종개가 흔했던 때가 있었다. 굳이 누렁이라는 이름이 아니라도 좋다. 지금은 도시화의 물결 속에 누렁이의 모습은 이미 자취를 감추고 말았지만, 문득 그 흔했던 누렁이가 그리워지는 까닭은 갈수록 고갈되어 가는 우리들의 따뜻한 정서 때문이 아닌가 한다. 재 너머 학교에 갈 때면 동구 밖까지 따라와 배웅하기도 했던 누렁이, 집에 돌아오는 길엔 마중 나와 꼬리를 흔들던 누렁이! 그런 얘기는 요즘 도시 아이들에겐 상상 속에서나 가능한 전설이 되어버렸는지도 모른다. 사람들이 복잡하게 오가는 버스 정거장에서 홀로 주인을 기다리는 누렁이의 모습을 상상해 보라. 보나마나, 사람들에게 공포감이나 주는 끈 풀린 부랑캐 취급 받을게 뻔하다. 거기서 누가 과거의 누렁이 추억을 떠올리며 따뜻한 교감의 정서를 느낄 수 있을까? 이제 우리는 옛날, 집에서 키우던 누렁이가 동구밖까지 나와 반겨주었다는 기억조차 희미해졌고, 그리고 사라진 누렁이 대신에 조급증과 불안감, 혹은 콩나물시루 같은 전철 안의 수많은 사람들 속에서 각자 스스로 고립된 표정으로 살아가는 게 미덕이 되었는지도 모르겠다. 인간은 누가 뭐래도 자연의 일부이기에 자연의 정서에 동화하며 살아가는 하나님의 피조물일텐데……. 이제 도시에서는 찾아 볼 수 없는 누렁이의 전설을 생각하는 것은 자연친화적인 정서를 잃어버린 상실감 때문인지도 모른다. 그리운 누렁이, 그것은 현재 잃어버린 우리 본래의 따뜻한 정서의 상징이 아닐까?
이제 또 새해를 맞이하였다.
새해에는 횡단보도 건널 때처럼의 조급함이나 불안감 없이 약간만 좀 느리게 느리게, 천천히 천천히, 시간과 생각이 만나는 상황들을 몸으로 느껴보며 살아볼 수 있기를 소망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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