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루살렘이 바빌론에 함락되었을 때. 땅의 백성들은 이루 말할 수 없는 고통을 겪게 됩니다. 눈물의 예언자 예레미야 역시 “내가 겪은 그 고통, 쓴 쑥과 같은 쓸개즙 같은 고난을 잊을 수가 없구나 잠시도 잊을 수가 없어 울적한 마음 가눌 길이 없구나”(애 3:19-20/표준)라며 심장을 도려내는 아픔을 겪습니다. 하지만 이대로 죽을 수는 없는 일입니다. 억지로라도 희망을 찾아야 했습니다. 그리하여 예레미야는 울적한 마음 진정시키고, “그러나 마음속으로 곰곰이 생각하며 오히려 희망을 가지는 것은, 주의 한결같은 사랑이 다함이 없고 그 긍휼이 끝이 없기 때문”(애 3:21-22/표준) 이라고 희망의 빛을 찾아봅니다. 예레미야는 백성들의 파렴치 가운데서는 도무지 희망을 찾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돌이켜 하나님의 변치 않으시는 사랑을 떠올리면서 비로소 검은 구름 저편에 태양처럼 빛나는 희망이 있음을 깨닫게 됩니다. 인간은 믿을게 못되지만, 영원토록 변치 않으시는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을 여전히 사랑하고 계신다는 사실을 떠올린 것입니다. 이때부터 예레미야의 입에서 나오는 말이 달라집니다. 그는 절망 가운데 있는 백성들을 향해, “지금 고생스럽다고 자꾸만 원망하거나 좌절하지 말고” “입을 땅에 대라”(애 3:29)고 합니다.

입을 땅에 댄다는 게 무슨 뜻이겠습니까? 낮아지라는 것입니다. 자기주장을 삼가고, 말로서 표현할 수 없는 이치를 깨닫기 위해 침묵하라는 것입니다. 낮아짐이야말로 자기 밖에서 임하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지름길입니다. 지금 당하는 고난은 내 편에서 보면 억울하고, 분하지만, 하나님 편에서 보면 나를 낮추시고, 지혜롭게 하시고, 더욱 강하게 훈련시키는 연단의 기회이기도 합니다. “주께서 인생으로 고생하며 근심하게 하심이 본심이 아[니다]”(애 3:33). 하나님께서는 일부러 사람을 괴롭히지 않습니다. 사람들이 슬픈 일을 겪을 때 하나님께서는 더욱 마음 아파하시며 어떻게든 질고로부터 벗어나도록 애쓰십니다. 예수께서 세상에 오신 까닭이 다른데 있지 않습니다.

이 예레미야의 신앙을 꼭 닮은 이가 히브리서 신앙인입니다. 그는 계속되는 박해 가운데서 인내의 한계에 다다른 이들을 격려하면서 희망의 근거로 설파하는 내용이 기상천외입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언약하실 때 아브라함에게 하지 않고 당신 자신에게 맹세하셨다는 것입니다(히 6:13). 그의 논지는 이렇습니다. 만일 하나님께서 언약을 아브라함에게 하셨다면 그 언약은 이미 파기된 거나 마찬가지라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아브라함 역시 변덕스런 인간이었기 때문입니다. 아닌 게 아니라 아브라함은 변덕이 죽 끊는 인간이었습니다. 그의 삶의 행적은 결코 하나님의 언약을 믿고 산 사람으로 보기 어렵습니다. 제 목숨 위태로운 처지에 이르자 아내를 누이로 속이는가 하면(창 12:19), 기다리던 아들을 얻지 못하자 아내의 몸종에게서 아들 이스마엘을 낳기까지 한 사람입니다(창 16:1-4). 하나님께서는 그런 아브라함을 믿고 장래를 언약하신 게 아닙니다. 아브라함이 아닌 당신 자신에게 하신 것입니다. 그리하여 하나님의 언약은 반듯이 성취될 수밖에 없습니다. 히브리서가 ‘믿음의 책’인 것은 그 때문입니다.

그리스도인은 고난 중에 더욱 큰 소망을 바라며 인내해야 합니다. 저 옛날 하나님의 사람들은 역사의 깊은 어둠 가운데서도 하나님을 찬양했습니다. 시대가 흘러 세례요한의 아버지 사가랴 역시 암울한 시대에 어린 요한이 태어나자 “찬송하리로다 주 이스라엘의 하나님이시여…”(눅 1:68/개역)라며 하나님을 찬양했습니다. 하나님을 향한 찬양은 세속의 즐거움과는 다릅니다. 세속 즐거움은 감각적이고 찰나적이지만, 하나님 찬양은 자기 내면에서 지속적으로 기쁨이 솟아나게 합니다. 지금 우리가 사는 세상은 즐거움, 자기만족, 쾌락은 넘치는데 영혼의 기쁨은 고갈되어 있습니다. 사람들은 날마다 자기만족을 얻기 위해 삶의 진액을 고갈시키며 삽니다. 유사 이래 오늘날만큼 물질적으로 풍요로운 시대도 없을 것입니다. 그러함에도 오늘날만큼 정신이 빈곤하고 영혼이 공허한 때도 없을 것입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우울증에 시달립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삶을 비관하고 자살합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세상을 향해 손가락질합니다. 하지만 밤이 깊을수록 아침이 가깝습니다. 삶이 힘들다고 세상 타박만 하지 말고 하나님을 바라봅시다. 새해가 시작되었습니다. 암울한 현실일수록 일부러라도 하나님의 은총의 빛을 바라봅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