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입니다. 초록의 싹들이 대지를 뚫고 솟아나 겨울의 삭막함을 부드럽고 강하게 걷어내고 있습니다. 만물들이 깨어나 어린아이 같은 웃음을 온 세상에 마구 퍼뜨리고 있습니다. 그런데, 정작 우리들의 삶은 웃을 일이 별로 없는 것 같네요. 가족 간에도, 이웃들 사이에서도, 직장에서도 그저 건조한 표정으로 무심하게 하루를 견디며 살아갑니다. 대화의 따스한 온기로 서로의 안부와 희망을 묻는 살가운 풍경들은 멸종이 된듯합니다. 물론 다 그런 건 아니겠지요. 그러나 아니라고 부정하기엔 요즘의 삶이 너무도 메마르고 혹독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밥상에 모여 앉아 이런저런 일상을 물으며 서로의 존재감을 확인했던 고귀한 시간은 사라진 듯합니다. 온 가족이 모여 대화보다는 고개를 숙이고 저마다 스마트폰에 열중하고 있는 풍경을 도대체 뭐라고 해야 할지 난감합니다. 90세 할아버지가 설에 홀로 고독하게 죽어가도 아무도 그 곁을 지켜주지 못하는 이 시대의 쓸쓸함에 대해, 잔소리한다고 아들이 엄마를 죽이는 이 시대의 비정함에 대해 저 들에 피어나는 3월의 여린 새싹들은 뭐라 말을 할까요.

그렇습니다. 삶이 이렇게 궁핍한데 어찌 웃음이 나오겠습니까. 웃으면 행복하다는 걸 모두가 알고 있지만 왜 웃을 수 없는지 사람들은 내심 다 알고 있지요. 그런데 사회를 이 지경으로 만든 위정자들은 조금만 참고 견디면 좋은 날이 올 거라며 지금의 고통을 함께 분담하자고 웃으며 말합니다. 실현 가능성이 없는 핑크빛 희망을 내놓고 사람들에게 공허한 주문을 외게 합니다. 노력하면 이루어지고, 염원하면 실현된다고……. 아이들에게 “아빠, 힘내세요.”라는 노래를 부르게 만드는, 그래서 이 시대의 모든 아버지들이 비정규직의 혹독함을 견디며 실낱보다 더 실낱같은 희망을 가지고 이 불합리한 세상을 노예처럼 살아가게 만드는 지배자의 교활한 이데올로기를 어찌해야할까요.

이제 웃음은 소수자의 특권이 되었습니다. 웃음은 ‘우월함’에서 나온다고 몇몇의 철학자들은 말했지요. 예를 들면, 돈 많은 자가 돈 없는 자의 행색과 몰골을 보며 저게 뭐냐, 라며 웃는 게 우월함의 웃음이라는 거지요. 일종의 ‘비웃음’이지요. 물론 그런 웃음에 대항하는 건강한 웃음도 있습니다. 지배자의 허위와 가식을 조롱하며 그들의 삶을 비판했던 ‘풍자와 해학’이 그것이지요. 문제는, 지금 우리 시대에는 풍자와 해학이 없다는 겁니다. 비판정신이 결여된 풍자는 조롱의 수준을 넘어서지 못합니다. 소셜네트워크를 통해 무분별하게 유포되는 풍자 형태의 글이나 사진 등은 아직도 조롱의 문턱을 넘어서지 못한 것 같습니다. ‘철학의 빈곤’이 ‘빈곤의 철학’을 양산하는 셈이지요.

웃음이 사라진 삶을 갱신하기 위해서는 ‘분노’의 정념을 가져야 합니다. 지배자들은 늘 말합니다. 자기를 긍정하고 끊임없이 스스로를 계발하라고. 대안이 없는 ‘긍정과 희망’의 바이러스를 사람들에게 주입해서 현실에 대한 비판정신을 갖지 못하게 만드는 지배자의 이데올로기를 격파하는 무기는 바로 ‘분노’입니다. 예루살렘에 입성한 예수님이 ‘돈 바꾸는 자들’과 ‘비둘기를 파는 자들’을 보시고 의자를 둘러엎으시며 ‘기도하는 집’을 ‘강도의 굴혈’로 만든 자들을 향해 분노의 정념을 과격하게 표출하신 뜻이 무엇이겠습니까. 가장 중요한 때 분노하지 못한다면 세상은 ‘강도의 굴혈’이 되고 말 것입니다. 분노를 모르는 사람은 정의 正義의 온전함을 실현할 수 없습니다. 정의를 망각한 분노는 폭력이지만, 정의를 바로 세우는 분노는 지극한 사랑입니다.

씨앗은 자기부정 自己否定을 통해 꽃을 피웁니다. 씨앗에서 싹으로, 싹에서 줄기로, 줄기에서 꽃으로, 꽃에서 열매로 무수한 부정을 통해 자신의 삶을 반복적으로 완성해갑니다. 부정은 새로운 출발의 동력입니다. 예수님의 ‘거룩한 분노’는 바로 부정의 힘입니다. 분노함으로 정의를 세워가는 역동적 믿음이 절박한 때입니다. 믿음은 씨앗입니다. 그 씨앗을 싹 틔우는 ‘거룩한 분노’에서 사랑의 열매가 열릴 날을 기대해봅니다.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만일 너희에게 믿음이 겨자씨 한 알 만큼만 있어도 이 산을 명하여 여기서 저기로 옮겨지라 하면 옮겨질 것이요, 또 너희가 못할 것이 없으리라.”는 말씀으로 3월의 첫 문 門을 조용히 열어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