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딸의 결혼식을 치렀습니다. 평소 자녀양육에 대해 자율과 독립을 강조했던 터라 결혼을 결정하고 준비하는 대부분 과정에서 오롯이 두 사람이 알아서 하도록 했습니다. 가끔 힘들어 불평을 해도, 오래 전 하늘나라로 떠나간 엄마 생각이 난다고 투정을 부려도 짐짓 모른 채했습니다. 양가를 배려하면서도 자신들의 의지대로 담담하게 결혼식을 치루는 두 사람을 보면서 고맙기도 했습니다. 또 딸아이를 떠나보내는 것도 서운하기보다는 오히려 시원섭섭한 느낌이 더 크다고 생각했고 결혼식 당일에도 덤덤한 마음으로 잔치를 치렀습니다.

그런데 정작 결혼식이 끝난 다음이 문제였습니다. 결혼식 다음 날부터 점점 의욕이 사라지고, 밥맛이 떨어지고, 자리에서 일어나기가 싫었습니다. 하루 이틀 그렇게 무너지기 시작하면서 몸살을 앓고, 깊은 기침이 멈추질 않고, 급기야는 통풍까지 찾아왔습니다. 그러면서 점점 심리적인 스트레스가 면역력을 떨어뜨리고 숨어있던 병들을 드러나게 하고 있다는 것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딸아이를 보내는 것이 이렇게 큰 심리적 스트레스로 나에게 찾아올 줄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아내와 사별했을 때는 남아있는 아이들 때문에 오히려 더 자신을 강하게 붙들고 일어섰던 것 같은데, 이제 삶의 이유가 되었던 그 아이가 떠나가니까 이렇게 쉽게 무너지는 것이 아닌가 싶었습니다. 아무리 강한 척해도 혈연으로 맺어진 인연은 내 세포 하나하나에 그렇게 깊이 새겨 있었던 모양입니다.

4월과 5월, 독자들께서도 알고 계시듯 유독 슬픈 이별이 많았습니다. 딸의 결혼식만으로도 이렇게 심리적 몸살을 앓는데,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아이들을 가슴에 묻은 세월호 부모들은 그 끔찍한 고통을 어떻게 견딜 수 있었을까요? 4.19, 그리고 5월의 봄과 광주민주화운동에서 자녀들을 가슴에 묻고 살아온 저 수많은 부모들과 가족들, 그 고통의 세월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요? 역사적 진실은 퇴색되거나 왜곡되어 점점 잊혀져가고, 사과는커녕 당당하게 군림하고 있는 책임자나 가해자들을 보면서 이 땅에 남아있는 가족들은 처절한 절망으로 하루하루를 버티고 있습니다. 봄 햇살이 찬란할수록 더 고통스러울 그들을 헤아리면서 하늘의 위로를 간절히 두 손 모아 기도해봅니다.

우리 역사가 이렇게 비상식적이고 야만스러운 것은 다른 누군가가 아니라 바로 나 자신이 깨어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산업화 과정에서 물든 물질만능주의, 과정대신 결과에 우리 영혼을 빼앗기게 만든 무한 경쟁이 타인의 아픔과 절망에 대해 점점 우리 가슴을 무디게 만들고, 결코 잊어서는 안 될 역사적 사건들에 대해서도 나의 일이 아닌 남의 일이 되어 기억의 저편으로 사라지게 만들고 있습니다. 언제라도 그 사건의 희생자가 내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막연한 불안감으로 느끼면서 말입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우리가 잃어버린 가장 소중한 것은 머리의 기억이 아니라 공감의 기억입니다. 아픔은 머리로 기억하는 것이 아니라 가슴으로 기억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어느 틈엔지 우리는 가슴의 기억을 잃어버렸습니다. 머리로만 다가가니 머리가 쉽게 뜨거워지고 또 쉽게 식어버립니다. 쉽게 흥분했다가 금방 잊어버립니다. 서로를 연민과 배려로 보지 못하고 각자의 판단과 해석에 기울어져 바라보기에, 점점 서로를 소외시키게 되었고 어디에서도 공감의 위로를 받을 수 없게 되었습니다.

사랑하는 사람들을 가슴에 묻고 사는 분들은 가슴을 함께 나눌 사람들이 필요합니다. 사실 그런 가슴의 공감과 나눔은 이별의 사건 자체보다도 훨씬 중요한 사건이며 의미가 됩니다. 가슴의 상처가 클수록 공감의 나눔은 더 큰 삶의 의미를 일깨워주고 새로운 희망을 일깨워줍니다. 세월호나 광주가 너무나 큰 아픔과 상처이지만, 그만큼 가족뿐 아니라 우리 모두에게도 큰 기회가 됩니다. 집단지성과 집단감성을 일깨워 낼 그런 기회 말입니다. 함께 손을 잡고 그 기회를 축복으로 바꾸자고 피해자 가족들은 온몸으로 버텨내며 지금 눈물로 호소하고 있습니다. 4월과 5월이 아픔인 것은 내가 그런 따뜻한 가슴을 그들에게, 그리고 내 가장 가까운 가족들에게 내어주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가슴을 열고 손을 내밀어 우리 서로를 붙들어주시지 않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