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손은 헤라클레스처럼 괴력을 지닌 장수입니다. 이스라엘을 괴롭힌 블레셋을 꼼짝 못하게 한 영웅입니다. 그러나 삼손의 사생활은 그리 모범적이지가 않았습니다. 부모 말도 안 듣고, 사람 패서 죽이기를 예사로 했습니다. 제 눈에 예뻐 보이는 여인은 어떻게든 품고 보는 천하의 난봉꾼입니다. 창녀의 꼬임에 빠져 인생을 망친 자입니다. 억센 힘 빼고는 도대체 배울 게 없는 자입니다. 그럼에도 이런 삼손이 주목의 대상이 된 것은, 이스라엘을 위해 하나님께 ‘나실인’으로 바쳐진 인물이기 때문입니다. 그가 거칠게 살기는 했지만, 하나님께서는 그를 통해 이루고자 하는 목적이 있었습니다.

오늘의 관점에서 그는 자신이 지닌 괴력을 세련되게 사용하지는 못했지만, 오히려 그것이 이스라엘의 자존심이기도 했습니다. 이스라엘 공동체는 블레셋의 폭력 앞에서 속수무책이었습니다. 그런 이스라엘에게 삼손의 괴력은 정신적인 열패감을 회복하고도 남았습니다. 그러나 설화자는 삼손을 무작정 옹호하지 않습니다. 삼손 이 지닌 힘은 하나님께서 당신의 목적을 이루기 위해 주신 것임을 여러 차례 밝히는 이유가 그러합니다. 그가 괴력을 쓸 때마다 설화자는 “여호와의 신에게 크게 감동되어”(삿 14:6) 라는 말을 되풀이합니다. 자연인으로서 지닌 괴력이 아니라 필요할 때마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힘이라는 논법입니다. 그러나 삼손이 블레셋의 창녀 드릴라의 꼬임에 빠져 자신이 나실인임을 망각하게 되자 괴력도 함께 사라집니다.

그가 하룻밤 욕정을 즐기다 온 몸이 묶인 상태로 끌려나올 때 블레셋 사람들이 함성을 지릅니다. “…우리의 신이 우리 원수 삼손을 우리 손에 붙였다!”(삿 16:23). 설화자는 삼손 이야기를 신들과의 전쟁으로 묘사하고 있습니다. 블레셋이 섬기는 다곤 신과 이스라엘 공동체가 섬기는 야훼와의 대결에서 이스라엘의 신이 블레셋의 신에게 포박되어서 머리칼이 잘리고, 눈이 뽑히고, 조롱거리가 되어 맷돌을 가는 신세가 된 것입니다. 야훼 하나님이 다곤 신의 제물로 바쳐지기 위해 신전 기둥에 묶여 있는 신세가 된 것이지요. 그럼 야훼께서 패하신 것인가? 삼손은 하나님께 마지막 청원 기도를 하고 있는 힘을 다하여 양손으로 신전 기둥을 밀어냅니다. 순간 신전 건물이 폭삭 주저앉으며 그 자리에 있던 블레셋 사람 모두 압사해서 죽습니다. 설화자는 이렇게 결말짓고 있습니다. “삼손이 죽을 때에 죽인 자가 살았을 때에 죽인 자보다 더욱 많았더라.” 하나님께서 포악한 블레셋을 심판하신 것입니다.

삼손이 지닌 괴력은 그의 머리칼에 있었던 것이 아닙니다. 삼손의 머리칼은 하나님과의 인격적인 관계의 상징에 다름 아닙니다. 따라서 그가 드릴라에게 머리를 깎이고 힘이 사라진 것은 하나님과의 관계를 드릴라와의 관계로 대치함으로 나타난 필연적인 결과입니다. 삼손만이 아닙니다. 우리 역시 하나님과의 관계를 다른 무엇과 대치하는 순간 모든 능력은 사라집니다.

최초의 순교자 스데반은 또 다른 삼손으로 보아도 무방합니다. 그러나 저 옛날 삼손이 아닌 예수 그리스도에 의해 새롭게 태어난 삼손입니다. 삼손이 블레셋의 거대한 신전을 무너뜨렸다면, 스데반은 블레셋보다 더 완고한 유대인들의 허상과 위세를 무너뜨렸습니다. 그들이 떠받들고 있는 권위의 신전을 무너뜨렸습니다. 그가 대제사장을 비롯 유대 지도자들을 향해 “목이 곧고 마음과 귀에 할례를 받지 못한 사람들”(행 7:51) 이라고 힐난하자 저들은 스데반을 향해 이를 갑니다. 그리고 괴성을 지르며 스데반을 향해 돌을 던집니다. 스데반은 죽어가면서도 성령에 충만하여 하나님의 영광을 봅니다.

우리 각 사람은 물론 교회 역시 하나님께서 주신 능력이 있습니다. 세상을 구원할 할 수도 있고, 인생을 변화시킬 수도 있는 능력입니다. 그러나 이 능력은 언제든지 소멸될 수 있습니다. 하나님과의 인격적인 관계를 세상의 다른 무엇으로 대치했을 때, 저 옛날 삼손처럼 하나님께서 주신 능력은 소멸됩니다. 오늘날 한국의 교회를 볼 때마다 스데반이 아닌 삼손이 생각나는 것은 하나님과의 인격적인 관계를 교회 규모와 교권과 재물로 대치시키고 있기 때문입니다. 겉모습은 괴력을 지닐 정도로 거대함에도 이방 신전 기둥에 묶여 있는 삼손과 다를 바 없는 오늘의 교회입니다. 그럼에도 깨닫지 못한다면 삼손처럼 하나님께 마지막 청원 기도를 드려야 할지도 모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