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평등한 사회에서 그리스도인은 평등의 실현을 위해 어떻게 해야 할까? 저항할 것인가? 아니면 순응할 것인가? 저 옛날 로마시대로 거슬러 올라가 봅니다. 로마는 노예 노동력에 의해 유지되는 제국이었습니다. 제국 안에는 무려 1천만 명에 이르는 노예가 있었다는 기록이 있을 정도입니다. 이처럼 노예제도에 의해 유지되는 세계에서 교회는 불평등을 용인하지 않는 복음으로 대응해야 했습니다. 물론 ‘노예제도’에 적극 저항했다는 기록은 남아 있지 않습니다. 하지만 나름으로 교회가 취한 입장은 있습니다. 당시 교회는 종의 신분으로 그리스도인이 된 이들에게 그 주인에게 진심으로 ‘순종’하라고 했습니다(벧전 2:18-25). 물론 교회가 요청한 순종은 죄 없으신 분이 억울한 죽음을 당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랑에 터하고 있습니다. 오늘의 시각으로 보면 천진난만한 방식이겠으나, 그래도 교회는 비정한 제도 하에서 그리스도인 개개인이 인격적으로 대응함으로서 불의한 제도를 변혁시킬 수 있다고 믿었던 것입니다. 복음은 비도덕적인 사회에서 도덕적인 힘을 지향합니다.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랑은 바위처럼 굳어버린 질서를 종당에는 녹여버릴 것을 믿습니다.

물론 현실은 녹녹치 않습니다. 거슬러 올라가 예언자 스바냐 시대 예루살렘의 지도층은 정의를 요구하는 야훼 하나님과의 관계를 공개적으로 파기하는 대신 성소 제사를 풍부하게 함으로서 야훼 하나님의 요구를 변질시켰습니다. 껍데기는 야훼 종교인데 속은 바알종교로 만든 것이지요. 경제민주화를 말하면서 실제로는 경제민주화로 인해 실현될 부의 균형을 무력화시키는 집단과 꼭 같은 일을 한 것입니다. 한국교회도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정의에 대한 요구를 거부하는 대신, 그 자리를 ‘성장’이라는 수사로 분칠하고 있습니다. 교회가 크고 부유함으로서 하나님을 영화롭게 한다는 것입니다. 더욱 괴이한 것은 한국교회는 ‘노동’에 대해서는 극도로 야박하면서도 ‘자본’에 대해서는 한없이 관대하다는 것입니다.

지금 한국 사회는 노동의 가치를 ‘생산성’이라는 수치로 환산합니다. 생산성이 높은 사람은 많이 받고, 생산성이 낮은 사람은 적게 받는 걸 당연하게 여깁니다. 그러나 현실은 이율배반적입니다. 생산성이 노동의 가치를 결정한다면 노동의 질이나 강도에 차이가 없는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임금이 다르지 않아야 할 터인데 실제로는 그러지 않습니다. 오늘날 생산성이라는 함의는 일제시대 수탈을 목적으로 한 미곡증산운동과 다를 바 없는 것이지요. 지난해 통계청 자료를 분석한 결과를 보면 정규직 대 비정규직이 무려 52.2% 대 47.8%나 됩니다. 게다가 최저소득층 조세부담률과 최고위소득층 조세부담률의 차이가 16.7% 대 18.3%밖에 되지 않습니다. 1%의 부자들을 위해 99%의 가난한 이들이 세금을 더 내는 형국입니다. 계층 간의 소득 불균형 역시 심화되고 있습니다. 전체 경기가 둔화되는 가운데서도 가난한 이들의 소득은 줄어드는 반면 부자들의 소득은 계속 늘어나고 있습니다. 우리 사회는 지금 불균형과 불평등 사회가 되어 있습니다. 불의한 제도는 시대를 초월하여 갖가지 논리로 자신을 위장합니다. 이 고리를 끊지 않으면 노동자의 삶은 피폐하고, 공동체의 생존 기반은 붕괴됩니다. 결과적으로 산업도 붕괴됩니다.

복음이 지향하는 하나님 나라는 그가 얼마만큼 노동했느냐, 혹은 얼마만큼 생산했느냐가 아니라, 그에게 얼마만큼 필요한가가 더 중요합니다. 노동의 가치는 생존의 기본 권리를 존중하는 데서 출발해야 합니다. 그래서 처음 온 사람이나 나중 온 사람이나 동일 임금을 지불한 예수님의 포도원 농부 이야기는 정의 실현의 기초가 됩니다(마 20:1-16). 예언자 스바냐의 힐난을 들어봅시다. “여호와의 규례를 지키는 세상의 모든 겸손한 자들아 너희는 여호와를 찾으며 공의와 겸손을 구하라…”(습 2:3): “여호와의 규례를 지키는 겸손한 자들”이라면 왜 공의와 겸손을 구하라고 하겠습니까? 겉은 겸손한 것 같아 보이는데 속은 부패했기 때문입니다. 더 이상 변화를 기대할 수 없을 정도로 파렴치한 자들이기에 하는 말입니다. 그리하여 스바냐는 달리 방법이 없다 싶어 하나님의 심판을 통한 희망을 선포합니다. 세상을 걱정하는 이들이 암울하다고 한탄만 한다면 세상은 달라지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불평등한 제도 가운데서 순종이라는 인격적인 대응을 요청하신 것은, 술수와 계략을 쓰지 말고 신실하게 응답하라는 것입니다. 부자들과 정치권에 기대하는 바도 그러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지금도 불평등한 시대를 사는 그리스도인들에게 복음의 능력을 믿고 행동하기를 바라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