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 이스라엘 이야기입니다(삿 6:1- 9:57). 사사 드보라 이후 이스라엘은 사십년 동안 비교적 평온하게 지냈습니다. 그러자 백성들은 또 다시 “여호와의 목전에 악을 행함으로” 칠년 동안을 미디안 사람들에 의해 힘든 세월을 보내야 했습니다. 이 때 하나님께서 세운 장수가 기드온입니다. 기드온은 소심하고 의심이 많은 사람입니다. 그런 사람이 우여곡절 끝에 장수가 되어 싸움터로 나가게 됩니다. 소심한 그는 어떻게든 많은 장정을 데리고 가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장정의 수를 줄이라고 합니다. 전쟁을 승리로 이끄는 것은 병사의 수가 아니라 하나님임을 깨닫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기드온은 몇 차례 장정 수를 줄이고 줄여 마지막으로 남을 장정들을 고르기 위해 물가로 데려갑니다. 그는 거기서 무릎을 꿇고 개처럼 물을 핥아 마시는 자를 제외하고 손으로 떠서 마시는 장정 300명만을 선택합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이번에는 무장을 하지 말고, 나팔과 횃불만 들고 적진을 향하라고 합니다. 믿음으로 나아가라는 것이지요. 그리하여 기드온은 칠흑처럼 어두운 밤에 저마다 횃불을 감추고 적진 가까이 다가갑니다. 그리고 일시에 나팔소리와 함께 횃불을 들어올리며 “여호와의 칼이다! 기드온의 칼이다!”라고 함성을 지릅니다. 마침 잠을 청하고 있던 미디안 병사들은 혼비백산하여 자기들끼리 서로 찌르며 국경 너머로 도망칩니다. 기드온의 통쾌한 승리입니다.

백성들은 기뻤습니다. 기드온은 영웅이 됐습니다. 승리에 감격한 백성들은 한 목소리로 기드온을 향해 “장군께서 우리를 미디안의 손에서 구원하셨으니 당신과 당신의 아들과 당신의 손자가 우리를 다스리소서”(삿 8:22)라고 합니다. 아첨도 이만저만이 아닙니다. 백성들의 이 같은 요구는 하나님의 뜻에 어긋나는 것이었습니다. 당시 부족동맹의 정신은 권력의 세습을 원천적으로 금했습니다. 다행히 기드온은 겸손했습니다. 백성들의 요구를 받아들이지 않은 것입니다. 하지만 그는 무슨 의도에서인지 전장에서 취한 전리품으로 제사장이 제사드릴 때 걸치는 에봇을 만들어 자신의 고향 오브라성에 모셔두게 했는데, 신명기 역사가는 백성들은 그것을 “음란하게” 섬겼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기드온이 나름 권력의 세습을 사양하기는 했지만, 대신 자신을 신격화하는 일을 했던 것입니다. 게다가 기드온은 너무나 많은 것을 누렸습니다. 아내가 많아서 아들들이 무려 칠십 명이나 됐습니다. 기드온이 죽은 후 첩의 아들인 아비멜렉은 스스로 왕 행세를 하며 이복형제들을 모두 살육하는 참극을 벌였습니다. 기드온은 당대에 자식들에게 권력을 세습하지 않았음에도, 자식들에게 과분한 영화를 누리게 한 결과, 자신이 죽은 뒤에 자식들 간의 참극을 초래케 한 것입니다.

시대가 흘러 사도행전에 예루살렘성전의 최고 권력자들이 베드로와 요한을 심문하는 장면이 있습니다(행 4:5-7, 10). “대제사장 안나스와 가야바와 요한과 알렉산더와 및 대제사장의 문중이 다 모여 사도들을 가운데 세우고 묻되 너희가 무슨 권세와 뉘 이름으로 이 일을 행하였느냐”고 다그칩니다. 누가 너희에게 백성들을 가르치도록 했느냐는 힐문입니다. 저들의 권세는 세습되고 있었습니다. 백성을 가르치는 일은 당연히 자기들만이 독점적하고 있었습니다. 베드로의 대답입니다. “너희가 십자가에 못 박고 하나님이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이 사람이 건강하게 되어 너희 앞에 섰느니라.” 저들은 경악했습니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세습된 권세는 몰락하고, 하나님에게서 온 권세가 드러나는 장면이기도 합니다.

성경이 증언하는 명백한 사실이 있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권력, 영화, 부 등의 세습은 모두 죄악입니다. 그것들은 모두 하나님의 것이고, 공동체의 것입니다. 결코 특정인이나 특정집단이 대물림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개혁교회 신앙의 핵심인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삶’은 바로 자신이 성취한 모든 것들을 자기 것으로 삼지 않고 하나님의 것으로 여기는 삶입니다. 비록 하나님의 은혜로 얻은 것일지라도, 그것들을 세습하는 것은 죄악입니다. 그런데 지금 한국의 내로라하는 목사들은 교회까지 세습하면서 죄라는 생각을 하지 않습니다. 그것도 ‘하나님께 영광을 드립시다.’라고 되뇌이면서 그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