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구약성경 민수기에서 마음 아픈 이야기를 접하게 됩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광야 40년 유랑 생활을 마치고 가나안 땅을 눈앞에 둔 때입니다. 마침 마실 물이 없자 백성들은 “너희가 어찌하여 여호와의 총회를 애굽에서 나오게 하여 이 광야로 인도하여 올려서 우리와 우리 짐승으로 다 여기서 죽게 하였느냐”(민 20:4)며 모세와 아론을 싸잡아 비난합니다. 그러자 화가 머리끝까지 오른 모세는 들고 있던 지팡이로 바위를 내려칩니다. 그때 바위에서 하나님께서 말씀하신대로 생수가 솟아올라 목마른 백성들이 물을 마시게 되기는 했지만, 문제는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진노하신 것입니다. 공인으로서, 백성들 앞에서 당신의 거룩함을 드러내지 않고 모욕했다는 이유로(민 20:12), 이스라엘 총회에 대한 지도권, 즉 공적인 직분을 박탈하고,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하도록 벌을 내리신 것입니다. 참으로 가혹한 처사가 아닐 수 없습니다.

무엇이 그토록 모세와 아론에게 치명적인 결과를 가져온 것일까? 모세의 말 속에 그 이유가 담겨 있습니다. “우리가 너희를 위하여 이 반석에서 물을 내랴!” 격분한 모세는 백성들 앞에서 하나님의 능력이 아닌 자기 능력을 과시했던 것입니다. 백성들은 본시 즉물적입니다. 배부르면 좋다하고, 배고프면 징징대는 게 백성들의 체질입니다. 문제는 하나님께서 이런 백성을 친히 당신의 백성으로 섬기신다는 사실입니다. 모세는 하나님을 대리해서 이런 백성을 섬기도록 위임받은 사람입니다. 그리하여 비난하는 저들에게 하나님의 영광을 보여 줌으로써, 어떤 처지에서도 하나님과의 관계가 어긋나지 않도록 해야 할 직무가 있었습니다. 그런데도 모세는 자기도 모르는 사이 격정에 사로잡혀서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는 일을 했던 것입니다. 공직자들의 말과 처신이 얼마나 신중해야 하는 가를 보여주는 장면입니다.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어린아이를 앞에 두고 하신 말씀 역시 다르지 않습니다. 예수께서는 제자들에게 어린아이처럼 순결 하라는 것과, 어린아이 같은 이들을 실족케 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너희가 돌이켜 어린아이들과 같이 되지 아니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마 18:3). 어린아이는 세계를 경이로움과 두려움으로 봅니다. 그들의 경이로움은 현실 세계를 뛰어넘어 초월적인 세계로 나아갑니다. 상상력이 풍부하기 때문입니다. 이런 어린아이를 대상으로 한 교육은 바로 상상력의 세계에 날개를 달아주고, 불을 붙여주는 것입니다. 반면에 어른들의 세계는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굳어 있습니다. 개인만이 아닙니다. 집단적으로 사고의 경직이 일어나기도 합니다. 이건 더 무서운 결과를 가져옵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사람들이 서로를 사랑하기보다 오직 물질을 생산하는 데 열심인 것을 두고 ‘정신경화증 spiritual sclerosis’이라고 했습니다. 개인이든 집단이든 정신경화증에 걸리면 몰락을 재촉합니다.

지금 대한민국은 이명박-박근혜로 이어지면서 권력과 수구언론, 재벌, 학계, 일부 군부 등 기득권층이 온통 정신경화증에 걸렸습니다. 박근혜의 국정농단과 헌법유린은 정신경화증의 필연적인 결과입니다. 박근혜가 용서받을 수 없는 것은, 헌법수호를 위임받은 자가 오히려 헌법을 유린했다는 데 있지만, 신앙의 측변에서 보면 거듭된 거짓말로 나라의 주권자와 소외계층인 소자들을 실족케 했다는 데 있습니다. 여기에 예수님의 두 번째 말씀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누구든지 나를 믿는 이 소자 중 하나를 실족케 하면 차라리 연자 맷돌을 그 목에 달고 깊은 바다에 빠지는 것이 나으니라.”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진노하셨던 것 이상으로, 예수께서는 아예 바다에 빠져 죽는 게 낫다고까지 하십니다. 누구를 “실족케 한다”는 것은 단순히 실망시킨다는 게 아닙니다. 그들에게서 하나님 나라에 대한 믿음을 상실케 한다는 것입니다. 그들이 내일의 희망을 갖지 못하게 한다는 것입니다. 생각해 보면 이보다 더 큰 죄도 없습니다.

요즘 종교개혁 500주년의 의미를 되새긴다며 교단마다 각종 행사준비로 분주합니다. 하지만 교회가 정말 잊지 말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섬기는 백성을 실족케 하면 비록 모세와 같은 인물일지라도 결코 용서받지 못한다는 사실입니다. 교회는 가난한 이들, 의지할 데 없는 이들, 억울한 이들, 연약한 이들, 사회적 소수자들을 절망하지 않게 해야 합니다. 교회가 살아있다는 증거는 하나님께서 섬기는 이들이 누구인지를 잊지 않을 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