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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과 삶의 뜨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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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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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를 그렇게 만든 것은 그들이 사는 땅도 아니고, 그 땅의 백성도 아닙니다. 그럼 무엇이 그렇게 만든 것인가? 바로 야훼 하나님이십니다. 그 땅과 그 땅의 백성은 역사의 수레바퀴에 치여 증발되었거나, 이민족의 손아귀에 들어갔음에도, 하나님께서는 여전히 살아계셔서 그에게 말씀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예레미야는 그 말씀을 붙들고 산 사람입니다. 아니, 그 말씀이 몸에 ‘기억되어서’ 산 사람입니다. 그의 삶이 고단했던 연유이기도 합니다. 물론 예레미야는 연약한 인간이었습니다. 회개할 줄 모르는 조국의 현실로 인해 지치고, 분노하고, 좌절하고, 도피하고, 죽으려고까지 했습니다. 그럼에도 하던 일을 멈출 수 없었던 것은, 백성들의 슬픔과 탄식을 기억하시는 하나님께서 그에게 계속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그가 받은 하나님의 말씀은 비장하면서도 희망으로 가득합니다. “기뻐하며” “전파하며” “찬양하며” “여호와여 주의 백성 이스라엘의 남은 자를 구원하소서”(렘 31:7) 라고 거듭거듭 외치고 있습니다. 그의 가슴 속에 든 “남은 자”는 어떤 사람들일까? 역시 그의 호소에서 그들이 누구인지 가늠해볼 수 있습니다. “내가 그들을 북녘 땅에서 데리고 오겠으며, 땅의 맨 끝에서 모아 오겠다. 그들 가운데는 눈 먼 사람과 다리를 저는 사람도 있고, 임신한 여인과 해산한 여인도 있을 것이다. 그들이 큰 무리를 이루어 이곳으로 돌아올 것이다”(렘 31:8). “북녘 땅”은 지금은 앗수르의 손아귀에 들어간 이스라엘 땅입니다. 그곳에 여전히 남은 백성들이 고통스럽게 사는 땅입니다. “땅의 맨 끝”은 지리적인 땅 끝이 아닌 역사의 수레바퀴에 치여 삶의 밑바닥으로 밀려난 사람들이 사는 땅입니다. 그곳에는 눈먼 사람, 다리 저는 사람, 임신한 여인, 해산한 여인 등 스스로 움직일 수 없는 약자들이 대부분입니다. 누군가 그들을 부추겨 데려오지 않으면 안 되는 사람들입니다. 모두가 하나님께서 특별히 기억하는 백성들입니다. 하나님께서 백성들의 고통과 슬픔을 기억하시는 이유가 무엇이겠습니까? 치유하기 위해서입니다. 회복시키기 위해서입니다. 개개인의 고통은 들어줌으로써 치유되지만, 공동체의 상처는 기억됨으로써 치유됩니다. 공동체가 역사의 상처를 기억하는 것이 그렇게 중요합니다. 기억하지 않는 상처는 세월이 흘러도 치유되지 않습니다. 어떤 계기를 만나면 상처는 아픔으로 되살아납니다. 그런 의미에서 역사 논쟁은 기억과의 싸움이기도 합니다. 사도 바울은 “철학과 헛된 속임수로 너희를 노략할까 주의하라”(골 2:8)고 말한 바 있습니다. 철학과 헛된 속임수는 갖가지 고상한 논리로 사람들을 현혹시키는 영지주의를 비롯한 적그리스도의 궤변을 두고 하는 말입니다. 예레미야의 관점에서 보면 아픔에 대한 기억이 없는 허언들입니다. 고통과 슬픔을 기억하지 않는 싸구려 희망의 말이지요. 가난한 이들, 억울한 이들의 아픔을 기억하지 않는 자들이 ‘여러분을 사랑합니다’ 라거나, ‘여러분도 할 수 있습니다’라고 외쳐봐야 공허한 소리입니다. 바울은 그런 싸구려 주장을 ‘초등학문’으로 표현한 것입니다. 물론 수준 낮은 말을 지칭해서 한 말이 아닙니다. 아무리 수준 높은 말일지라도 고통을 기억하지 않는 말들은 ‘초등학문’ 수준이라는 데는 변함이 없습니다.
기도는 하나님과 말로서 하는 교류입니다. 하나님께서 인간을 향해 말을 걸어오신 사건이 성육신입니다. 하나님께서 인간의 슬픔을 친히 당신의 몸에 기억하신 사건이 성육신입니다. 우리를 죽음의 권세로부터 구원하실 분은 그렇게 인간의 고통을 당신의 몸에 기억함으로써 성육신하신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성육신이 없는 인간들의 말은 공허합니다. 슬픔을 기억하지 않는 위로의 말은 기만입니다. 그리스도인의 말이 정말 살아 있는 말이 되려면, 이 땅 백성의 슬픔과 고통이 기억된 몸에서 나오는 말이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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