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하 盛夏의 계절입니다. 어딜 가나 무성한 나무들의 짙푸른 그늘이 몸과 마음 지친 이들에게 쉼터가 되어 줍니다. 재충전하기에 딱 좋은 계절입니다. 교회마다 각종 수련회로 분주한 때이기도 합니다. 이럴 때 그리스도인이라면 말씀의 숲에 마음을 맡겨보는 것도 유익하리라 생각합니다.

예수님의 말씀 가운데 겨자씨 이야기가 있습니다. 제자들이 “우리에게 믿음을 더하여 주십시오.” 라고 요청할 때 하신 말씀입니다. “너희에게 겨자씨 한 알만한 믿음이라도 있으면 이 뽕나무더러 ‘뽑혀서 바다에 심기어라’ 하면 그대로 될 것이다.”(눅 17:5-6). 예수께서는 이 말씀에 이어서 주인과 종의 이야기를 들려주십니다. ‘겨자씨 한 알의 믿음’과 ‘종과 주인의 관계’에는 어떤 연관성이 있다는 얘깁니다. 예수께서 왜 ‘좁쌀 크기만큼 작은 믿음’이라고 하지 않고, ‘겨자씨 한 알만한 믿음’이라고 했는지 생각이 미칩니다. 사람들은 으레 겨자씨 하면 작다는 것을 먼저 생각합니다. 그러나 겨자씨 이야기는 작다는 데 있기보다 겉모양은 작지만 생명을 품고 있다는 데 있을 것입니다. 한 우주가 그 작은 씨 안에 들어 있기에 하는 말입니다. 사실 정자와 난자는 겨자씨보다 더 작습니다. 그런데도 정자와 난자가 만나면 정말 놀라운 일이 일어납니다.

제자들은 “우리에게 믿음을 더하여 주십시오.” 라고 ‘큰 믿음’, ‘더 많은 믿음’을 원했습니다. 아무리 크고 많아도 생명이 없다면 쇄락의 길만이 있습니다. 예수께서는 큰 것을 위해 사신 분이 아닙니다. 생명을 품고 사신 분입니다. 예수께서 일으킨 기적 대부분이 생명의 기적입니다. 지금도 예수께서는 쉬지 않고 생명의 기적을 일으키십니다. 당신의 육신은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셨지만, 당신이 뿌린 생명의 씨앗은 지금도 발아해서 기적을 일으키고 있습니다. 예수께서 탄생하실 때 헤롯대왕은 솔로몬이 지은 성전보다 두 배나 더 크고 화려한 성전을 지을 정도로 대단한 인물입니다. 그렇다면 역사는 헤롯을 어떻게 보는가. 한 시대를 호령한 것은 맞지만 생명을 죽이는 일만을 했습니다. 그런 헤롯에 비하면 예수께서는 겨자씨 한 알보다 더 작은 자입니다.

종의 이야기는 그리스도인들의 다른 사람에 대한 태도, 크게는 사회적 태도라고 볼 수 있습니다. 종들은 들에 나가 하루 종일 힘든 일을 하고 집에 돌아오면 나는 피곤하니 좀 쉬어야겠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 집에 돌아와서도 종에게는 여전히 종으로서의 할 일이 있습니다. 종은 주인 앞에서 어떤 경우에도 자기 권리를 주장할 수 없습니다. 그리스도인도 마찬가지입니다. 내가 아무리 큰일을 했다 해도 그에 따른 보상을 요구할 수 없습니다. 다만 하나님께서 베푸시는 은혜에 감사할 따름입니다. 종에도 등급이 있다면 가장 좋은 등급은 어쩌면 주인이 쓰기에 편안한 종일 것입니다. 주인이 뭔가를 시킬 때마다 말대꾸 하고, 토를 달고, 핑계를 대고, 거짓말을 하고, 주인을 가르치려 하고. 그러면 주인은 그런 종은 내다 팔거나 버리고 싶을 것입니다.

봉사도 그렇습니다. 봉사는 으레 무엇인가 좋은 일을 ‘하는’ 행위로 많은 이들이 생각합니다. 자신의 행위에 봉사의 가치를 두는 것입니다. 하지만 진정한 봉사는 하나님께서 나를 쓰시기에 불편함이 없도록 내가 작아지는데 있지 않을까요? 그게 만일 이웃을 향한 봉사라면 내가 무슨 큰일을 ‘하는’ 것보다 다른 사람이 나를 대하기에 불편하지 않도록 내가 작아지는 게 가장 큰 봉사일 것입니다. 물론 말처럼 쉽지 않은 일이기는 합니다. 교회의 이웃을 향한 봉사도 마찬가지입니다. 이웃을 섬기려는 목적보다 자기 교회를 확장하고 자랑할 목적으로 하는 봉사가 더 많습니다. 봉사가 아니라 고객을 끌어들이기 위한 상행위와 다를 바 없지요. 교회 직분자들이 전도를 목적으로 길거리에서 어깨띠 매고 하는 봉사처럼 시장에서도 그렇게 한다면 사람들은 그리스도인들을 새롭게 볼 것입니다. 우리 주변에는 세상을 깜짝 놀라게 할 큰 기적을 일으킬 믿음을 구하는 이들이 많습니다. 그렇게 해서 큰일들을 하기는 하는데 썩은 냄새가 진동합니다. 예수께서 겨자씨 이야기와 함께 주인과 종의 이야기를 하신 것은 이 때문입니다. 그리스도인은 스스로 낮아져야 합니다. 아니, 더 낮아져야 합니다. 내가 낮아질수록 기쁨은 커지고 믿음도 커집니다. 겨자씨처럼 작은 믿음이지만 생명을 품은 믿음이라야 기적을 일으킵니다. 큰 믿음 구하지 맙시다. 이 무더운 여름 가장 의미 있는 수련은 작지만 생명이 있는 믿음을 구하는 일이 아닐까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