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언자 스가랴의 바빌론 포로에서 조국 예루살렘으로 돌아온 백성들을 향한 미래의 꿈 이야기입니다. “그 날에 생수가 예루살렘에서 솟아나서 절반은 동해로, 절반은 서해로 흐를 것이라 여름에도 겨울에도 그러하리라”(슥 14:8) 예루살렘에서 생수가 솟는다면 그것은 자기들끼리 오붓하게 마시는 물이어야 합니다. 그런데 스가랴는 동쪽으로 흘러 이집트 사람들이 마시고, 서쪽으로 흘러 바빌론 사람들이 마실 수 있는 물을 말합니다. 폐쇄적인 민족주의를 뛰어넘는 하나님의 인류 구원을 향한 의지가 담긴 꿈입니다. 옹졸하기 이를 데 없는 유대인들로서는 좀처럼 받아들일 수 없는 ‘헛소리’지요. 바로 이런 이유로 스가랴는 ‘이스라엘의 승리’를 말하지 않고, ‘하나님의 승리’를 말합니다.

그리고 예루살렘에서 솟은 물이 동으로 혹은 서로 ‘흐른다’는 것은 예루살렘이 변화의 중심축, 변혁의 중심축이 된다는 것입니다. 새로운 가치와 새로운 질서의 발원지가 된다는 것이요, 변두리에서 부스러기나 얻어먹는 이들이 아닌 세상을 변화시키는 중심이 된다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우뚝 솟은 예루살렘을 중심으로 ‘온 천지가 아라바 Arabah’ 곧 협곡으로 끊기고, 절벽으로 가로막힌 땅이 평지가 되어 사시사철 물이 흐르는 땅, 풍요로운 대초원의 이상세계를 그리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 스가랴의 예언에서 세계 만민이 서로의 벽을 허물고 평화롭게 살아가는 미래 세계의 꿈과 희망을 봅니다.

예수께서도 스가랴의 꿈과 다를 바 없는 ‘하나님 나라’를 꿈꾸신 분입니다. 특별히 당신의 죽음을 앞둔 제자들을 위한 기도에 그 뜻이 잘 나타나 있습니다. “내가 비옵는 것은 이 사람들(제자들)만을 위함도 아니요 또 저희 말을 인하여 나를 믿는 사람들도 위함이니 아버지께서 내 안에, 내가 아버지 안에 있는 것같이 저희도 다 하나가 되어 우리 안에 있게 하사 세상으로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을 믿게 하옵소서”(요 18:20-21). 제자들은 끈끈한 동지애로 뭉쳐서 자기들끼리 오붓한 세상을 만들고 싶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생각은 다릅니다. “이 사람들(제자들)” 곧 당신과 운명을 함께한 동지들만을 위한다는 생각은 아예 찾아볼 수 없습니다. “저희 말을 인하여 나를 믿는 사람들” 곧 당신의 꿈과 이상을 공유하는 세계 만민을 위한 생각으로 가득했던 것입니다. 그리하여 예수께서는 제자들에게 하나가 되라고 말씀하시지 않고, 아버지 하나님께서 제자들을 하나가 되게 해달라고 기도하신 것입니다. ‘하나 됨’이 그만큼 어려운 일이기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이 예수님의 속뜻을 크게 확장한 사람이 바울입니다. 바울은 복음의 사회조직인 교회를 ‘몸’으로 풀이했습니다. 몸은 그 자체로서 하나의 우주입니다. 개개인은 거대한 우주의 몸 안에 사는 작은 우주들입니다. 문제는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라는 말을 수식어가 아닌 목적어로 이해해야 한다는 점입니다. 왜냐하면 “그리스도 안에서”라는 말은 먼저 자기복종을 요구하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이뤄진 몸인 공동체는 개체간에 사랑과 우정과 신뢰를 미덕으로 삼습니다. 내 가족 내 동료만이 아닌 모든 인간과 생명체에 대해 깊은 연민과 존엄성을 지닙니다. 남을 살리기 위해 나를 희생하는 영적인 능력을 지향합니다. 그래서 하는 말입니다. “우리가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유자나 다 한 성령으로 세례를 받아 한 몸이 되었고 또 한 성령을 마시게 되었느니라”(고전 12:13). 바울은 ‘성령을 받았다’고 하지 않고, “성령을 마시게 되었다”고 아주 독특한 표현을 하고 있습니다. 에스겔이 변화의 징표를 물로 은유한 것처럼, 바울 역시 성령을 물로 은유한 것입니다. 물이란 불과는 달리 위에서 아래로 흐릅니다. 물은 다투지 않고, 차별하지 않고, 제 고집을 부리지 않습니다. 그러면서도 물은 만물을 풍족하게 하고, 만물을 소생시키고, 만물을 정화시키고, 만물을 치유합니다. 성령을 마신 사람들은 물처럼 변해야 합니다. 그리스도인은 그리스도인 ‘끼리’ 모이는 소위 ‘집단’ ‘무리’ ‘떼’가 아닙니다. ‘끼리’만 모이는 데서 분열하고, 갈등하고, 이익단체로 변질됩니다.

미국 선교사들로부터 교조적으로 신앙을 전수받은 한국의 그리스도인들은 배타성도 강하고, 공격성도 강합니다. 나와 같은 데서 신앙의 동력을 얻지 않고, 나와 다른 데서 신앙의 동력을 얻는 성향이 강합니다. 특별히 북한에 대한 한국교회의 태도는 너무나 적대적입니다. 물론 북한 당국자들의 남한에 대한 태도도 다르지 않습니다. 이 저주의 사슬을 치유받지 못하면 우리에게는 희망이 없습니다. 그리스도 공동체는 이웃과 세계의 아픔을 어루만지는 사람들입니다. 분열된 세계를 치유하여 하나 되게 할 책임을 지닌 사람들입니다. 남과 북이 서로를 향한 적대감의 치유 없이 대한민국은 미래로 나아갈 수 없습니다. 한국교회가 지닌 시대적 소명이 그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