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서를 몸으로 읽고 사는 ‘작은 作恩 무리들’의 소식지「햇순」창간20주년을 진심으로 축하하오며, 아울러 故 김영운 목사님의 2주기를 맞아 목사님을 한 없이 그리워하며 추모합니다.

사랑하고 존경하는 故 김영운 목사님! 목사님은 성서를 몸으로 읽고 사는 작은 무리들과 함께 ‘작은교회’(作恩敎會, little church)를 세우시고, 또한 공동체로 성서를 읽고 더불어 회개하고 결단하는 ‘공동체 성서 연구원’을 창설하실 뿐만 아니라, 나눔과 섬김의 삶이 모자라는 메마른 땅에서 말씀을 몸으로 사는 사람들이 햇순처럼 돋아나기를 간절히 바라면서「햇순 New Sprout」을 창간 하셨습니다. 이토록 목사님은 남들이 쉽게 할 수 없는 어렵고 귀한 일들을 하셨습니다. 하지만 아직도 해야 할 일이 많이 남아있는데, 목사님은 너무 일찍 우리 곁을 떠났습니다. 하여 무척 아쉽고 목사님이 더욱 그리워집니다.

우리의 만남은 44년 전 1972년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크리스챤 아카데미는 WCC성서연구부장 한스 뤼디 웨버 Hans R. Weber 박사를 초청하여 ‘성서연구지도자 연수회’를 1972년 5월25-31일에 수원 크리스챤 아카데미 사회교육원(내일의 집)에서 가졌으며, 그 이듬해 1973년 11월 18-23일에 역시 웨버 박사를 초청하여 연거푸 ‘성서연구 지도자 수련회’를 가졌습니다. 다행히 제가 두 번 모두 성서연구지도자 수련회에 참석하게 되었고, 그때 김영운 목사님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김 목사님은 크리스챤 아카데미 기획실장으로 있으면서 그 모임의 실무를 담당하셨고, 저는 연동교회 부목사로 사역하고 있을 때였습니다.

두 차례의 성서연구 모임에 참석한 저는 큰 도전과 충격을 받았습니다. 그것은 그동안 저의 성서 관에 대한 ‘심판 κρ?σι?’이었고, 그 심판은 ‘어찌 할꼬’라는 ‘위기 κρ?σι?’ 의식을 갖게 하였습니다. 이 같은 위기의식은 저로 하여금 성서의 세계를 새롭게 보는 눈을 뜨게 하는 ‘결정적인 때 καιρ??’가 되었습니다. 다시 말하면, 그 때는 ‘위기 crisis’였지만, 그 위기는 바로 나로 하여금 새로운 길을 가게 하는 전환점turning point이 되었다는 말입니다.

한국에서 두 차례 가진 한스 웨버의 성서 연구모임은 한국교회가 성서연구에 관하여 더욱 관심을 갖게 하였고, 그의 성서연구 방법은 ‘공동체 성서연구 방법’이라 하였습니다. 그것은 성서는 개인에게 주어진 책이라기보다는 ‘공동체’에 주어진 책이기 때문에 공동으로 함께 읽고 생각하며, 공동으로 체험하고 하나님의 뜻을 밝혀내기 위해 함께 노력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 같은 공동체 성서연구 방법에서 한스 웨버는 성서를 바르게 읽고 연구하는 ‘세 가지 상호보완적 방법 Three comple- mentary approaches’을 제시하였습니다. 첫째는 문학적 · 역사적 연구 The literary and historic reading이며, 김 목사는 이를 ‘눈으로 읽는 성서’ 즉 ‘이성적 연구’라 하였으며, 둘째는 신학적 · 명상적 연구 The theological and meditative reading인데, 김 목사는 이를 ‘마음으로 읽는 성서’ 즉 ‘감성적 연구’라 하였고, 마지막으로 ‘위기적 · 회개적 연구 The critical and converting reading’인데, 이를 김 목사는 ‘몸/삶으로 읽는 성서’즉 ‘실존/결단적 연구’라 하였습니다.

사랑하고 존경하는 故 김영운 목사님! 목사님은 한스 웨버의 성서연구방법론을 확산시키기 위하여 정열을 쏟으셨습니다. 한스 웨버의 성서연구 모임에 참여했던 신학자들과 목회자들이 목사님을 중심해서 공동체 성서연구모임을 갖기 시작하였으며, 제가 독일 선교사로 파송 받아 독일에 가기 전까지는 목사님과 함께 성서연구모임을 가졌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새문안 교회와 연동교회의 부목사로 사역하면서 청년 대학생들과 함께 한스 웨버의 방법론을 따라서 성경공부를 하였으며, 독일에서도 같은 방법으로 성경을 읽고 설교준비를 할 뿐만 아니라, 교인들과 함께 성경공부를 하였습니다.

사랑하는 목사님, 제가 독일에서 모든 사역을 마치고 1986년 봄에 귀국하였는데, 그때는 목사님께서 이미 몸으로 성서를 읽고 사는 ‘작은 作恩 무리들’이 함께 모여 ‘작은 교회’를 세워 목회를 시작하셨으며, 또한 ‘공동체 성서연구원’을 창설하여 성경공부를 치열하게 하고 계셨습니다. 그리고 1996년 2월에는 몸으로 성서를 읽는 사람들의 소식지「햇순」을 창간하셨습니다.

그 「햇순」이 지금 240호로 창간20주년을 맞이하게 되었습니다.「햇순」창간20주년을 진심으로 축하하며 기뻐합니다만 목사님의 빈자리가 너무 크고 그립습니다. 그동안 목사님과 함께 몸으로 성서를 읽은 우리 ‘작은 무리들 anawim’은 그 나라에서 목사님을 만나 뵐 때 까지 하나님의 나라를 간절히 ‘기다리며 서두르며 warten und eilen’ 종말론적인 삶을 살겠습니다. 우리 다시 만날 때 까지 거룩하신 하나님의 품안에서 편히 쉬소서!

* 한 병아리 목회자의 고민

모든 일의 처음이 늘 그렇지만 1986년 첫 목회를 시작한 후 나의 목회는 걸음마를 막 시작한 어린 아이처럼 모든 것이 서툴고 아슬아슬하기만 했다. 대학에서 4년 동안 신학을 공부했지만 머리만 커졌을 뿐 정작 목회현장에서 꼭 필요한 것은 충분히 알지 못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먼저 논리적으로 정리되어야 말하고 행동하는 성격 때문에 매일 혹은 매 주일마다 마주치지는 몇몇 물음에 대한 답을 찾지 않고서는 자신 있게 목회에 집중할 수가 없었다.

제일 큰 물음은 설교와 성서읽기에 관한 것이었다. 설교란 무엇인가? 목회자로서 성서를 어떻게 읽을 것인가에 대한 답이 필요했지만 답을 찾기가 쉽지 않았다. 때문에 매주 가까운 목회자들과 설교준비모임도 갖고 또 성서연구모임도 하며 걸음마를 배우는 어린아이처럼 이곳저곳을 기웃거려 보았지만 만족할만한 답은 얻을 수 없었다. 그 와중에 만난 것이 공동체성서연구다. 공동체성서연구를 통해서 병아리 목회자 시절 내 고민의 대부분은 해소되었다. 그런 점에서 공동체성서연구는 내 목회, 특히 설교와 성서일기 그리고 신자들과 함께 하는 성서공부에 결정적인 영향을 주었다고 할 수 있다. 그래서 나는 공동체성서연구와 햇순이 고맙다.

* 공동체성서연구와 나

기억이 희미하지만 내가 공동체성서연구를 만난 것은 목회를 시작한 후 얼마 되지 않는 1990년대 초반 즈음일 것이다. 같은 지방에서 목회하는 친구 목사와 함께 우연히 가리봉동의 한 기업의 사옥 귀퉁이에 있는 작은교회에서 매주 모이는 공동체성서연구 모임에 참여하게 되었다. 10명 남짓한 목회자들이 참여하는 공동체성서연구모임은 다른 성서공부모임과는 달랐다.

대개의 성경공부는 교육자가 있고 피교육자가 있으며, 교육자는 자기가 알고 있는 성서에 대한 지식과 해석을 일방적으로 피교육자에게 전달한다. 성서는 역사와 문화, 지역과 세대 그리고 처한 상황에 따라 다르게 읽혀지고 또 그리고부터 얻는 깨달음 또한 다를 수밖에 없음에도 불구하고 일반적으로 행해지는 성서연구는 이런 특성을 무시한다는 점에서 획일적이다. 또 다양한 문화와 역사적 환경 속에 살고 있는 각각의 사람들에게 하나님께서 성서를 통해서 무엇을 말씀하시려는 지에 주목하기보다는 성서 속에 담겨있는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가를 찾는데 주목한다는 점에서 인간중심이다.

그러나 내가 경험한 공동체성서연구는 달랐다. 한스 웨버의 성서연구 방법으로 알려져 있는 공동체성서연구는 눈으로 성서읽기, 마음으로 성서읽기, 몸으로 성서읽기를 주창한다. 눈으로 읽지만, 성서가 말씀하는 바를 마음으로 느끼고, 느낀 대로 말씀을 살아낸다는 의미일까? 어쨌든 공동체성서연구는 우선 성서를 읽기 전에 각자가 현장에서 어떻게 살았는지, 현재 가지고 있는 상처는 무엇이며, 한 주간을 살면서 느낀 은총은 무엇인지를 서로 이야기하는 생활나눔으로 시작된다. 그리고 다양한 번역으로 성서를 읽고, 성서읽기가 끝나면 읽은 말씀을 통해서 하나님이 나에게 무엇을 말씀하시려 하는지를 묵상한다. 묵상이 끝나면 몇 가지 질문을 중심으로 말씀을 묵상하면서 느끼고 깨달은 바를 함께 나눈다. 그리고 끝으로 말씀을 읽으며 깨달은 바를 한 주간 동안 어떻게 살아낼지에 대한 다짐을 나눈 후 헤어진다.

나는 공동체성서연구모임에서 목회자들과 함께 성서를 읽으며, 똑같은 성서의 말씀일지라도 목회 현장이나 삶의 경험에 따라 각각 다른 모양으로 깨닫게 하고 또 교훈한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때문에 공동체성서연구는 늘 마음을 설레게 했고 또 그 시간은 많지 않은 기다려지는 시간 중 하나였다. 그렇게 5-6년 가까이 공동체성서연구모임에 참여하면서 나의 성서읽기와 설교 그리고 목회는 새로운 전환을 맞았다.

그리고 공동체성서연구모임에 참여한 지 1년 후 즈음부터 공동체성서연구를 통해서 받은 은혜와 경험을 나만의 것으로 남겨두는 것이 아까워서 이 경험을 신자들과 나눌 생각으로 담임하고 있는 교회에서 신자들과 함께 주일 오후에 공동체성서연구모임을 시작했다. 이 과정에서 늘 나는 가르치는 사람이고 신자들은 배우는 사람이라는 기존의 생각이 얼마나 잘못되었는지 알게 되었고, 또 때로는 신자들이 목회자에게 큰 스승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또 성서읽기에서 정말 중요한 것은 지식의 많고 적음이나 학력의 정도가 아니라 진지하고 정직하게 말씀 앞에 서고, 말씀을 향해 귀를 기울이는 것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교회에서 공동체성서연구모임을 시작한 후 모임에 빠지지 않는 권사님 한 분이 계셨다. 교회에서 나이가 가장 많고, 한글을 깨우친 정도의 초등교육을 받은 분이었지만 함께 성서를 읽고 묵상한 결과를 나눌 때마다 권사님은 늘 참여자들을 놀라게 하고 또 부끄럽게 했다. 그래서 묵상나눔을 할 때마다 참여자들은 모두가 그의 말에 주목했다. 그가 자신이 성서를 읽으며 깨달은 바를 이야기할 때마다 성서주석을 모두 섭렵이라도 한 사람으로 착각하게 했고, 또 성서가 자신에게 무엇을 말하고 있는지를 이야기할 때마다 참여자들 모두가 감탄하며 은혜를 받았다. 이것이 바로 공동체성서연구의 힘이다.

* 햇순 그리고 나의 목회

햇순, 햇순은 얇지만 그 이름처럼 늘 신선하고 손에 들 때마다 늘 떨림이 있는 책이다. 그 안에는 아직 다듬어지지 않은 감동과 깨달음의 원석이 담겨있고, 신자들이 함께 책을 열고 읽노라면 세공사가 원석에서 보석을 다듬어내듯이 신자들의 입을 통해서 보석과 같은 깨달음들이 쏟아져 나오기 때문이다. 때문에 나는 햇순을 만날 때마다 설렌다.

햇순이 창간된 것이 지금으로부터 20년 전이라니 1996년 봄일 것이다. 기억이 정확하지 않지만 이 시기는 내가 공동체성서연구모임에 참여한 지 4-5년이 지난 즈음일 것이다. 햇순이 창간된 후 작은교회에서 모이는 공동체성서연구모임에 참여한 목회자들은 모임을 끝내고 햇순을 한가득 안고 돌아오곤 했다. 그때의 뿌듯함이란 지금으로선 표현할 길이 없다. 목회자들과 함께 나눈 말씀을 교회로 돌아가 신자들과 나눌 생각을 하면 설레는 마음을 가눌 길이 없었다.

햇순의 창간은 몇 가지 점에서 의미가 있다. 그 중 하나는 개체교회에서 공동체성서연구모임을 하는 목회자들의 고민과 불편을 해소해 주었다는 것이다. 공동체성서연구모임에 참여하고 나서 얼마 지나지 않아 담임하고 있는 교회에서 신자들과 함께 공동체성서연구를 시작했다. 교회에서 신자들과 함께 공동체성서연구모임을 갖기 위해 필요한 것이 성서연구 자료였는데 그 자료를 마련하는 것이 또 하나의 일이었다. 당시는 매주 화요일에 진행되는 공동체성서연구모임에 참여한 후 모임에서 사용한 자료를 가지고 와 복사해서 사용했다. 하지만 이것이 여간 불편한 것이 아니었다. 어쩌다 모임에 참여하지 못하면 모임에 참여한 목회자를 수소문해서 자료를 얻고 복사를 해야만 그 주간의 모임을 진행할 수 있었다. 햇순의 창간은 나의 이런 고민을 깨끗이 해결해 주었다.

또 햇순의 창간은 공동체성서연구를 개체교회로 확장하는데 기여한 것으로 보인다. 초기 공동체성서연구는 전국의 여러 곳에서 목회자를 중심으로 모였다. 때문에 당시 공동체성서연구는 목회자들의 모임으로 끝날 수밖에 없는 한계를 지니고 있었다. 당시 공동체성서연구가 신자들과 함께하는 개체교회의 성서연구로 확산되지 못한 결정적인 이유가 바로 자료의 문제였을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햇순의 창간으로 관심이 있는 목회자라면 누구나 자료에 접근할 수 있게 되었고, 또 햇순의 창간이 관심 있는 목회자와 평신도들의 성서연구에 머물렀던 공동체성서연구를 개체교회에서 신자들과 함께하는 성서연구로 확장되는데 기여한 것으로 보인다. 그런 점에서 햇순의 창간은 매우 의미 있는 일이었다.

햇순의 창간은 개인적으로 좋지 않은 변화도 가져다주었다. 교회에서 공동체성서연구를 시작한 후 매주일 신자들과 성서연구모임을 갖기 위해서는 두 가지가 필요했다. 하나는 목회자 모임을 통해서 선험적으로 공동체성서연구를 경험하는 것이고, 또 하나는 자료를 확보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몇 년 동안 목회자 성서연구모임에 참여하면서 선험적 경험은 반드시 필요하지 않게 되었다. 그러나 성서연구 자료는 달랐다. 모임에 참여하지 않으면 자료를 구하기 어려웠고, 그렇지 않을 경우 스스로 자료를 만들어야 했는데 이것이 여간 불편한 것이 아니었다. 때문에 가능하면 화요일 성서연구모임에는 참석하려 했고 그 일정을 중심으로 개인의 일정도 조정했다.

햇순의 창간은 이런 나의 관심과 일정에 변화를 가져다주었다. 우선 성서연구 자료를 구하기 위해서 꼭 모임에 참여할 필요는 없게 되고, 1990년대 중반부터 교육시민운동에 참여하기 시작하면서 시간을 내는 것이 쉽지 않게 되자 모임에 참석하지 못하는 일이 종종 발생했다. 시간이 흐르면서 그 횟수가 많아졌다. 그리고 아주 자연스럽게 화요공동체성서연구모임은 내 일정에서 사라졌다. 지금 생각하면 개인적으로 매우 아쉬운 일이다.

어쨌든 햇순이 창간된 지 20년이 되었다. 지난 20년간 햇순은 내게 한 달에 한 번씩 찾아오는 기쁜 소식에 다름 아니었다. 햇순을 중심으로 주일마다 발행하는 공동기도는 작성되었고, 짧지만 의미 있는 햇순의 성서해설을 읽으며 설교를 준비했다. 그리고 꽤 오랜 기간 신자들과 함께 햇순을 중심으로 성서를 읽었다.

그러나 햇순 창간 20주년을 맞은 지금 문득 깨닫는다. 꼭 지켜내야 했던 소중한 하나를 내가 잃어버렸음을. 목회에 집중하지 못하고 시민운동에 대부분의 시간을 허비하는 사이에 어느 날 부터인가 신자들과 함께 하는 성서읽기가 내 목회에서 사라졌다. 시민운동과 교회개혁에 정신을 빼앗겨 가장 소중한 하나를 잃어버린 것이다. 그래서 다짐한다. 햇순 창간 20주년을 기점으로 20여 년 전의 그 뜨거움과 설렘을 다시 회복하고 신자들과 다시 거룩한 독서, 공동체성서연구를 시작해야겠다고. 그리고 한국교회의 개혁을 위하여 햇순으로 인하여 이 거룩한 독서가 한국의 모든 교회로 확산될 수 있기를 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