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대체로 포기가 빠른 편이다. 내 힘이나 능력으로 변화시킬 수 없는 것이라 생각되면 쉽게 포기한다. 미련도 갖지 않는다. 이랬으면 또는 저랬으면 좋았을걸! 하며 뒤돌아보지 않는다. 어떤 선택을 했어도 이미 지나간 과거는 금세 잊어버리고 바로 현재에 몰두하며 산다. 아마 이런 점 때문에 살아가는데 이득이 많았다고 생각한다. 에니어그램 9번 유형의 특성이다.

김영운 목사님에 대한 생각도 그렇다. 좀 더 오래 살아계셔서 우리 옆에 계셨다면 지금 이렇게 저렇게 조언을 해 주실 텐데 하는 아쉬움이 크지만 이내 마음을 고쳐먹는다. 언제까지 우리가 목사님을 바라보며 의지하며 살까? 이참에 이젠 우리끼리 혼자 일어서야지.

목사님! 평소 일러주신 대로 ‘나날이 새날이요 나날이 새 인생’으로 살아가려고 애쓰고 있어요. 위에서 보고 계시지요? 그런데 자기관찰과 자기기억이 너무 어려워요. 남 관찰은 쉬운데 왜 내 관찰은 어려운지. 남의 눈에 가시는 그리 잘 보이는데 내 눈에 대들보는 왜 안 보이는지. 이때마다 눈에 안 보이는 하나님을 찾기보다 눈에 보이는 사람을 찾게 된다.

2013년 11월 9일. 토요일.

그 날은 에니어그램 전문가-강사 특별과정이 열리는 날이었다. 전날, 목사님과의 통화에서 가라앉은 목소리로 이번 중국여행이 너무나 힘들었다고 하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육이 한번 미루어졌던 터라 그냥 진행하게 되었다. 교육 첫날 알게 된 것은…… 이미 중국에서 입국하시면서부터 쓰러지셨다는 것이었다.

목사님은 자신의 불편함을 일일이 말씀하지 못하시는 분이셨고 그 제자인 우리도 그 마음을 살펴드리지 못하였다.

그렇게 교육은 시작되었고, 교육의 둘째 날인 11월 16일 오전 프로그램을 마치고 점심식사를 나가던 중…… 승강기 앞에서 목사님은 맥없이 주저앉으셨고, 그 길로 병원으로 모셨지만 이미 커다란 뇌종양이 뇌 속에 자리 잡고 있다는 검사결과를 듣고는 우리 모두 망연자실할 수밖에 없었다.

병원가시기 전…… 이제 괜찮아졌다고 점심 먹으러 가자고 하시던 말씀이 지금도 가슴에 멍울이 되어 울린다. 이렇게 가실 줄 알았으면 그냥 점심을 먹었어야했다는 후회가 2년이 지나도 눈시울을 붉게 만든다.

믿을 수 없을 정도로…… 허약해진 모습으로 병상에 누워계시던 그 날도…… 아무렇지 않다며…… 눈을 크게 뜨시고…… 있는 힘껏 잡아주시던 그 손과 눈빛을 잊을 수가 없다. 늘 아무렇지 않다고 하시면서 얼마나 외로운 지도자의 길을 걸어오셨는지…….

그 빈자리에 들어서고 나니 조금씩 알게 되는 것 같다. 목사님은 쓰러지기 전까지 우리나라의 에니어그램 영성수련을 위해 온몸과 마음을 다하셨다.

목사님께서 그렇게 허망하게 가시고 난후, 학회 임원들은 약속이나 한 듯이 두 달 가량 손을 놓고 있었다. 아무것도 할 수 없었고, 그래서 원망스러웠고, 그래서 그 자리가 얼마나 큰 자리인지 뒤늦게 알아가는 우리 자신의 미련스러움에 화가 나기도 했다. 4월이 되어서야 학회는 조금씩 움직이기 시작하였고, 새롭게 일을 시작하고 있다. 새로운 정비가 필요하였고 새로운 중심을 필요로 하게 되었다.

학회는 많은 우여곡절 속에 조금씩 앞으로 나아가고 있지만…… 회의가 끝나고 돌아가는 길…… 교육이 끝나고 돌아가는 길에 문득 문득 가슴이 울컥거리는 그리움과 마주하게 된다.

Each day a new day,
Each day a new life.

나날이 새날이요, 나날이 인생이다.

유창한 발음으로, 우리에게 늘 새로운 깨달음을 주시던 목사님!

매번 듣는 교육에서도…… 매번 같은 말도…… 다르게 들리게 하는 비결을 지니신 목사님! 이제 목사님 없이…… 목사님이 계신 것처럼 기초과정, 심화과정을 하면서 새삼 새삼 목사님이 그립다. 아무리 생각해도 너무 일찍 가셨다. 벌써 2주기가 다가온다니…….

목사님…… 잘 지내시지요? 훗날…… 천국에서 만나…… 꼭 밥 먹으러 가요.

우리사이에 고맙다는 말은…… 하는 것이 아니라고 하셨지만 깊은 가르침에 고개 숙여 감사드린다. 가르침이 하나라도 헛되지 않게 곱씹어가며 수련하고 공부하겠다는 마음가짐도 다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