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츠 미!”
그때 누군가 내 어깨에 손 얹으며 본토 발음 귓속말이었다.
내가 고갤 돌렸어. 등 뒤에, 처음 보는 한 언니 서있었어. 누군지 알 순 없지만 낯설진 않았어.
“나야, 나!”
아주 편안한 옷차림에 어울리는 머리모양, 안경을 쓰고 날 내려다보는 언니 옆에 마치 한 식구라도 되는 듯이 별단 개 서었어.
“누구?”
“나라구, 저 사람, 불러쌓는 게 바로 나라구. 그래서 시방 달려온거라구.”
“저 무당이 언니, 언닐 불러? 그래서 왔다구?”
“그래, 그렇다니까. 그러니까 좀 두고보자구.”
언니가 날 돌려세우며 양 어깨에 가볍게 손을 얹더니 가만가만 말했어.

유모님네 한발 나서 하는 말씀 들어 보오
아버지는 오구대왕 오마니는 오구마님
딸만 아홉 두었는디 자네 바로 아홉째라
대왕마님 명을 받아 북문 밖에 버렸는디
대왕마님 병이 들어 보고지고 보고지고
바리데기 나서더니 하는 말을 들어보오
애절토다 내신세야 절통허다 이내신세
먼문밖에 내다버린 바리데기 내신세야
우리부모 날 찾으니 아니올 수 있겠는가
산이 높아 못올거나 물이 깊어 못올거나
뜰 아래 멍석 깔고 머리 조아려 절하는디
삼세번 삼세번이라 아홉 번 큰 절 허는디, 뚜당당!
바리데기 거동보소, 아부지 어무이요
수양산 바윗골에 약수 뜨러 내려가오
서러워라 내 신세야, 흰 얼굴에 먹칠하고
행주치마 둘러입고, 이병 저병 옆에 끼고
빈 병 한 개 손에 들고, 냇물 건너 바위 아래
빨래하는 저 아줌씨, 수양산 바윗골이 어디메 쯤
가야있소, 검정 빨래 하얘지게
빨아주면 갈쳐주지, 팔목 걷고 쪼그려 앉아
빨래 몽땅 빨아 주니, 가다가다 다리 놓는 남장네게
물어보소, 다리 놓는 저 아저씨
수양산이 어디메뇨? 무쇠다리 아흔 아홉 칸
다 놔주면 갈쳐주지, 아흔 아홉칸 다 놔주니
하는 말이 마찬가지, 가다가다 탑 쌓는 이
남장네게 물어보소, 탑쌓는 저 아저씨
어느쪽이 수양산이요? 열 세 층 탑 다 쌓아주면
마다않고 갈쳐주지, 탑 쌓아주니 또 허는 말이
가다가다 숯굽는 저 이 남정네에게 물어보우다
숯굽는 저 아저씨요, 수양산이 어디다요…….
불쌍타 바리데기, 발바닥에 피가 나고
손바닥도 벗겨지고, 옷은 다 찢어지고
입술도 다 터지고, 천리만리 가느고나
대사님 만나보고, 미륵님네 만났구나
미륵님요, 미륵님요 수양산이 어디메뇨
내헌티 아들 구형제 낳아주면 갈쳐주지
한 해가고, 두 해가고, 세 해 다섯 해
해마다 아들 낳아, 아홉 해만에 미륵님요,
아들구형제 낳았으니 수양산이 어디멘가
미륵님 허는말이, 저 강건너 수양산이다마는
만경경파 어찌건너 그 몸으로 어이갈꼬
바리데기 강물 앞에 다리 뻗고 통곡헌다
그 때에 하늘에서 학이 한 쌍 내려온다
학이 한 쌍 내려오더니, 바리데기 업는구나
바윗골에 당도허니 선녀 셋이 목욕하고,
날개옷을 집어들더니, 바위뒤로 숨었구나
(어디선가 들은 듯한 이야기네)
두 선녀 서둘러 하늘로 올라가고
남은 선녀 옷을 찾다 바리데기 만났구나
날개옷 내어주며 바리데기 허는 말이
선녀님 내 말 듣소, 이 몸 또한 여자올시더
셋째 선녀 허는 말이, 자네 또한 선녀일세
이병 저병 빈 병마다 핏물, 살물, 숨터질 물
하나 가득 담아주고 하늘로 오르는구나
오던 길 돌아서니 만경창파 앞을 막고
두다리 뻗고 우니 용궁 거북이 떠오르고
거북이 등을 타고 강 건너 내려서니
미륵님 기다리다 저승구경 시켜주네(다음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