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프레스센터의 기자 회견 실에서 의미 있는 행사가 하나 있었다. 여성단체들이 연합하여 만든 “맑은 정치 여성네트워크”에서 17대 총선 여성후보 102명의 명단을 발표한 것이다. 벽면에 붙은 ‘부패. 무능정치 여성이 바꾼다!’라는 슬로건이 눈길을 끌었다. 여성후보들과 언론사 기자들이 서로 마주 보고 앉은 장내는 열기로 후끈 달았다.

과연 여성이 낡은 정치를 맑은 정치로 바꿀 수 있을까? 적어도 이 자리에 모인 여성후보와 주최 측 관계자들의 얼굴에는 그런 확신이 엿보였다. 이 명단은 지난해부터 공고를 통해 전국적으로 널리 후보를 추천 받고 모집하여 심사와 절차를 거쳐 나온 것이어서 공신력이 높다고 할 수 있다.

우리 사회는 그 동안 괄목할만한 발전을 이룩하였으나 유독 정치는 돈 정치와 대결정치의 구태를 벗어나지 못하여 국민들의 혐오와 지탄의 대상이 되어왔다. 정치가 이렇게 된 데는 여성이 정치에서 소외된 것이 큰 원인의 하나로 지적되고 있다. 인구의 반을 차지하고 남성 못지않은 전문성과 리더십을 갖고 있는 여성이 많음에도 불구하고 현재 국회에는 불과 16명 (5.9%)의 여성만이 의석을 차지하고 있다. 이는 세계평균 19%, 선진국가 40%라는 수치에 비해 너무 뒤떨어진 수치이다. 지방의회로 가면 이 비율이 2%로 더 내려가니 이러고도 우리가 참 민주주의국가라고 할 수 있을까?

낡은 정치, 타락한 정치를 맑은 정치, 깨끗한 정치로 바꾸는데 여성의 정치참여확대가 대안이 될 수 있다는 주장이 힘을 얻고 있다. 적어도 의회의 30%정도를 여성들이 차지하면 분위기가 달라지리라고 보는 것이다. UNDP의 한 보고서에서 여성의 정치참여가 높으면 부패의 정도가 낮아진다고 지적한 바가 있다. 최근 한 언론의 조사에서도 여성이 정치를 하면 부패와 부정이 줄어들 것이라는 견해가 75%로 높았다.

그러나 지금과 같은 정치풍토에서는 여성의 정치참여가 실질적으로 불가능하다. 지금처럼 거액의 선거자금이 드는 선거에서는 여자는 출마는 고사하고 당내의 경선도 바라보기 힘들다. 돈을 많이 쓰는 정치는 불가피하게 부패와 타락을 가져온다. 그리고 지금과 같은 권력투쟁형 정치에서는 여자의 설자리는 없다. 정치가 올바른 국가경영을 위한 수단, 국가비전과 정책실현을 위한 수단이 아니라 권력획득 그 자체를 목적으로 삼는다면 여성뿐 아니라 양심적인 인재는 오지 않는다. 오직 정치모리배들만 득실거릴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지금 국회에서 진행되고 있는 정치개혁 특위의 활동을 주목하고 있다. 국민의 비판을 의식한 정치권이 정치개혁 입법을 한다고 마주 앉아 있으나 당의 이해관계에 얽혀 쉽사리 결론을 못 내리고 있다. 그런 중에도 다행히 각 당마다 지역구 30%, 비례대표 50%는 여성을 공천한다는 데는 합의를 한 듯 하다. 과연 그 말이 지켜질 지 두고 볼 일이다.

여성이 정치개혁의 대안이 될 수 있다고 보는 것은 여성은 대체적으로 보다 깨끗하고 정직하고 성실하며 정의감이 강하다고 보기 때문이다. 여성은 재정을 낭비하지 않고(골프나 술자리에 많이 가지 않고) 가정살림 돌보듯이 알뜰하게 나라살림을 할 수 있다. 여성특유의 직감력, 포용성, 자상함과 부드러움, 친화력 등은 정치를 대결정치가 아닌 화합과 통합의 정치, 생활정치로 만드는데 기여할 수 있을 것이다.

정당의 중진들은 ‘한국의 정치개혁은 여성이 대안이다’라는 인식을 가지고 여성후보에게 기회를 보장해야 할 것이다.